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복귀 교육보다 마음의 재활이 먼저다”
[인터뷰]박종균 대한산재장애인연합회 산업안전 강사

매일노동뉴스 김미영 기자 08-07-09

박종균(45)씨는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산재노동자다. 17년 전인 지난 91년, 스물여덟의 나이에 강원도 태백에 위치한 광산(영풍 연화광업소)에서 사고를 당했다. 남산보다 4배나 깊은 지하 840미터 갱안에서 천장이 무너지는 사고로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 의사는 ‘링거액이 멈추면 사망한 것이니 알려달라’고 간호사에게 말했을 정도다.

그랬던 그가 최근 석사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의 제목은 ‘산재장해인의 사회·심리재활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관한 연구’. 논문 서두에 ‘감사의 글’에서 그는 “논문을 준비하면서 산재장해인들이 겪게 되는 사회·심리적인 문제들을 돌아보게 됐고, 모든 것이 내가 이미 겪은 일이라는 사실에 놀랐다”며 “끔찍했던 경험들을 또다른 산재장해인들이 되풀이 하지 않았으면 하는 욕심으로 논문을 마무리했다”고 밝히고 있다.

는 지난 4일 충북 충주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 산재장해인들의 사회·심리재활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7년 간 술만 마셨다”

박씨는 갑작스런 사고로 다리를 잃어버린 충격에서 어떻게 벗어났을까.

“벗어난 게 아니라 받아들인 거죠.” 박씨는 몇차례의 수술 이후 6~7년 간 술 마시고 싸웠던 기억밖에 없다고 했다.

“대·소변조차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들에게 죽음은 바로 곁에 있는 존재예요. 욕창이 생기면 열흘만에 죽을 수도 있죠. 저도 몸 관리를 제대로 안해서 방광에 염증이 생기고, 열이 40도를 오락가락할 때도 있었어요. 그러다가 산재의료원 화성요양원에 들어가게 됐어요. 공기도 좋고 산책로도 있었는데 그때서야 저를 돌아보게 된 거죠. 이렇게 살다 정말 폐인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논문을 쓰면서 그는 자신의 단계가 학술적으로 ‘충격·부정·우울의 과정’에서 ‘장애수용의 단계’에 이르기까지 겪었던 혼란임을 알았다. 그러나 희생은 컸다. 지긋지긋한 요양기간 동안 부인과 이혼하고, 사랑하는 아이들과도 헤어져야 했다.

산재장해인 대다수가 그와 다르지 않았다. 한 병실을 쓰는 사람들이 도박을 하면 같이 도박을 했고, 술을 마시면 다같이 술을 마셨다. 이 역시 학술적으로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말로 정의된다.

제빵 아니면 컴퓨터, 형편없는 직업재활서비스

그는 논문에서 “지금도 하루 7명꼴로 생겨나는 산재노동자들은 장해로 인한 육체적·정신적 고통과 삶의 방향을 상실한 채 하루하루를 의미없는 세월로 보내고 있다”며 “산재장해인들이 자신의 재능을 개발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산재장해인 단체 및 자조집단 지원을 통해 그동안 도외시됐던 산재장해인의 사회·심리재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산재장해인인 박씨에게 산재보험기금이 제공하고 있는 재활서비스는 형편없다. 직업재활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산재장해인들에겐 무용지물인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산재보험법은 저와 나이가 같아요. 64년에 제정돼 45년이 흘렀는데 여전히 치료와 보상만으로 할 일을 끝냈다고 하죠.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보험 개발을 위한 연구용역을 많이 하는데 정작 산재노동자의 입장에서 더 필요한 서비스가 무엇인지는 고려하지 않는 것 같아요. 직업복귀 이전에 필요한 것은 산재노동자의 심리적인 충격을 완화하고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것이에요. 모든 산재환자와 가족에게 심리재활 프로그램이 제공돼야 해요.”

지금과 같이 재활 인프라가 거의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산재장해인들에게 퇴원은 불안하고 막막한 미래를 의미한다. 직업재활서비스를 제공한다며 제과제빵 아니면 컴퓨터 자격증 학원을 보내주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는 심리·사회재활의 활성화가 산재보상기금의 안정화에도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산재노동자들이 정신적 안정과 삶의 의욕을 되찾으면 병원에 더 있으라고 해도 사회로 나가고자 할 거예요. 오히려 공단에서도 이익이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그는 좀더 공부를 해서 동료 산재장해인들에게 심리재활 상담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얼마전 왼팔을 잃은 산재장해인을 만났는데 그 분이 하는 말이 ‘솔직히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든 줄 알았는데 휠체어 끌고 있는 당신을 보면서 뭔들 못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공단에서 산재장해인들의 동료 심리재활서비스를 만들면 좋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