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에서 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세요”
하지정맥류·안구건조증·성대결절에 시달리는 서비스 여성노동자

매일노동뉴스 박인희 기자

경기도에 있는 한 이마트에서 화장품을 판매하고 있는 윤효선(32)씨. 윤씨는 정오에 출근해 오후 10시까지 일한다. 하루 평균 10시간 서서 일하고, 연장근무 때는 하루 12시간 이상 서서 일한다. 윤씨가 근무시간 중 앉을 수 있는 시간은 점심시간으로 주어진 1시간. 게다가 왼쪽 다리에 하지정맥류를 앓고 있다. 오랜 시간 서서 일한 탓에 다리의 실핏줄이 터지고 발가락이 뒤틀어졌다.

“복숭아뼈 있는 곳이 피멍 든 것처럼 울퉁불퉁 부었어요. 이제 허벅지와 엉덩이까지 통증이 느껴집니다.”

윤씨는 다리가 아파 굽이 낮은 매장화도 신지 못해 운동화를 신고 일한다. 매장에 비치된 의자는 2개. 그러나 윤씨는 일하는 내내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단 한 번도 의자에 앉지 않았다.

“다리가 끊어질 듯 아파서 주저앉고 싶어요.”

서서 일하는 여성노동자에게 하지정맥류는 흔한 병이다. 민간서비스연맹(위원장 김형근)이 하루 8시간 이상 서서 일하는 백화점과 대형마트에서 근무하는 여성노동자들의 하지정맥류 발생 여부를 조사한 결과 총 88명의 서비스직 여성노동자 중 34.1%(30명)가 하지정맥류를 앓고 있었다. 반면에 앉아서 일하는 사무직 여성노동자들은 169명 중 단 7명(4.1%)에 불과했다.

하지정맥류는 근속연수와 연령이 증가할수록 유병률이 높다. 근무 중 잠시라도 의자에 앉을 수 있다면 하지정맥류 발병률을 낮출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난주 발족한 ‘오래서서 일하는 서비스 여성노동자에게 의자를’ 국민캠페인단이 지난 3~4월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681명의 서비스 여성노동자 중 76.1%(491명)가 “매장에 의자가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 중 의자에 앉을 수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34.5%에 불과했다. 실제로 그럴까. 가 최근 롯데·현대·신세계 등 주요 백화점 1층에 있는 의자수를 조사한 결과 롯데백화점 강남점 150개, 현대백화점 삼성센터점 220개, 신세계백화점 영등포점 120여개로 나타났다. 백화점에 입점한 구두·핸드백·지갑 매장에도 평균 서너 개의 의자가 있었다. 그런데 직원들은 의자에 앉지 않았다. 손님을 응대하는 직원들만 잠시 앉아 있을 뿐 손님이 없는 매장의 직원들은 모두 서서 꼿꼿한 자세를 유지했다.

노동자가 앉을 의자는 없다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에서 색조화장품을 판매하고 있는 김소연(29·가명)씨. 김씨는 평소 9센티미터의 높은 굽의 구두를 신고 하루 평균 12시간 일한다. 김씨 다리에도 가느다란 실핏줄이 불거져 있다. 그는 6년 전 하지정맥류 판정을 받았다. 미혼인데도 하혈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김씨가 일하는 매장에는 11개의 의자가 있다. 색조화장품은 손님들에게 서비스로 메이크업까지 해주기 때문에 다른 매장보다 의자수가 많다. 메이크업 의자의 높이는 다른 의자에 비해 높다. 메이크업을 받는 고객은 앉고, 김씨는 서야지만 높이를 맞출 수 있다.

김씨가 일하는 매장에는 4명의 직원이 있다. 모두 높은 굽의 구두를 신고 있다. 가장 낮은 굽이 9센티미터다. 구두 굽이 11센티미터를 넘는 직원도 있다. 보통 여성들이 잠시 신고 있기에도 아찔한 높이다. 김씨는 “매장에 젋은 고객들이 많다”며 “독특하고 개성있는 브랜드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높은 굽을 신고 화려한 화장에 드러내는 옷을 입어야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직원들은 모두 하지정맥류를 앓고 있거나 하지정맥류 증상에 시달리고 있다. 작년 10월부터 일했다는 김보희(25)씨는 “오래 서 있는 게 이렇게 힘든 줄은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11센티미터 굽 신고 12시간 서서 일해

“발에 굳은 살이 생기기 때문에 혈액순환이 안 됩니다. 일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가족들이 놀랍니다. 다리가 퉁퉁 부어 있거든요.”

높은 굽의 구두를 신으면 체중이 앞으로 쏠리게 된다. 앞으로 넘어지지 않기 위해 허리를 뒤로 젖히게 되는데, 결국 허리에 큰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5센티미터 이하의 굽은 잘 안 신어요. 주위에 디스크 환자들이 만하요. 다리에 힘을 주고 꼿꼿히 서 있으면 등뼈가 정말 아파요.”

이윤근 원진노동환경건강연구소 책임연구원은 “4센티미터 하이힐을 신고 1시간 동안 서 있을 경우 허리근육의 피로가 시작되고 6센티미터 이상일 때 피로도가 증가하며, 8센티미터일 때 피로도가 2배 이상 커져 요통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천 신세계백화점에서 근무하는 박숙진(32)씨도 9센티미터의 굽을 신고 일하고 있다. 박씨는 164센티미터의 작지 않은 키이지만 굽이 낮으면 고객 메이크업을 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그는 지난 4월 하지정맥류 수술을 받았다.

“병원에 가면 부끄럽죠. 다리에 지렁이가 들어간 것처럼 울룩불룩하니까요. 멍도 너무 쉽게 들고. 계속 서 있다가 나중에 다리를 잘라야 하는 것 아닌가 두렵기도 해요. 그래도 일을 하고 싶은데 고민입니다. 이제 곧 아이도 가져야 해고. 주위에서는 그만두라고 합니다.”

점심시간에 앉을 자리 없는 휴게실

백화점 매장에서 앉을 수 없다면, 이들이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휴게실은 어떨까. 고객이 아닌 직원을 위해 마련된 휴게실을 찾았다. 롯데백화점 한티점의 잡화팀 휴게실. 직원 휴게실로 통화는 문은 1층 고객 화장실 옆에 있다. 이 문을 열면 화려한 백화점과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휴게실로 향하는 입구에는 ‘서비스 일등 백화점’ 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휴게실은 지하 3층에 있다. 그러나 휴게실까지 내려갈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는 없다. 온종일 서서 일한 직원들은 지하 3층까지 걸어서 내려간다. 휴식시간은 30분. 휴게실을 오르내리는 데 10분이 소요된다. 지하 3층 휴게실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이를 이용하는 직원들은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백화점 직원 김아무개(25)씨는 “고객과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면 안 된다는 원칙이 있기 때문에 사용해본 적도 없고 어디로 통하는 엘리베이터인지도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휴게실 문을 여니 직원들이 신발을 벗은 채 다리를 올리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미소짓지 않으려면 고객을 대하지 마라’는 표어가 눈에 띈다. 많은 직원들이 휴게실에서 간단한 간식을 먹는데, 환기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매캐한 냄새가 밀려왔다. 시원한 백화점과는 달리 냉방도 약하다.

20평 남짓한 공간에는 딱딱하고 낡은 쇼파 외에 별다른 편의시설을 없다. 청소상태도 불량해 쓰레기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고급스럽게 느껴지는 ‘백화점’의 이미지와 전혀 다르다. 잡화팀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이 쑥스러운듯 말을 건넨다.

“좀 지저분하죠? 그래도 점심시간에는 자리가 없어요. 여기서도 못 쉬고 백화점 밖 벤치로 나가는 직원들도 많아요. 우리는 그나마 낫죠. 남자직원들은 휴게실도 없어요.”

열악한 직원 휴게시설은 비단 이 백화점만의 얘기는 아니다. 인천 신세계백화점에서 일하는 박아무개(29)씨는 “물을 마시려 해도 백화점 밖 직원통로를 지나가야 하고 화장실도 줄을 서야 해서 그냥 직원통로에서 쉬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처럼 백화점은 매출을 위해 넓은 공간을 고객의 쉼터로 할애하지만 정작 노동자들의 건강은 뒷전이다.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열악한 시설로 서비스 여성노동자들이 다양한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또한 백화점 매장은 대부분 상품을 잘보이게 하기 위해 밝은 조명을 켜고 있는데, 결막염과 안구건조증의 원인이 된다. 백화점의 오염된 공기와 미세먼지로 천식과 같은 기관지를 호소하는 노동자들도 적지 않다.
서비스연맹의 조사결과 조사대상 서비스 여성노동자(681명)의 45.8%(276명)가 안구건조증을 진단받았고, 12%(71명)는 성대결절, 38.7%(230명)는 알레르기성 비염 등을 앓고 있었다.

낮고 좁은 마트 계산대

할인마트 노동자들은 특히 좁은 공간에서 장시간 같은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초등학생과 중학생 자녀를 둔 이아무개(42)씨는 아이들의 교육비를 마련하기 위해 대형마트 계산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씨가 일한 계산대는 높이는 860밀리미터. 이씨는’ㄷ’자형 으로 파인 홈에 서서 하루 평균 8~10시간 서서 일한다. 이씨가 있는 공간의 폭은 900밀리미터다. 하루종일 서서 평균 300명의 고객을 맞고 바코드를 찍는 동작만 1천번 넘게 한다.

“카트 한가득 물건을 싣고 오는 고객을 보면 겁부터 나요. 오랜 시간 좁은 계산대에서 꼼짝하지 않고 바코드만 찍고 있다보면 마치 기계 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가구디자인업체 관계자는 “계산대의 높이인 860밀리미터는 주부들이 이용하는 싱크대 높이와 같다”며 “서서 일하는 작업대의 표준 높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씨의 반응은 다르다.

“계산대가 씽크대와 같은 높이라도 하더라도 일할 때는 신발을 신고 하잖아요. 그래서 작업하기에 너무 낮아요 특히 서 있는 공간이 좁아서 물건이 떨어지면 몸을 잔뜩 웅크리고 주워야 합니다. 코드 하나 뽑기도 힘들어요.”

이씨는 계산원 생활 1년만에 왼쪽 인대가 늘어났고 오른쪽 다리의 실핏줄이 터졌다. 다리가 아파 잠시 한쪽 다리라도 올리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다. 관리자들에게 적발되면 평가에서 불이익(CS)을 받기 때문이다. 이씨는 취재내내 한시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강남의 한 대형마트에서 5년을 일했다는 윤아무개(48)씨는 하지정맥류를 치료하기 위해 6개월째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있다. 병원에서는 침으로 낫지 않으면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윤씨가 일하는 곳에서는 3번 CS에 적발되면 자동퇴사해야 한다. 앉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하지정맥류 외에도 이것저것 아픈 데가 많아요. 근무할 때 시선을 정면에 고정해야 하건든요. 작은 모니터를 오래 보다보니 시력도 많이 떨어졌어요.”

‘산업안전보건법’은 있으나 마나

윤간우 녹색병원 산업의학과장은 “하지정맥류는 미용상의 문제뿐만 아니라 혈관합병증의 원인이 되는 질환”이라며 “서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앉아서 쉴수 있는 기회만 제공하더라도 질병발생 위험과 악화를 멈출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산업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277조)은 “사업주는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근로자가 작업 중 때때로 앉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 때에는 당해 근로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의자를 비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서비스 여성노동자들은 “앉아 있으면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사회의 고정관념에 밀려 앉을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 화장품판매원 이아름(32)씨는 “사회 고정관념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몸이 편하면 손님을 더 친절하게 대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근데 우리가 앉아 있으면 예의 없어 보인데요. 회사도 그렇고 고객들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기댈 수도 없어요. 힘들어도 웃어야 합니다. 저 앞에 보이는 의자요? 그거 우리 의자 아닙니다. 고객들을 위한 의자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