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정규직법 개정을 보는 노·사·정 태도
산재보험 확대 등 ‘안전망’ 구축부터 먼저
비정규직법 시행 1년
법 비웃는 고용불안·차별
황예랑 기자 최원형 기자 신소영 기자
“고용불안·차별 시달려…법개정 전이라도 적용을”
노동계 “외주 규제” 경영계 “파견 확대” 시각차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된 1년 동안 효과를 제대로 못 내고 있어 법 개정이나 제도 보완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확산되고 있다.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 모두 그 필요성엔 공감한다. 하지만 노동계와 경영계의 시각 차가 현격하다. 그 사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더 ‘절박한’ 처지로 몰리고 있다. ‘사회 안전망’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 노동계 “외주화 규제” 노동계의 가장 큰 요구는 “편법적인 용역·도급 남용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비정규직법이 용역·도급 같은 ‘간접 고용’엔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상시적인 주된 업무는 ‘직접 고용’ 원칙을 못박고, 외주화를 막자는 주장이다. 박수근 한양대 법대 교수는 “외주화 방지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노동법 전체가 후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사내 하도급 노동자 보호 특별법 제정’을 제안했다. 노동계는 원청업체도 하청업체와 함께 이들의 ‘사용자’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분명한 사유가 있을 때만 비정규직을 쓰도록 하는 ‘사용 사유 제한’ 도입을 요구한다. 현행 법은 비정규직을 2년만 쓰도록 ‘기간 제한’ 규정만 둬서 오히려 비정규직을 양산한다는 것이 이유다.
■ 경영계 “비정규직 사용 기간 3년으로” 경영계 쪽 시각은 180도 다르다. 경영계는 기간제 노동자를 쓰는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고, 노동자 파견도 32개 업무(197개 업종)로 한정한 것에서 대폭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간접 고용이 불가피한 이상, 아예 파견·용역을 활성화하자는 얘기다.
정부는 경영계 요구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노동부는 지난 3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경영계 요구와 노동계 요구를 묶어 논의한 뒤 내년에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 기한을 조정하는 등의 개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해, 경영계 쪽에 기운 발언을 한 바 있다.
■ 법 개정 늦어질 듯…“사회 안전망 시급” 정부의 친기업 정책 기조에 기대어 법 개정 목소리를 높이던 경영계는 최근 ‘촛불’로 악화된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한발 물러선 모습이다. 최재황 한국경영자총협회 이사는 1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연 비정규직법 토론회에서 “지금은 성급히 법을 고치기보다 비정규직법 안착에 힘써야 할 때”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쪽은 ‘전면 재개정’을 촉구하면서도 우선순위를 앞세우지는 않는다. 한나라당의 국회 다수 장악 등에 비춰, 비정규직법이 되레 더 ‘개악’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금 국회를 통해 개정을 시도하면 결과가 뻔해, ‘비정규직법 폐기’가 주요 요구사항에서 빠진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부는 법 개정을 서두르기보다는, 정규직 전환 장려 방안을 추진 중이다. 노사정위원회도 곧 비정규직법 후속대책 위원회를 재가동할 예정이다.
문제는 비정규직법이 제 구실을 못하면서, 고용 불안과 차별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박한’ 현실이 그때까지 버텨낼 수 있을지다. 한 노동전문가는 “본격적인 법 개정 논의는 내년 봄 국회로 미뤄질 가능성이 커졌지만, 비정규직을 보호할 수 있는 산업재해보험 확대 적용 등 ‘사회 안전망’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