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임금·산재왕국 도루코 문막공장”
공장 밖 천막농성장서 만난 비정규 노동자들
매일노동뉴스 정영현 수습기자 08-07-18
“지금이 70년대도 아니고, 잘린 손가락이 제대로 봉합도 되기 전에 나와서 일하라는 것이 말이 되나요.”
17일 강원도 원주 도루코 문막공장 앞 천막농성장에서 만난 이아무개(30)씨. 그는 산업재해를 당한 2년 전만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고 했다. 이씨는 2006년 도루코 문막공장 하청업체에 입사했다. 흔히 말하는 ‘사내하청노동자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산재왕국’ 도루코=칼에 구멍을 뚫는 ‘펀칭작업’이 이씨에게 배정된 업무였다. 이씨의 검지손가락이 잘려나간 것은 입사 2개월만이었다. 프레스기를 이용하는 펀칭과정에서 오른쪽 검지가 잘렸다. 문제는 사고 이후였다. 이씨는 몸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충분히 쉬고 싶었다. 그러나 허락되지 않았다. 산재 요양급여는 평소 이씨가 일한 시간만큼 보장되지 않았다. 도루코 문막공장의 독특한 임금산정 방식 때문이었다.
도루코 문막공장은 만들어내는 물량만큼 임금이 지급된다. ‘펀칭→열처리→연마→조립→포장’의 공정을 거치는데, 공정마다 단가가 정해져 있다. 예컨대 커터 칼 하나를 만들면 0.53원이 주어진다. 하루에 1만개를 생산해야 5만3천원을 받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씨의 월급은 평소 120만원가량이었다. 한 푼이 아쉬운 상황에서 마냥 쉴 수만은 없었다. 그는 “쉬는 기간에 평소 임금의 70%밖에 받지 못했다”며 “회사측은 20일치 임금을 4대 보험료로 냈다며 주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이씨는 5개월 동안 요양한 뒤 업무에 복귀했다.
◇8시간 노동은 ‘꿈’=이씨의 사례는 도루코 문막공장에서 벌어지는 비상식적인 모습의 한 단면이다. 세척공정을 맡고 있었던 신아무개(54)씨는 지난해 17cm의 식도가 허벅지에 꽂히는 사고를 당했다. 하지만 산재처리를 할 수 없었다. 신씨는 3주 정도 쉰 이후 업무에 복귀했다. 3개월 동안 허벅지가 붓는 아픔이 계속됐다.
신씨는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공정 탓에 사고가 빈번하지만 산재처리는 생각도 못한다”며 “앞으로 일을 계속 해야 하니까 사장의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도루코 문막공장에서 하루 8시간 노동은 ‘꿈’ 같은 얘기다. 최락윤(40) 금속노조 도루코문막공장비정규직지회장은 “성과를 기준으로 하는 임금체계 때문에 잔업이나 특근을 해도 수당이 없다”며 “한 달에 400시간을 일해도 남자는 200만원, 여자는 150만원이 고작”이라고 말했다.
◇노조결성과 해고=빈번한 산재와 불합리한 임금체계는 노조결성으로 이어졌다. 문막공장 하청노동자들은 지난해 10월 노조를 결성하고 원청인 도루코와 4개 하청업체에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그러나 도루코는 직접적인 고용관계가 없다는 점을 들어 교섭을 거부했다.
지회는 지난해 11월28일부터 하루 3시간30분 부분파업을 벌였고, 하청업체들은 지난해 12월 최락윤 지회장 등 9명을 근무태만과 업무방해를 이유로 징계해고했다. 이후 지회는 부당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공장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판정도 이어졌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달 27일 도루코 문막공장장과 4개 하청업체 대표들이 “해고비정규직 9명에 대한 복직판정이 부당하다”며 제기한 재심신청을 기각하고 “30일 이내 원직복직과 함께 해고기간 임금상당액을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최 지회장은 “우리의 요구는 일한 만큼 돈 받고 아프면 쉬게 해달라는 것”이라며 “정당한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농성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