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안전포커스]부실한 산업안전 감독, 더 부실한 사업주 처벌
노동부·검찰 단속 사업장 95% 법 안지켜…사법처리는 고작 1%
매일노동뉴스 김미영 기자
지난해 노동부는 3만3천536개 사업장에서 안전점검을 실시했다. 이중 90%인 2만9천979개 사업장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적발됐다.
그렇다면 법 위반으로 사법처리 된 사업장은 얼마나 될까. 지난 한 해 동안 143개 사업장에서 과태료 부과 등 처벌을 받았다. 법을 지키지 않은 사업장의 고작 0.4%에 불과했다.
노동부는 지난 6월에도 검찰과 공동으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업장 단속을 벌였다. 한 달 동안 전국 사업장 1천94곳을 돌아봤는데, 96.7%인 1천68개 사업장에서 법 위반사례가 적발됐다. 이런 모양새는 매년 반복되고 있다. 노동자의 목숨이 달린 산업안전보건법을 지키지 않는 사업장이 90%가 넘지만 처벌받는 사업장은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실적 부풀리기’ 위한 감독
산업안전보건법을 지키지 않는 사업장만큼이나 심각한 문제는 노동당국의 산업안전 감독도 부실하다는 점이다.
감사원은 광복절이던 지난 15일 9개 노동부 본부와 지방관서, 산업안전공단의 산업안전보건 관리분야 점검실태에 대한 감사결과를 발표했다. 그 내용은 참담했다. 노동부의 산업안전보건업무 전반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번에 적발된 사례를 보자. 대전지방노동청은 지난해 산업재해 취약계층인 비정규직의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건강증진을 도모한다며 ‘비정규 근로자 고용사업장 안전보건 점검’ 계획을 수립했다. 그런데 대전청은 계획을 마련하면서 비정규직을 고용하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75개 사업장을 점검대상으로 선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점검을 실시한 33개 사업장 가운데 8개는 비정규직을 전혀 고용하지 않고 있었고, 반대로 노동부의 지침대로 선정됐어야 할 6개 사업장은 빠졌다.
광주지방노동청은 지난해 실적에 대한 평가시한(11월 말)이 임박해오자 10월과 11월 두 달만에 전체 점검대상 사업장의 38%에 해당하는 432개 사업장을 점검했다. 하루에 한 사업장을 방문해 안전점검을 실시했으면서도 세 차례에 나눠 점검한 것처럼 실적을 부풀렸다.
경인지방노동청 안산지청은 2006년 상반기 중간평가 결과, 안전점검 분야에서 41위를 기록하자 사업계획에 없던 안전관리 대행사업장 특별점검 계획을 수립했다. 182개 사업장을 방문하지도 않은 채 사업주가 스스로 기재한 지적사항을 ‘시정조치 실적’으로 보고했다.
부산지방노동청 양산지청은 지난해 타이어 제조사업장 안전점검을 하라는 지침이 떨어지자 관할 타이어공장을 방문했다. 이 공장 의무실에서 회사측 간호사와 안전팀장을 만나 딱 5분 간 머물렀다. 해당 감독관은 회사측 관계자 말만 듣고 ‘근로자 건강진단 사후관리 실태가 문제없다’고 보고했다.
드러난 감사원 결과가 이정도다. 실제 현장에서는 ‘산업안전 감독이 허술하다’고 지적한다. 금속노조는 지난해와 올해 물질안전보건자료(MSDS)가 사업장에 제대로 작성돼 있는지를 점검하고 있다. 60개 사업장을 선정해 시범조사를 벌였는데 그 결과 단 한곳도 제대로 작성된 곳이 없었다.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완성차 4사조차도 유해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내용이 누락되거나 허위로 작성돼 있었다.
박세민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은 “물질안전보건자료를 작성·게시토록 한 법 규정이 시행된지 12년이 흘렀지만 노동부가 지금까지 이를 관리·감독한 적은 단 한차례도 없다”며 “거의 모든 사업장에서 엉터리 물질안전보건자료를 비치해놓고 있지만 노동부는 감독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인 산업안전보건법
이렇게 부실한 산업안전 감독 속에서도 매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율은 90%가 넘는다. 지난해 노동부·검찰 합동단속에서도 95% 이상 사업장이 산업안전보건법을 지키지 않았다. 노동부와 검찰은 2003년부터 반기별(지난해부터 연별로 전환)로 합동단속을 나가는데 그때마다 평균 95% 사업장이 법 위반으로 적발되고 있다.
그러나 사법처리된 사업장은 1%가 넘지 않는다. 노동부는 법 위반사례가 적발되면 시정조치 명령을 내리고, 그래도 시정하지 않은 사업장을 사법처리하고 있다. 때문에 대부분 사업장들은 ‘법 위반’으로 적발돼도 큰 부담이 없다.
사망재해가 발생해도 사업주 처벌이 이뤄지는 경우는 드물다. 2005년 국정감사에서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 소속 김영주 열린우리당 의원은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시공능력 평가액(도급) 순위 1~30위 건설업체의 공사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 사법처리 결과를 분석했다. 그 결과 단 2건만 구속처리됐고, 나머지 90.9%인 230건은 모두 불구속으로 처리됐다.
대부분의 산재사망사고는 죽은 사람은 있지만 죽인 사람은 없는 셈이다. 대표적으로 올 초 40명의 노동자 목숨을 앗아간 이천 코리아냉동 화재사고에서 사업주가 구속됐지만 혐의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아니라 소방방재법 위반이었다. 검찰의 공소장에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에 대한 구형은 없었다.
또 지난 2006년부터 1년6개월 사이 15명의 노동자가 돌연사 등으로 숨진 한국타이어 사례도 마찬가지다. 한국타이어는 지난해 특별근로감독에서 1천394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례가 적발됐다. 산업재해 은폐도 183건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노동부는 한국타이어 사측을 구속의견으로 송치했지만 검찰은 9개월 넘도록 ‘수사 중’이다.
부실한 산업안전 감독과 더 부실한 사업주 처벌로 인해, 지금도 노동자들은 산업재해의 위험속에서 목숨을 걸고 일하고 있다. 노동계와 민주노동당은 영국처럼 ‘살인기업법’을 만들어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한 사업주를 가중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노동규제 완화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 상반기 산업재해는 지난해보다 40%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한번 ‘산재왕국’에서 벗어나기 위한 움직임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