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건강보험의 근간을 위협할 수 있는 정책과 논의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나면서 참여정부의 의료정책 방향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송도경제특구와 제주도에 영리법인 의료기관을 허용한 지 얼마 안 돼 손실형 민간 의료보험 시판과 건강보험 국고지원 축소 논의로 이어지는 흐름은 이런 우려를 자아내고도 남는다. 이 논의들을 주도하는 경제 부처들은 의료 산업화와 민간 의료보험 활성화 등이 가져올 수 있는 경제 활성화 효과를 강조한다. 하지만 이 정책들이 건강보험 기반을 뿌리째 흔들어 의료혜택의 부익부 빈익빈을 부르고 양극화 해소에 역행할 수 있다는 점에는 눈을 돌리려 하지 않는다.
의료부문은 시장의 효율성이 작동되지 않는, 이른바 시장실패로 말미암은 합리적인 공공 규제가 정당화되는 대표적 분야다. 민간 의료보험이 국민의 다양한 의료욕구를 해소하는 제도로 자리잡도록 하려면 보험상품의 표준화와 보험자에 의한 가입 차별 해소책, 그리고 보험상품 비교공시제 개선 등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다. 이런 제도들의 정비 없는 무질서한 민간의보의 팽창은 건강보험의 정착을 심각하게 위협할 게 분명하다. 특히 민간의보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를 대체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면 종국적으로 의료이용 급증과 국민의료비 팽창, 건강보험의 보장성 약화 등 경제․사회적으로 결코 바람직스럽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건강보험의 완전한 정착을 민간의보 활성화의 전제조건으로 삼아야 한다.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 효율화 방안도 사회적으로 합의된 틀을 존중하고 적정한 총의료비 지출 규모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논의될 필요가 있다. 지역의보 급여비의 50% 국가 지원은 수많은 갈등 끝에 나온 사회적 합의다. 단순한 규모 축소보다는 어떻게 정부 지원을 낭비 없이 효율적으로 사용해 중장기적으로 우리 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총의료비 수준을 유지할 것이냐에 정부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포괄수가제나 총액예산제 등 건강보험 수가구조 개편, 약값 거품을 제거할 실효성 있고 정교한 정책, 비용 유발적 의료전달 체계 개편 등에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은 개선할 점이 많지만 개발도상국 가운데서는 비교적 성공한 사례에 속한다. 기업이나 경제부처도 건강보험을 노동비용에서 보는 단순한 시각을 탈피해 기업전체의 노동비용을 낮춰주는 효과에 주목해야 한다. 4%대의 보험료로 노동자의 건강을 어느 정도 지켜준다면 이는 기업의 경쟁력에 상당한 도움을 주는 것이다. 건강보험의 공적 성격을 파괴할 수 있는 의료 시장화 정책들이 의료비 급증으로 이어져 기업은 물론 사회 전체에 심각한 부담을 줄 가능성을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 한국처럼 극도로 상업화한 의료체계에서는 파급효과를 고려하지 않은 정교하지 못한 정책 하나가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부를 수 있다. 과도한 의료 상업화로 기업과 사회 전체가 중병을 앓고 있는 미국의 사례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70% 수준까지 올리겠다고 선언한 것은 중장기적으로 기업과 국가 경쟁력 높이기, 그리고 사회통합 측면에서 매우 의미 있다. 그러나 최근에 나타나는 의료 관련 정책들은 보장성 강화 정책의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의료산업의 경쟁력 확보도 좋지만 정부는 건강보험의 공공성 강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구체적인 정책을 통해 표명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