실업고생, ‘노동착취’에 운다

한겨레 2005.12.14

‘직업교육’이라는 명분 아래 시행되는 실업계 고교생 실습교육이 노동 착취와 인권 유린의 제도로 전락하고 있다.
최근 간접고용 형태의 실습생 파견이 증가하면서 학생들은, 실습교육의 취지와는 달리 저임금·장시간·위험노동의 인권 사각지대에 내몰리고 있다. 민주노동당·인권운동사랑방·다산인권센터·전교조실업교육위원회 등 5개 단체로 구성된 청소년 노동인권 네트워크(이하 네트워크)는 14일 오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런 내용을 담은 ‘실업계고 현장실습생 인권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학교에선 몰라요” =김아무개(18)군은 10월 초 실습교육을 받으려고 ㅇ사로 첫 출근을 하기 위해 학교 앞에서 동료 학생 14명과 함께 버스에 몸을 실었지만, 4시간여 만에 도착한 곳은 시화공단 내 한 유명 제빵업체인 ㅅ사였다. 김군은 “하루 평균 11시간씩 별도로 정해진 쉬는 시간도 없이 일했다”고 말했다. 같은 시기 실습을 시작한 ㄱ전자고 박아무개(18)군은 “전공이 기계 쪽이라 ‘ㄷ테크’라는 업체 이름에 끌려 갔더니, 사무실에 책상 2개만 덩그러니 있는 용역업체였다”고 했다.
이번 조사 결과, 실습 학생 대부분은 인력파견업체와 용역업체에서 데려가고 있었다. 학생들은 “업체를 선택한 뒤에야 실제로 일할 곳을 알았고, 시간당 임금만 알았을 뿐 몇시간 일해야 하는지도 뒤늦게 알았다”고 말했다. 네트워크는 “취업게시판을 운영하며 외부 접근이 가능한 실업계고 67곳을 살펴봤더니, 2004년 2월부터 2005년 8월까지 간접고용 형태의 현장실습을 요청받은 학교가 54곳(81%)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특히 “인력파견업체를 통한 경우 학교 쪽이 학생들의 위치 파악도 못하고, 원거리로 실습 나간 학생들에게 시험 일정도 제때 알리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고 네트워크 쪽은 덧붙였다.

혹사, 그리고 인권 유린 =인력파견업체와 용역업체 등을 통한 간접고용은, 실습생들의 노동조건도 착취와 인권 유린 수준으로 악화시키고 있다. 실습협약서 체결에서부터 ‘인권 유린’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ㅍ고 문아무개(17)군은 “(용역업체) 소장이 불러주는 대로 (협약서를) 썼다”며 “협약서에 ‘실수로 기물을 파손하면 책임지고, 본인 부주의로 다치면 (산업재해)보험 처리를 못 받는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말했다. 유명 제빵업체인 ㅅ사 실습생 김아무개군(17)은 “최저임금보다도 10%나 적은 임금을 따졌더니 인력파견업체와 ㅅ사가 서로 떠넘기기만 했다”고 증언했다.
네트워크는 “15개 실습업체에서 일하는 학생 38명을 직접 면접한 결과 상당수 업체에서 최저임금(시간당 3100원)에도 크게 못미치는 임금으로 1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을 하지만,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고 있었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를 보면, 상당수 업체에서 실습생에게 야간노동을 시키고 있었으며, 실습생들은 최대 하루 12시간30분씩 일하는 등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었다. 또 “하루 결근했다가 월급에서 8만원을 공제당했다”, “화장실 다녀올 시간도 없어 고통받았다”거나 “7분 만에 점심을 먹어야 했다”는 등 혹사당한 실습생의 사례도 많았다.

눈가리고 귀막은 노동·교육부 =전국적으로 한해 17만~18만명에 이르는 실업계 고교 3년생들을 상대로 한 현장실습의 문제점에 대해, 주무 부처인 노동부와 교육부는 “소관이 아니다”라며 실태 파악도 하지 않은 채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양상이다.
교육부는 “일선 시군구 교육청 소관”이라고 밝히고 있고, 교육청 쪽은 간접고용을 통한 현장실습의 폐해를 줄이거나 없애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충남교육청의 경우 “학교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행위를 하지 않으며 노조에 가입하지 않는다”고 실습생들에게 서약하도록 하고 있는 형편이다. 노동부도 “실습생은 학생이어서 소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