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넘긴 하이닉스 하청노동 투쟁
“하나님 일하고 싶어요”
지명조 객원기자
민주노총 금속노조 하이닉스 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의 투쟁이 해를 넘겼다.
길거리에서 또 한해를 보내야 했던 하이닉스 매그나칩 노동자들은 “내 일터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원을 빌며 공장 앞 농성장에서 신년을 맞았다.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소원이지만 일 년 넘게 안 해본 것 없는 이들에게는 너무나 절박하기만 하다.
하이닉스 매그나칩이 한 해 동안 벌어들인 2조 2천억에 달하는 순이익은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졌다. 하이닉스 매그나칩은 6개 사내하청업체를 통해 3백여 명을 불법파견하면서 12시간 맞교대, 정규직 임금의 40%라는 저임금․고강도 노동을 유지해 왔다.
“주야 맞교대에 특근을 하고도 겨우 연봉 2000만 원의 임금을 받으며 조합원의 70%가 마이너스 통장 빚에 시달려야 하는 가혹한 현실에서 선택할 것은 노조밖에 없었다”. “10년 근속에 기본급은 67만 원, 조합원들을 공장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 고용된 용역 직원의 일당은 25만 원”인 현실은 노동자들을 분노케 했다.
노동자들이 무리한 요구를 했던 것도 아니었다. 사측은 아예 노동조합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고, 대화다운 대화도 없었다. 사측의 대응은 한마디로 ‘막가파’식이었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나서 불과 얼마 뒤, 2004년 12월 25일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수억 원을 들여 고용한 용역깡패들은 노동자들이 직장으로 들어오는 것은 막았다. 1월 1일에는 집단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 악몽’이 됐고, 노동자들은 추운 겨울 길거리로 내몰렸다.
노동자들의 저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사측도 본격적으로 탄압에 나섰다. 온갖 가처분이 떨어졌고, 경찰은 물대포에 쇠망치까지 동원해 노동자들의 시위를 분쇄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부상당했고, 두 명의 노동자가 분신을 시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오랫동안 시간을 끌던 대전노동청이 지난해 7월 4개 협력업체에 대해 “불법파견” 판정을 내렸지만 하이닉스 매그나칩은 부당 해고된 하청 노동자를 직접 고용할 의사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이닉스 노사협력팀 팀장은 “불법파견 판정은 행정기관의 판단에 불과”하다며 “사내하청 노조는 제 3자이기 때문에 대화할 이유가 없다”고 말할 정도로 막무가내였다.
충북범도민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을 통해 “하이닉스 매그나칩 원청이 문제해결을 위한 성실교섭에 나설 것”을 촉구한 데 이어, 충북도 노사정협의회도 “원청회사가 지역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하청지회 근로자들의 생계문제 해결을 위해 대화에 임해야 한다”는 권고문을 채택했다.
또한 충북 이원종 도지사는 지난 11월 중국 방문 당시 하이닉스 우의제 사장을 직접만나 노사정협의회 중재권고안에 대해 책임 있는 입장을 전했지만 하이닉스 매그나칩은 여전히 요지부동.
이 와중에 노동자들의 생활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비참한 지경으로 내몰렸다. 생활비를 벌기위해 주유소, 식당, 공사판에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 수천만 원의 빚을 지고 있으며, 전세 값을 생활비로 돌려쓰다 결국 길거리로 나앉는 경우도 생겼다.
노동조합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선택한 것은 결국 무기한 단식이었다. 지난 12월 27일부터 청주 본사 앞에서 박순호 수석부지회장과 임헌준 사무국장이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고, 이후 조합원들과 지역 노동자들의 단식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청주교도소에 수감 중인 신재교 위원장도 옥중단식을 진행 중이다.
“죽음의 가시밭길”
하이닉스 매그나칩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은 현재 한국사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을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2005년 한 해 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일부 투쟁들은 성과를 남기기도 했지만 대부분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했다. 해고는 기본이고, 구속, 수배, 가처분, 손배 가압류, 위장폐업, 경찰 폭력, 분신․자살, 단식이 비정규직 투쟁의 매뉴얼이 된지 오래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라며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 노동조합을 인정할 수 없다며 칠곡군청이 손수 위장폐업과 정리해고를 주도한 , 노조해산하고 노조간부들이 퇴사해야 대화하겠다는 , ‘무노조경영의 신화’를 이어가고 있는 , “1억 원씩 줄 테니 노조를 포기하라”는 등이 일 년을 훌쩍 넘긴 장기투쟁 사업장들이다.
사회양극화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불안정․저임금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죽음의 가시밭길을 걷고 있는 동안 기업들은 히스테릭한 ‘노조회피’증세를 보이며 비정규노동자들을 극단으로 내몰고 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외치며, 노동자들을 잡아 가두기 여념이 없는 정부에게도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세상은 참 불공평합니다. 지극히 정당하고 소박한 요구를 이 사회가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 안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가오는 병술년 새해에는 정의가 바로서고, 차별이 철폐되고, 양극화가 해소되는 한해이길 바라며,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을 반드시 쟁취하여 비정규직이라는 이름 하나로 숨 한번 크게 못 쉬는 850만 비정규직이 이 땅에서 사라지는 한해가 되길 바랍니다.”
(구속 수감 중인 하이닉스 매그나칩 사내하청 노조 신재교 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