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면제거 모범사례 될까

[한겨레 2005-12-22 18:40:01]

[한겨레] GS건설 “서울 반포3단지 석면철거 완벽하게 하겠다” 선언 석면이 부서질 때 나오는 먼지는 공기 중에 떠돌다 사람의 폐 속에 들어가 박히면 폐암이나 중피종과 같은 치명적 질환의 원인이 되는 무서운 물질이다. 우리 주변에서 이 석면 먼지가 만들어지는 대표적 장소는 건축물 철거 현장이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소비된 석면의 80% 이상이 단열재나 천장재 등의 자재에 함유돼 건축물에 쓰였지만, 철거작업 때 석면 함유 자재에서 석면 먼지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이 거의 고려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들 안방의 실내공기 오염까지 걱정해주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환경부는 죽음의 먼지를 만들어내는 이 철거작업 현장에 대해서는 무심한 태도를 취해 왔다. 정부 부처 가운데는 노동부가 철거 작업을 하는 노동자 보호 차원이기는 하지만 거의 유일하게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2003년 7월 ‘석면 해체·제거작업 허가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지난해와 올해 전국에서 이뤄진 수많은 철거작업 가운데 석면 해체·제거 허가를 받아 진행된 작업이 각각 10건 안팎에 그친 것에서 나타나듯 이 제도는 이름 뿐인 상태다.

이런 가운데 서울 반포 주공3단지 아파트 재건축 시공을 맡은 지에스건설이 “아파트 철거에 앞서 아파트 천정 등에 있는 석면을 현행 법규에 규정된 수준을 뛰어넘어 완벽히 제거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나선 것은 관련 업계는 물론 석면추방운동을 펼쳐온 단체들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지에스건설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인근 주민과 일부 환경단체는 “철거공사를 하도급 준 업체가 지난달 석면자재가 쓰인 아파트 1개 동 일부를 불법으로 허물다 말썽을 빚은 것을 만회하려는 의도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출발이야 어찌됐든 지에스건설이 아파트 66개동 2400세대에 이르는 대규모 철거작업 현장에서 모범적 석면제거 사례를 만들어 낸다면, 이는 철거작업 현장의 석면공해 유발 위험을 무시해 온 대부분의 업체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업계의 무관심 속에 국민들에게 죽음의 먼지를 떠안겨 온 건축물 철거관행이 바로 잡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지난달 ‘석면파동’ 만회 의도지만…

환경 속에 석면 먼지가 유입되지 않도록 하고 작업자도 보호하면서 안전하게 석면을 제거하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작업이다. 석면이 함유된 천장재를 뜯어내기 위해서는 우선 벽과 바닥에 비닐을 깔고, 작업장소에서 외부로 공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철저히 밀폐해야 한다. 그 다음 0.3마이크론 크기의 석면 먼지를 99.97%까지 걸러낼 수 있는 헤파(HEPA) 필터를 장착하고서도 1시간에 작업공간 전체의 공기를 4번 이상 외부 공기와 교환할 수 있는 고성능의 공기여과기를 설치해 가동하면서, 방진마스크와 일회용 보호복으로 무장한 뒤 천정재를 분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바닥에 떨어진 석면가루는 헤파필터가 장착된 진공청소기로 제거하고, 작업이 끝난 뒤에도 작업장 안의 석면농도가 기준치 이하로 내려갈 때까지 강제 환기를 계속해야 한다. “이렇게 준비되기는 국내 처음”

박영식 석면문제연구소장은 “국내 철거업체들이 갖춘 설비와 기술 수준, 관계 기관의 감독 부실을 감안하면 허가를 받아 이뤄진 석면철거 가운데서도 이런 까다로운 기준에 맞게 진행된 작업은 거의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실제 노동부가 석면철거 허가를 내주는 과정에서 기술적 자문을 하는 산업안전공단 서울지역본부 안전보건지원팀의 김영미 차장은 “문제는 허가를 받고도 제대로 못하는 업체가 아니라 허가를 받지도 않고 불법철거를 하는 수많은 업체들”이라며 “그나마 제대로 해보겠다는 업체들에게 100%를 요구하기는 어렵다”고 털어놓아 박 소장의 진단을 뒷받침했다.

반포주공3단지 재건축현장소장인 황진팔 지에스건설 상무는 “그동안 제대로 된 석면철거에 대한 수요가 없다보니 국내에 석면제거 장비 등 관련 인프라가 미흡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며 “전문업체의 조언을 받고 부족한 장비는 해외에서 구해와 석면철거의 모범사례를 만들어 놓겠다”고 강조했다.

지에스건설의 반포주공3단지 석면철거 전반의 자문을 맡은 석면전문업체 이티에스컨설팅의 석미희 사장은 “철거작업중에 수시로 작업장 안팎의 석면 농도를 측정할 수 있도록 철거현장에 석면분석실을 설치할 것 등 국내에는 규정도 전례도 없는 여러 조건을 제시했는데 회사에서 모두 받아들였다”며 “이렇게 철저히 준비되는 아파트 석면제거는 국내에서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지에스건설과 이티에스컨설팅은 반포주공3단지의 석면제거 비용으로 9억여원 가량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애초에 잡은 건물 철거비가 59억여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철거비가 15% 가량 늘어나는 셈이다. 늘어나는 철거비는 모두 지에스건설이 부담하게 된다. 지에스건설이 재건축을 발주한 주택조합과 지분제로 일괄 계약한 뒤, 철거공사를 하도급업체에 사후 정산하는 조건으로 맡겼기 때문이다. 만약 재건축조합 등 건축주가 철거공사를 별도 발주한 상태에서 석면 문제가 불거졌다면 추가되는 석면제거비 부담을 둘러싸고 철거업체와 건축주 사이에 논란이 빚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석 사장은 “선진국들에서는 석면자재가 많이 사용된 건물은 언젠가 들어갈 석면제거비용 만큼 가격이 낮게 매겨질 정도로 석면에 대한 고려가 일반화돼 있다”며 “우선 철거공사 계약을 맺을 때만이라도 건물주가 석면함유 실태조사를 하고, 석면제거비를 감안해 공사비를 산정하는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글·사진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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