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통로, 화장실은 모두 ‘고객의 것’
직원용 화장실 찾아 삼만리

김신범 원진노동안전보건교육센터 교육실장

이 기사는 원진노동안전보건교육센터가 매달 발행하는 ‘일과 건강’의 기획특집 기사입니다. 는 안전섹션을 통해 노동안전보건 저널의 우수한 기사를 발굴‧소개할 예정입니다. 콘텐츠를 제공해주신 원진노동안전보건교육센터 임직원 및 필자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독자여러분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백화점에는 직원용 화장실이 따로 있다. 직원용 통로도 따로 있다. 실제로 백화점에서 노동자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따라다녀봤다. 방문한 곳은 10층짜리 백화점이었는데, 10층은 영화관, 9층은 식당가였다. 지하 1층부터 8층까지가 매장으로 이뤄져 있다. 8층부터 1층까지 내려오면서 화장실과 휴게실·식수대를 체크했다.

배고픔은 ‘화물운반용 엘리베이터’에서 해결

8층은 스포츠·멀티캐주얼 매장이다. 총 66개의 매장이 있다. 고객들로 북적되지만 어떤 매장에는 고객의 발길이 뜸했다. 고객이 있건 없건 매장의 노동자들은 꼿꼿이 서서 고객을 기다렸다. 화장실을 찾았다. 직원용 화장실은 엘리베이터 옆으로 난 골목으로 들어가야 있다. 남자화장실에는 소변기가 4개, 대변을 보는 곳이 3개 있다. 여자화장실은 변기가 6개다.

화장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직원휴게실이 있고 휴게실 문 앞에는 생수통이 설치돼 있다. 휴게실에서는 몇몇 여성노동자가 눈을 감고 쉬고 있다. 배고플 때 휴게실에서 밥이나 빵을 먹을 수도 있냐고 물어보니 음식물 절대 반입금지란다. 음식물을 먹다가 걸리면 청소당번이 된다고 한다. 휴게실은 매장마다 돌아가면서 청소하기 때문에 음식물을 먹고 지저분해지면 청소하기 힘드니까 아예 음식을 못 먹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휴게실이 있는데도 화물운반용 엘리베이터 앞 좁은 공간에서 무언가를 먹으며 얘기를 나누는 여성노동자들이 자꾸 눈에 띈다. 화장실에서 제일 먼 매장까지 걸어가봤다. 140보 걸었다. 화장실로부터 매장까지의 거리가 70미터는 되는 셈이다. 백화점 면적이 그리 크지 않으니 이 정도지, 만약 큰 백화점이었다면 화장실 가는 데 시간 꽤나 걸리겠다 싶었다.

미국·영국·일본은 노동자수에 따라 변기 설치

7층은 가전·가정 매장이다. 이곳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5층 남성의류·남성구두 매장에 오자 상황이 좀 달라졌다. 휴게실이 없고 그 자리에 사무실이 들어서 있다. 3층 여성정장·구두 매장도 마찬가지다. 백화점에서 사무실 공간이 부족하다보니 휴게실을 없앤 듯했다. 1층에 내려오니 직원용 화장실이 없다. 화장품을 판매하는 노동자에게 직원용 화장실이 어디로 가냐고 물었더니 지하 1층이나 2층으로 간다고 답한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다가, 어라 이상했다.

“직원들은 고객들이 다니는 에스컬레이터 못타죠?” 그렇단다.

“그러면 직원용 계단으로 이동해서 지하 1층 화장실까지 간단 말인가요?” 역시 그렇단다.

동선이 엉망이다보니 화장실까지의 거리가 한참 멀어졌다. 이러니 화장실에 자주 못가기 때문에 물을 안 마신다는 얘기가 나오나보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참고로 미국·영국·일본은 노동자 숫자에 따라 필요한 변기 개수를 법으로 정해놓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그런 법이 없으니 한 층에 화장실이 없다는 것이 위법은 아니다.

일을 위해 존재하는 의자

1층에는 화장품 매장이 많았고, 생각보다 의자도 많았다. 의자에 앉을 수 있느냐고 노동자에게 물어보니 그렇단다. 오, 좋은데? 혹시나 해서 앉아서 쉴 수 있냐고 물어보았더니 뭔 얘기냐는 표정이다. 고객상담을 위해 앉거나 화장서비스 제공을 위해 잠깐 앉아 있을 수는 있어도 의자에 앉아 쉬는 것은 꿈도 못 꾼단다. 백화점에서 허락하지 않는다고 한다.

의자는 노동자가 쉬는 용도가 아니었다. 그래도 이 백화점은 노동조합이 있고 민주노총 소속이다. 그래서 단체협약으로 계산대에서 근무하는 여성노동자 중에서 임산부에게는 의자를 제공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그런 조항마저 없는 백화점들이 대부분일 거라는 얘기다.

“우리의 고통이 당신에게는 친절해보이나요”

서비스노동자들의 눈물로 만들어진 고객감동경영
기업경영에서 고객중심주의가 중요한 위치로 떠오른 것은 90년대부터다. 마케팅에서 고객관계관리(CRM)라는 경영기법이 강조되면서 고객중심주의가 진화한 것이다. 처음에는 고객만족이더니 이제는 너나할 것 없이 고객감동을 표방한다. 지식경영이니 감성경영이니 하는 것들도 그 앞에 고객중심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고객중심의 지식경영이나 고객중심의 감성경영이 된다. IMF시대 어려운 경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치열해지면서 기업들은 고객만족을 넘어 고객감동을 주창하게 됐다. 고객감동은 고객의 충성도를 장기적으로 유지해 고객을 단순한 소비자에서 벗어나 우리 제품 또는 서비스의 평생고객으로 만들기 위한 전략이다. 이제 고객만족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고객을 마음속에서 감동시키는 고객감동이 필요하게 됐다는 것이다.

화가 나도, 고객 폭언에도 ‘언제나 생글생글’

친절은 기본이고 세계 초일류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 기업 환경 속에서 ‘고객제일주의’,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 ‘무한책임주의’와 같은 표어를 내걸고 고객만족경영이 경영이념으로 매우 폭넓게 확산돼 있다. 그런데 경영합리화 전략의 일환인 고객중심주의는 말 그대로 고객이 중심이 되니 아무런 문제없이 좋기만 한 것인가.

기업들이 앞다퉈 ‘고객만족에서 고객감동으로!’를 외치지만 정작 그 중심에 서 있는 서비스산업 여성노동자들의 노동강도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들 노동은 업종의 특성상 서서 일하는 경우가 많고, 고객을 언제나 친절하게 응대해야 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 이들 노동의 성격을 ‘감정노동’이라 하는 이유는 자발적인 친절이 아닌 친절을 항상 강요당한다는 점 때문이다. 이들은 고객에게 의지를 갖고 항상 친절하고 기쁜 마음 상태를 생산해내야만 한다. 시장주의가 지고지상의 가치로 되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고객감동을 향한 경영합리화는 한층 강화될 것이니 서비스산업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더욱 열악해질 수밖에 없다.

이랜드 노동자들은 고객응대에 따른 친절에 대해 혀를 내두른다. 언제나 환한 미소로 ‘어서 오십시오’로 시작되는 고객응대는 인간의 감정을 극도로 통제하는 감정노동을 유발하여 노동자들을 지치게 만든다. 부부싸움을 하고 나와도 상을 입었어도 고객 앞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생글생글 웃어야 한다. 노동자들은 호소한다. ‘이러다 미쳐 버리겠다’고.

쏟아지는 폭언에도 싫은 표정 한번 내비칠 수 없는 일상 탓에 이들 노동자들은 우울증에 빠지거나 정신병의 일종인 분열증을 경험하다 심해지면 대인기피증에 이른다고 한다. 뉴코아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가 털어놓은 ‘화장실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계산대에서 끊임없이 밀려드는 고객을 응대하느라 화장실을 가지 못해 방광염에 걸렸다. 물론 혼자만 그런 건 아니다. 같이 일하는 거의 대다수 노동자들이 더 좋은 서비스·가족 같은 분위기·친절서비스의 희생양이 되면서 방광염은 물론 위장병과 하지정맥류와 같은 병들을 달고 산다. 기본적인 생리욕구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에게 ‘화장실 휴식’은 쟁취해야 할 1순위 과제인 셈이다.

그들의 미소는 곧 노동생산성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이란 고객의 감정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노동형태를 말한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식당·승무원·판매원 등 서비스산업이나 소비자 불만을 처리하는 고객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업무가 이에 해당한다. 아무리 화가 나도 낯빛을 붉히지 말고, 지나치게 무례하게 구는 사람에게도 웃는 얼굴로 응대하라. 이건 처세술이 아니다. 직업적으로 늘 그래야하는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의 캐치프레이즈다.

친절한 서비스와 환한 웃음. 오락·여행·유흥업종의 서비스산업들이 늘어가면서 감정노동의 영역이 훨씬 확장되고 있다. 억지로 웃음 짓고, 허리를 굽히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다듬는 행위 역시 가치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엄연히 노동이다.

감정노동은 딱히 가치를 창출하는 노동의 영역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우리들의 일상적 삶 속에서 우리가 표현해야 하는 위장된 행동과 얼굴 표정·몸짓들이 우리의 진정한 자아와 괴리된다는 점에서 일정 정도 희생을 감수해야만 한다. 하지만 서비스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감정노동과 우리들의 일상생활 속 감정노동은 다르다. 서비스노동자들이 자신의 감정노동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당장 생계전선에 문제가 생기지만, 우리들은 기껏해야 의시소통의 장애를 겪는 정도로 그치지 않나.

웃다가 병든 사람들, 서비스노동자

세계화 흐름은 서비스산업화를 촉진하고 동시에 서비스노동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비중을 늘려나간다. 가사노동을 비롯한 감정노동 영역이 급속하게 상품화되면서 많은 여성들이 집 밖으로 나왔다. 정보화시대가 이제까지 산업사회에서 ‘여성적’이라고 규정짓고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감정을 주요한 노동의 자질로 만들면서 성별위계도 해체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서비스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여성노동자들이다. 이들은 헐값에, 그것도 임시직으로 생계를 위해 일상적인 성차별적인 모욕과 억압을 감내하며 일하고 있다. 이른바 ‘서비스계급의 여성화’가 ‘빈곤의 여성화’나 ‘노동의 여성화’와 마찬가지로 확산되는 것이다.

‘전지구의 자본주의화’인 세계화 속에서 이른바 여성적이라 규정되는 성향이나 섹슈얼리티가 서비스노동과 결합돼 성차별적 과정을 양산한다. 여성성이라는 생물학적·문화적 성별성이 권력과 자원을 차별적으로 분배하는 기제로 작동하면서 전지구적 자본주의 질서 안에 편입된 여성은 온갖 감정노동을 감내해야 한다.

여성 감정노동자들의 노동은 사회적으로 낮게 평가되고 있다. 감정노동이 노동으로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여성의 사적 공간인 가정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여성들은 가정에서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다양한 역할들을 수행한다. 이 역할들 속에는 근력을 쓰는 일·머리를 쓰는 일·요리를 하는 일 등 다양한 노동이 존재함에도, 노동 그 자체로서 존재하기보다는 가족에 대한 보살핌이라는 의미에 종속돼 있다.

‘고객지향적인 기업문화·자율적 능동적 참여·한가족 한마음 분위기 조성’이라는 고객만족경영이 확산되고, 고객감동 서비스의 중요성이 높아질수록 서비스노동자들의 감정노동과 이로 인한 직무스트레스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서비스산업에 있는 사람들을 집중취재한 모 방송국의 프로그램은 미소 지으며 고객을 응대하는 사람들을 ‘웃다가 병든 사람들’이라 칭했다. 백화점들은 ‘미소의 여왕’을 선발한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감정생산에 경쟁을 도입하기도 한다. 고객들의 편의를 제공하는 서비스산업 노동자들의 당연했던 친절과 배려 그리고 미소가 손님인 나에게 제공한 노동이었던 것을 깨닫는 건 그리 힘든 일일까.

이황현아 노동조합기업경영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