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연대의 끈을 잡아주십시오
[김용직 옥중서신] 다시 연대의 끈을 잡아주십시오
몇 일 전 하이닉스사내하청 동지 한 명이 이곳에 수감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집시법도 공무집행방해도 아닌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들어왔다고 했습니다. 자그마한 청주교도소 그것도 제가 있는 방과 같은 관구에 있어 금방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어려운 투쟁 와중에서도
대의원으로 활동하며, 조합원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던 동지였습니다.
기가 막혔습니다….
‘그깟 4000원 벌려고 하다가…’하며 제 손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면서 “미안하다”고 “볼 면목이 없다”고 울었습니다. 투쟁을
하다가 체포된 것도 아니고, 먹고살려고 아둥바둥 그깟 “4000원” 한끼 밥값 벌려다 들어왔다고, ‘너무 억울하고 분하다’고 울기만 했습니다.
노동부가 [회사측이 ‘불법파견’을 했으니 정규직으로 고용하라]는 판정을 내렸고, 그것만 믿고 너무나 정당한 투쟁을 이어왔습니다.
그러나 이 땅은 아무리 정당하다 할지라도 선뜻 우리 노동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여주지 않았습니다. 그 지긋지긋한 1년 6개월.
변변한 푼돈 한번 가져다 주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옹고집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마누라와 자식 보기가 미안하기도 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 온 가족의 고통 속에서도 지켜야할 그 무언가가 있었나 봅니다. 아내와 아이들 역시 그 무언가를 존중해주며 어렵지만
그 고통을 분담해주었고 지친 남편의 등을 두드려 주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동지들이 1년 6개월 동안 투쟁을 버텨올 수 있었던 힘들이었을 겁니다.
그렇게 낮에는 자신이 지켜야할 그 무언가를 위해 동지들과 함께 도저히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철옹성, 하이닉스-매그나칩 자본에 두 주먹이
문드러지도록 두드렸습니다. 그리고는 아내와 아이들의 생계를 위해 야간에는 대리운전을 하며 그깟 “4000원”을 벌어야 했습니다.
그 긴 투쟁의 세월 동안 하루 세끼 제대로 챙겨먹지도 못하고 회사의 용역깡패 놈들에게 얻어맞고, 민중의 지팡이 경찰에 두드려 맞고,
서울로, 울산으로, 창원으로 그 놈의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단식에, 노숙에…
곯을 대로 곯은 몸을 어거지로 이끌고 낮엔 투쟁을 밤엔 대리운전을 해야 했겠지요. 성한 사람도 못 견딜 그런 짓을 하다가, 그깟 4000원
벌려고 하다가 덜컥 사고가 났답니다. 그리고는 그 사고합의금이 없어 이렇게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1년 반의 세월 속에서 여기 저기
손 벌려 볼만한 곳은 모두 거쳤을 테지요. 그런데도 아내는 처음 교도소란 곳에 들어간 남편을 빼내기 위해 또다시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손을 벌려보겠지요. 그렇지만 1년 6개월의 세월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짓도 한 두 번일 것입니다. 그 놈의 합의금을 구할 길이 없어 면회실
철장 안에 갇힌 남편을 보며 아내는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렸을 겁니다.
코리아포커스 “낮엔 복작투쟁… 밤엔 생계투쟁” 관련 기사보기
아내는 남편이 지키고자 하는 그 무엇이 얼마나 소중하기에 한 가정을 이 지경까지 몰고 왔는지 원망스러울 겁니다. 아니 비정규직을
강요하고, 있는 놈들 편만 드는 정부보다, 이 끌날 것 같지 않은 힘든 싸움을 이어나가는 민주노총이, 금속노조가 너무나 원망스러울 겁니다.
자신의 남편이 비정규직 노동자란 사실이 죽도록 원망스러울 겁니다.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인데… 어떻게든 살겠지요. 이런저런 걱정과 욕망 조금만 접으면 살만하기도 하니까요. 요즘처럼 언제까지일지도 모르는
철탑에 올라 노숙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테지요. 그렇지만 너무 억울해서, 그 숱한 투쟁의 순간이, 그 동지가, 아니 우리 비정규직 동지들이
지키고자 했던 그 무엇이 이대로 끝나는 건 아닌지, 너무 아까워서 눈물이 납니다.
저는 그 동지가 지키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그 동지의 개인의 옹고집일 수도 있고 그동안 하이닉스라는 거대 자본에 속아
살아온 세월에 대한 억울함 때문일 수도, 제 놈들이 만든 법조차 지키지 않는 정부가, 있는 놈들 편만 드는 정부에 대한 분노 때문일 수 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 더 거창하게 인간답게 살고자하는 몸부림 일수도, 억압과 착취의 썩어빠진 세상을 뒤집어엎기 위한 발악일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이대로 끝낼 수는 없습니다. “비정규직 철폐”의 대의 보다 우리 동지들의, 그 동지들을 믿고 살아온 지옥 같은 1년 반의
세월을 아둥바둥 살아온 가족들의 절대 꺾일 수 없는 인간으로서의 오기가 있습니다. 한평생을 살면서 한번쯤은 이를 악물고 모든 것을 걸고
지키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청지회 조합원들이 고압전류가 흐르는 송전탑에서, 자본의 심장부 대표이사실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들었습니다.
조합원 동지여러분!
우리 모두 소중한 그 무엇을 위해 한번쯤은 가족의 생존까지 걸고 싸워봤습니다. 그 고통, 가족의 불안,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떠올리기도 싫지만 가슴 한 켠에 놓아두었던 그 아픔을 되새겨 봅시다.
그리고 다시 연대의 끈을 잡아주십시오.
갈기갈기 찢긴 하청동지들의 손을 꼭 잡아주십시오.
조합원 동지들을 믿습니다. 동지들만이 유일한 희망입니다.
2006년 5월 25일
청주교도소에서 조직부장 김용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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