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처리 해달랬더니 공상처리 당하더라”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건으로 본 미조직 대기업 노동자의 건강권

이현정 원진교육센터 연구원

“또 올게. 외로워하지 말고 잘 있어.”

납골당을 떠나는 마지막에 정애정씨는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남편을 떠나보낸 지 3년이 되었지만 슬픔의 깊이가 잦아들지 않은 울음이다. 정씨의 남편은 지난 97년 7월 삼성전자(주) 반도체사업부 기흥공장에 입사, 1라인 설비 엔지니어로 근무하다 2004년 10월 급성림프모구성 백혈병을 진단받고 항암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2005년 7월 운명했다.

7년 일한 공장인데, 백혈병과 관계없어?

정씨는 남편을 혈기왕성하고 감기도 잘 안 걸리는 사람이었다고 기억했다. 혹시라도 감기기운이 있으면 미리 약을 사서 먹을 정도로 몸을 챙겼던 남편은 군 제대 후 바로 삼성에 입사하여 기흥공장을 떠난 적이 없었기에 정씨는 남편의 백혈병 발병 원인이 공장 내에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 자신도 기흥공장에서 10년을 일했던 노동자이기에 반도체 공정의 유해성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의 생각은 달랐다. 회사는 단지 남편이 백혈병이 걸린 시기에 공장에 있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반도체 공정이 병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산재여부를 가리는 심사는 아직 진행 중이다.

정씨는 “노동자를 대변하는 집단이 있었다면 뭔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노동조합 역할을 모를 때 그저 삼성은 무노조구나라고 알고 있었다. 노조가 없다는 게 좋은 지, 나쁜 지도 몰랐다. 노조 없어도 월급 제대로 나와, 이익금도 돌려준다고 해, TV에서 보이는 싸움도 없어 굉장히 평화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 일을 당하고 나니 달랐다. 회사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접하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삼성이 ‘마이다스 손으’로 밖에 다가오지 않으니까 무조건 헌신하게 되는 것 같다는 것이 정씨의 판단이다. 정씨는 연말에 주는 특별성과급이 노동자를 달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대기업 삼성은 불법 경영승계로도 유명하지만 그에 앞선 것이 무노조 경영이다. 노동조합을 만들려는 낌새만 있으면 그 주체는 탄압받다 해고되기 일쑤고 해고 뒤에도 끊임없이 감시·추적당한다. 그래서 굴지의 대기업 삼성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노조가 없는, ‘미조직 노동자’다. 노조가 없어도 임금과 복지에서 다른 기업에 부족한 게 없는 삼성이라 쳐도 그 외 노동자의 권리는 제대로 확보되지 않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노동자 건강권이다.

‘돈’으로 억울한 마음 처리하는 회사

“노조가 없으니까 사원들이 회사 방침에 무조건 따라 갈 수밖에 없다.”는 김갑수씨. 그는 삼성계열 기업에서 일하다 해고돼 현재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에서 일한다. 삼성반도체 집단백혈병 진상규명 및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대책위)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김씨는 “산재은폐가 굉장히 많다”고 말했다. 그 자신도 산재를 당했던 사람이다. 생산라인이 멈출 정도의 산재가 발생했고 당사자가 산재를 원했지만 공상처리를 ‘당했다’고 한다.

브라운관을 만드는 공정에서 진공을 시키는 작업을 담당했던 김갑수씨는 브라운관 폭발로 병원에 입원했고 병실에서도 산재로 있었는데, 어느 날 보니 일반으로 바뀌어 있더란다. 원무과에 알아보니 회사가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환자복을 입은 채로 회사를 방문, “산재로 처리해 달라”고 했지만 그의 뜻은 반영되지 않았다.

브라운관을 진공시키는 과정에서 내부에 찬바람이 닿는다든가 외부에 충격이 가해지면 브라운관이 폭발, 유리파편이 노동자에게 튀어 얼굴·눈·손 등 신체에 상처를 낸다. 그런 사건이 매우 많다. 회사도 이미 그런 사실을 잘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사고를 모두 공상처리 하기 때문에 외부에 알려지지 않고 있다. 사고가 났을 때 지정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은 뒤 며칠 쉬고 오면 회사 근무기록표에는 다 출근한 것으로 처리하는 식이다.

김씨는 “현장에 있는 화공약품이 인체에 해로운 것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선배들도 다 썼는데 설마 회사가 노동자들 속이고 나쁜 것들을 사용하겠나하고 대충 넘기다보니 문제가 계속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사고가 났을 때 산재를 해야 되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산재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회사에서 어떻게 해주겠지라고 생각합니다. 회사는 공상처리를 통해 외부에 산재가 알려지지 않도록 하고요.”

김씨는 삼성에서 일하면서 과로사한 동료에 대해 말했다. 그의 유족들은 처음에는 너무 억울해하며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결국엔 개인적으로 처리를 하고 말았다. 문제는 돈 때문이었다. 삼성측은 산재로 인정됐을 때 유족이 받는 보상금액을 미리 계산한 다음 그보다 약간 더 높은 액수를 지급하겠다고 제안한다. 그래서 유족들을 갈등하게 만든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돈으로 억울한 마음을 처리한다는 것이다. 한 사람에게 일어난 문제가 전체 노동자에게로 확산되지 않게 마무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삼성의 방식이라고 김씨는 강조했다.

유해환경은 카메라에 담지 못해

물론 삼성에도 안전보건 교육이 있다. 하지만 김갑수씨와 정애정씨가 말하는 교육이란 것은 보호구 착용 정도였다. 공정 중에 사용하는 유해물질이나 산재와 관련한 정보는 없었다.

정씨는 “(안전보건)교육도 회사 입장에서만 하고 노동자 입장에서 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회사는 법만 피해가면 되니까 환경안전 교육을 몇 시간 받으면 된다는 조항만 채우면 된다는 식”이라고 했다. 기껏해야 보호구 착용방법 정도를 교육했다는 것. 정작 위험한 취급 화학물질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언급도 없었다고 한다. 그마저도 물량이 많아 바쁜 시기에는 교육이수를 증명하는 종이에 사인만한다. 회사 관리자는 “누가 물어보면 ‘했다’고 하라”는 주문까지 했다.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의 백혈병 문제는 황민웅씨에 그치지 않는다. 2007년 3월 황유미씨, 2006년 6월 이숙영씨가 백혈병으로 사망했고 신원을 밝히지 않은 또 다른 2명도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또다는 한 명은 현재 백혈병 투병 중이다. 삼성반도체 천안공장에서 일했던 한 여성 노동자도 백혈병을 앓고 있다.

정씨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환경을 “뉴스나 TV에서 보이는 것과 똑같다”고 했다. 그러나 “카메라는 현상뿐이지 그 안의 냄새는 잡지 않는다”며 카메라를 통해 보여지는 현장과 실제 현장은 다르다고 말했다. 들어가면서 착용하는 의상부터 화학약품 냄새가 나고 라인에서도 냄새가 나는데 가장 보편적인 작업환경이 그렇다. 더 들어가보면 공정별로 냄새의 정도가 다르다. 특히 작업장 내부에서 떠다니는 파티클(미세먼지)을 잡아야 해서 내부압력이 상당히 높다. 높은 압력은 인체를 짓누르기 때문에 엄청 몸이 무겁고 피곤하다. 팔다리 붓는 것은 예사이고 몸이 허약한 사람들은 가끔 코피를 흘리기도 한다. 정씨의 동료 중 한명은 코피가 멈추지 않아 결국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인위적인 공간에서 일하다 보니 몸이 안 좋으면 대기 상태에서 느끼는 통증의 배가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모르는 사람들은 일정한 온도·습도에서 일해 좋겠다고 하지만 모르는 소리”라며 “눈으로 안 보이는 압력·화학약품 냄새·불합리한 노동조건은 카메라에 담을 수 없다”고 밝혔다.

씁쓸한 대기업 노동자 신세

한편 김갑수씨는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건과 관련해 “삼성은 백혈병이 산재로 인정을 받느냐, 마느냐보다 제3의 제보자가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게 제일 시급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는 “최대한 제보가 나오지 않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노동조합이 있다면 달라지지 않을까.

김씨는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것은 다 알지만 삼성이 워낙 거대한 조직이고, ‘삼성권력’이 좌지우지하는 사회를 교육을 통해서도 배우고 피부로도 느끼기 때문에 노동자 개인이 적극 나서기 쉽지 않다”고 했다.

삼성 경영자는 노조가 없어 행복할지 모르나 노동자 입장을 대변하는 조직이 없는 노동자는 행복하지 않다. 노동조합 활동은 임금·복지만이 아니라 노동과 관련된 모든 조건을 유지하거나 개선하기 위해 늘 움직이기 때문이다. 특히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노동자 건강권이다.

정애정씨는 요즘 TV에서 삼성 이미지광고를 보면 채널을 돌린다. “실제로 공장 안은 개차반인데 모르는 사람들은 삼성은 인간적이라고 인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그의 말은 조직되지 않은 대기업 노동자의 씁쓸한 단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