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는 ‘실업고 실습생 착취’ 모른척 말라”

실업고 학생 “다치면 어떡해요? 실습 나가기 무서워요”

“하루 12시간 일하고, 임금도 제때 안 나올 때가 많대요. ‘알바’보다 열악하고, 일하다 다쳐도 개인돈 들여 치료해야 한다던데….” 올해 고3이 된다는 박남규(세명컴퓨터고·19) 군은 현장실습 나갈 생각만 하면 ‘겁나고 아찔’하다. 아직 현장실습에 나가본 적은 없지만 선배들이 이야기만 들어봐도 “얼마나 불합리한 제도인지, 왜 하루빨리 개선돼야 하는지 알 수 있다”는 박군이다.

“여러 단체들이 실업고 출신 현장실습생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라고 줄기차게 요구해 왔잖아요. 그런데 노동부랑 교육부는 책임 떠넘기기만 하고 있다지요? 그렇다면 실습 나간 학생들의 인권은, 그리고 노동권은 누가 보호하나요?”

“노예노동이 교육인가?”

21일 오전 과천정부청사 정문 앞. 실업계고등학교 재학생 및 교사, 인권단체 회원 등이 “무늬만 실습생 사실은 노동자”, “노예노동이 교육인가?”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노동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벌이고 있다.<사진>

ⓒ 매일노동뉴스

“말이 실습이지, 이건 노동착취나 마찬가지입니다. 법적인 제한 때문에, 학생이기 때문에 ‘노동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요? 일한 대가로 돈을 받는데 왜 노동자가 아니라고 우기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서울디지텍고등학교의 김성진 교사는 책임부처인 노동부가 교육부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며 “아예 부처 이름을 ‘탁구부’나 ‘배구부’로 바꾸라”고 주장한다.

학생과 교사가 이와 같이 한 목소리로 현장실습제도 및 노동부를 규탄하고 나서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해 12월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실업고 현장실습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실습생들이 △최저임금 이하의 ‘초저임금’ △12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 △위험 노동 △성희롱 △간접고용에 의한 각종 부작용 등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최근 들어 파견업체나 용역업체 등을 통한 간접고용 형태의 실습생 파견이 증가하면서, 실업계 현장실습생들은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는’ 노동환경 속에서 이중삼중의 고통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노동부와 교육부에 면담 및 공개질의를 요청한 바 있고, 최근 노동부가 질의에 대한 답변을 보내 왔다.

노동부, “실습생은 학생일 뿐, 노동자 아니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의 질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 현장 실습생의 노동자성 여부와 파견 가능 여부를 판단해 달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현장실습은 산업체-학교-학생 간 체결하는 ‘표준협약서’와 직업교육훈련촉진법 등에 의거, 교육과정의 일부로써 향후 산업에 종사하는 데 필요한 지식·기술·태도 습득을 목적으로 이루어지므로, 사업장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보기 어렵다”고 답해 왔다.

또한 파견법 적용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근기법에 의한 근로자가 아닌 경우 파견법에 의한 근로자 파견사업으로 볼 수 없어, 파견법을 적용해 규율할 수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답했다. 노동부는 또 “현장실습제도의 정책방향 등은 일차적으로 소관부처인 교육인적자원부에서 결정할 사항이므로, 제도개선 여부 등은 소관부처에서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현장실습제도가 실습생을 대상으로 한 조기취업으로 전락하고, 최근에는 법의 허점을 악용한 인력파견업체의 중간착취도 기승을 부리고 있는 실정이지만, 노동부는 “실습생은 학생일 뿐 노동자가 아니다”라는 답변만을 되풀이 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동부의 성의 없는 답변을 규탄하기 위해 이날 기자회견을 주최했다는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는 “대법원 판례(대법 86다카2920 87.6.9)에도 실질적 사용종속관계 여부를 따져 실습생의 노동자성 여부를 따져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며 “노동부는 실습생의 노동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관련법을 개정하고, 산업체의 노동착취와 불법파견을 근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에서 활동 중인 윤성봉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도 “현장실습제도가 전문적인 직업교육이 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뒤따라야 하며, 특히 실습생들의 노동권 보장을 위해서는 노동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은회 기자 press79@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