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1일자 한겨레신문 란에 투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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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보험 급여 축소가 개혁인가

노동부가 지난 9일 지난해 한해 동안 운영한 ‘산재보험제도 발전위원회’(이하 발전위)의 연구용역 결과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노동부는 그동안 요양관리, 재활서비스, 급여체계 등이 부실해, 장기 요양 환자와 연금 수급자가 늘어나 보험 급여가 급증한 반면 보험료 수입 증가율은 소폭에 그쳐 3년 연속 적자가 나는 등 개선이 시급하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발전위가 연구보고서를 통해 보험급여 및 요율 체계, 요양 기준 및 절차, 재활사업 부문, 보험재정 분야 등 방대한 부문에서 권고안을 내놓은 것이다. 노동부는 이 연구 결과를 토대로 노사단체와 공익 전문가 등과의 의견 조율을 거쳐 단계적으로 제도 개선을 추진해 나갈 방침이라고 한다.

우리는 현재의 산재보험이 개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발전위의 일부 논자들이 주장하는 바와는 다른 지점에 산재보험의 문제점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개혁은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발전위의 일부 논자들은 현재 산재보험의 문제점을 ‘재정의 위기’로 설명한다. 이들은 최근 3년 연속 보험수지가 적자를 기록하고, 그에 따라 법정 책임준비금이 부족하게 된 것을 그 근거로 들고 있다. 이들은 산업 재해율과 이에 따른 급여 지출액이 증가하고 있기에 조만간 산재보험 재정에 심각한 위기가 닥쳐올 가능성이 있으므로 보험급여를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이들의 주장이 위기를 과장하는 측면이 있고, 그 ‘과장된 위기’를 근거로 사회보장 급여를 축소하려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산재보험 재정을 위기라고 보는 시각에는 산업 재해율이 높아지고 휴업 급여 지출액 역시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가정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이런 가정은 현실에서 충족되기 어렵다.

기업이 산재 예방을 위해 노력하고 산재 노동자에 대한 재활 서비스가 충실히 제공된다면, 산업 재해율과 휴업 급여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이유가 없다. 만약 산업 재해율이 지속적으로 높아져 재정 위기가 현실화한다면 이는 산재 예방 노력을 게을리 한 기업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따라서 노동자의 보험 급여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산재 보험료를 올리는 것이 정당하고 합리적인 해결 방안이다.

산재보험의 재정 적자 상황에는 여러 복합적인 측면이 있다. 우선 그동안 정부가 잘못된 계산으로 오히려 산재보험 요율을 낮춰 산재보험 수입을 감소시킨 책임이 있다. 정부는 2001년에 산재보험 요율을 10.8%나 낮췄고, 이로 인해 2002년 산재보험 책임준비금은 처음으로 부족 사태를 맞았다. 그런데도 노동부는 2003년 보험료율을 8.7% 더 내렸다.

82~85% 수준에 그치고 있는 산재보험 수납률도 산재보험 재정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다. 그리고 의료기관에 의해 부풀려진 지출 요인도 존재한다. 이처럼 정부와 사업주, 의료기관 등이 모두 산재보험 재정에 악영향을 끼쳤는데, 보험 급여를 줄여 재정 적자의 부담을 노동자한테 전담하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현행 산재보험이 모든 산재 노동자에게 제대로 된 사회안전망 구실을 하지 못하는 것이 더 큰 위기이며, 이것이 주된 개혁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1500만여 임금 노동자 중 산재보험 적용을 받는 노동자는 1000만명이다. 골프장 경기보조원, 레미콘 운전사, 덤프트럭 운전사 등 산재의 위험이 높은 노동자들이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탓에 보험 적용 대상에서 빠져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사업장 노동자 등은 적용 대상이긴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20~30% 정도만이 산재보험 급여를 받고 있다. 산재보험이 절실히 필요한 이들에게는 정작 사회안전망으로서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산재보험의 보장성은 낮다. 저임금 노동자가 산재를 당하면,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치료비 때문에 빚을 져야 하는 경우도 많고,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휴업급여와 장해급여로 근근이 생활해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현재 노동건강연대와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실, 민주노총이 함께 이런 산재보험의 문제를 개혁하기 위한 법안을 국회에 상정해 놓은 상태다.

산재보험을 개혁하는 방식에는 철학과 입장에 따라 다양한 접근이 있을 수 있다. 한편에는 산재보험발전위의 일부 논자들처럼, 산재보험을 기본적으로 사용자 배상보험으로 간주하고, 재정 안정화라는 명목 아래 급여를 축소해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의 사회적 임금을 저하시키는 방향으로 바꾸려는 이들이 있다. 다른 한편에는 산재보험의 사회보장적 성격과 사회안전망으로서의 몫을 강조하며, 특수고용 노동자를 비롯해 모든 노동자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해 명실상부한 사회안전망으로 거듭나게 하려 하는 이들이 있다.

노동부는 향후 산재보험 개혁을 위하여 노사단체, 관계 전문가가 참여하는 ‘산재보험제도 개선협의회’(가칭)를 운영한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이 협의회가 실질적인 사회적 합의의 장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다른 노동 사안처럼 산재보험 개혁 문제에서도 노동자를 들러리로 세우려고 한다면, 노동자들이 그 사회적 합의의 장에 함께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이상윤/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