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중재단, 부채를 어느쪽으로 펼쳐야하는지 고민해야”
김현선: 15일 하이닉스매그너칩사태해결을 위한 노사간 첫 간접대화가 중재위원회의 중재로 진행됐습니다. 먼저 중재의 의미부터 살펴주시죠. 이후 중재안이 나온다면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는겁니까?
하종강 – 조정은 구속력이 없지만 중재안은 구속력이 있다라는 얘기를 하는데요. 노동법상의 조정,중재를 얘기할때는 맞습니다만 이번 중재는 일종의 임의중재이기 때문에 또 노동법상의 중재가 아니기 때문에 사실은 법적 구속력은 없습니다.
그러나 임의중재도 법적구속력이 있을 때가 있는데요. 중재 사전에 노사양측 당사자가 제3자에게 중재하도록 하고 그 결과에 따른다라는 걸 전제하고 중재가 시작된다면 그건 법적 구속력이 있고 현행 노동법상 그런 임의중재는 가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김현선: 사내하청지회는 이번 중재가 시작되기전에 직접대화를 원했었고 하이닉스반도체는 간접대화만을 고집했습니다. 각각의 대화방식의 장단점이 있을 것 같은데요.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 ⓒ 하종강의 노동과꿈
하종강 – 노동위원회의 조정회의와 중재회의에서도 직접대화방식과 간접대화방식을 모두 다 사용합니다. 검찰에서 사건을 조사할 때 당사자들을 개별적으로 불러서 조사할 수도 있고 양쪽 당사자 모두 불러서 대질심문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모두 장단점이 있죠.
직접대화는 양쪽당사자가 직접 얼굴을 대하면서 사실을 밝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그러나 감정적으로 격해지면 대화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있죠.
또 간접대화도 물론 장점이 있습니다. 당사자가 없는 상태에서 솔직하게 내면에 숨겨진 이야기를 할 수 있죠. “우리가 사실 겉으로는 이렇게 주장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원하는 목표는 이런겁니다” 라는 식으로요. 그러나 중간에서 조정하거나 중재하는 사람을 전폭적으로 신뢰할 수 있을 때만 간접대화방식의 장점이 발휘될 수 있는거죠.
간접대화방식에서 우려되는 부분도 있긴 합니다.
중간에서 중재하는 사람이 사실을 객관적으로 전달하지않고 자신의 개인적인 주관이 개입되면 사실을 그르치는 굉장히 큰 오류를 범할 수도 있죠. 중재자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또 어떤 원칙을 지키고 있느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김현선: 중재위원회를 통한 첫 간접대화가 15일 진행됐습니다. 하이닉스반도체는 고용을 전제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인도적 차원으로 접근하겠다는 의견을 보였는데요. 이에 대한 하종강 선생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하종강 – 사내하청지회가 지금 가장 중요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 고용문제니까 가장 중요한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면 지회의 정당성, 노조의 정당성이 인정되는 것이고 노동자들에게 승리했다는 성취감을 줄 뿐만 아니라 사측이 그동안 상당히 잘못했다라는걸 인정할 수 밖에 없기때문에 그걸 적극적으로 회피하는 것 같습니다.
또 우리는 어디까지나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인도적 차원으로 접근하겠다는 말은 최근에 삼성이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 8천억원을 사회에 내면서 그것을 탕감받으려고 하는 행태와 비슷합니다.
정당성은 인정하지않고 어떡해서든 이 사태를 모면해보겠다는 고육지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현선: 이번 대화가 진행되기전에 사측관계자가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중재에 참여하는 것일뿐 우리는 법적 당사자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법적 당사자가 아닙니까?
하종강 – 법적당사자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결정할 권한을 갖고 있으면 그 사람이 법적 당사자입니다.
근로기준법상의 사용자이냐 아니냐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간접고용자라 할지라도 실제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이 근로기준법상 사용자라는 것이 법적인 올바른 해석이거든요. 하니닉스의 경우에는 가장 중요한 노동조건인 고용을 결정할 권한을 사측이 갖고 있으므로 노동법상 법적 당사자가 되는 것이죠.
그러나 아직까지는 우리나라의 검찰이나 법원에서는 꼭 그렇게 법을 해석하지는 않습니다. 검찰이나 법원까지 가면 사측의 주장대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상당히 많죠. 형식이나 법보다 중요한 것이 실체적 진실이라고 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표현을 하는데요. 아직까지 우리나라 법원에서 그렇게 해석하기까지는 좀 시간이 걸릴 것 같구요. 아주 드물게 그런 해석을 내리는 판사도 나오긴 하지만 아직은 전반적으로 그렇지 않거든요.
김현선: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노사 모두 상생의 자세가 요구된다고 흔히들 얘기합니다. 하이닉스사태 해결을 위한 범대위도 첫 중재회의가 있던 날. 이런 주문을 했습니다. 또 지역언론역시 “조직의 이해보다는 개개 노동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쉽사리 답이 나올수 있다” 고 보도하고 있는데요.
하종강 선생님이 생각하는 진정한 상생의 의미는 어떤건지요?
하종강 – 상생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판단할 수 있는 아주 적절한 기준이 있는데요. 상생이라는 것을 약자가 주장할 때는 대개 옳습니다. 그러나 강자가 상생을 주장할 때는 대개 거짓말입니다.
고통분담이라는 말들을 흔히 하는데요. 지금까지 계속 고통을 전담해온 사람들이 있는데 앞으로 고통을 공평하게 분담하자고 하는 건 결코 공평한게 아니죠.
그동안 전적으로 고통을 분담해오고 손해본 사람들이 있는데 지금부터 공평하게 양쪽이 손해를 보는건 전혀 공평한게 아닙니다. 그동안 고통을 전혀 부담하지 않은 사람들이 앞으로 당분간은 그걸 전담해야하는 것이 오히려 공평한거거든요. 상생이라고 할때는 그동안 어느쪽에서 큰 피해를 입었는지 봐야하구요.
때로는 불평등하게 적용해야 그것이 평등해질 수 있는 거구요.
또 개개 노동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라고 하는데 다소 명분에서 밀리더라도 막말로 표현하자면 좀 구걸을 해서라도 돈을 얻으면 그게 이익이고 받아들이라는 뜻인데 어떤게 옳은 것인지는 제가 굳이 말씀드리진 않겠습니다.
김현선: 범대위 공동대표이자 중재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한 강태재위원장은 지난주 중재단이 구성된 직후 와의 인터뷰에서 어느 네티즌의 “노사양측이 모두 60%만 만족할 생각을 하면 해결이 가능하고 상생하는 길”이라는 글을 예로 든 적이 있는데요.
중재위원회의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노동자들은 중재위원회에 적지않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중재위원회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없으신지요?
하종강 – 지금 중재위원회의 구성원을 보면 그 정도의 얘기만 하신 것도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신부님, 교수님이 공정한 객관자의 입장으로 참여하고 있고 또 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 도청국장 등 공무원이 중재위원회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자칫 공정을 기한다라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어찌보면 굉장히 보수적 판단을 할 수 있는 구성입니다.
노동자들의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정말 모르는데요. 제가 지금 어느 노동조합 지회 사무실에 와있는데 노조간부들이 어제까지는 안그랬는데 오늘 모두 머리띠를 묶고 있어요. 그래서 그 사이에 무슨일이 있었냐고 물었더니 단체협약에 세전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도록 규정돼있는데 이걸 한번도 지급받은 적이 없다고 하더라구요. 교섭하는 당사자들은 회사관계자들이 계속 거짓말만 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있으면 정말 눈에서 피가 튑니다. 직접 겪어본 사람만이 그 고통과 어려움을 다 이해하는건데 지금 이 중재위원회의 구성원들이 오늘내일 쫓겨날지도 모르는 고용불안에 시달려본 적이 있는 사람들인지 한번 생각을 해봐야겠구요.
또 법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라고 우리는 만고불변의 진리로 알고 있지만 이건 시민법체계하에서만 원칙이고 사회법체계하에서는 오히려 만인은 법앞에 불평등하다는 것이 원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약자들을 좀 불평등하게 과보호함으로써 평등을 구현하는 것이 사회법 원칙인데요. 노동법이 대표적인 사회법이거든요. 이쪽 저쪽에게 공평하게 양보할 것을 요구하고 공정하게 하는 것이 사실 사회정의거나 공동선이 아닐 수 있거든요.
최근에 왕의 남자라는 영화를 사람들이 많이 봤는데요. 주인공이 남사당패의 줄타는 광대입니다. 광대가 줄위에 부채 하나만 들고 올라가는데요. 광대의 부채는 언제나 그 광대의 몸이 기울어진 반대편으로만 펼쳐져야합니다.
만일 공정하게 하겠다고 부채를 가운데로만 펼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중재단도 과연 자기들의 부채가 어느쪽으로 펼쳐져야하는 것인지 고민을 심각하게 해야 올바른 사회정의가 될 수 있겠고 이건 고생하는 노동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 우리사회 전체구성원들의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김현선: 네. 오늘말씀 고맙습니다.
하종강 – 고맙습니다.
/ 지금은노동자시대 2006년02월17일 ⓒ민중의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