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게차와 전쟁 선포한 금속노조
지게차 사망사고 잇따르자 안전작업 기준 마련 … 소속 사업장에 노사합의 추진 지침
매일노동뉴스 김미영 기자
금속노조가 지게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올 들어 조선소를 중심으로 지게차에 의한 산재사망이 줄줄이 터지자 두 팔 걷고 나선 것이다. 노조는 지게차 안전작업 표준안을 만들어 각 사업장에 전달하고, 이달 안에 노사합의를 마무리 지으라는 지침을 내렸다.
지게차에 의한 사고는 2일에도 발생했다. 이날 오전 10시25분께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정문에서 경비원 노아무개(45)씨가 지게차 포크에 가슴부위가 끼어 숨졌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정문을 지키는 경비업체 소속 직원인 노씨가 사망한 이유는 지게차가 너무 많은 물건을 싣고 움직였기 때문이다. 사내하청업체 소속 지게차 운전자 김아무개씨는 전선케이블이 든 박스를 지게차에 가득 실어 전방 시야가 가려진 상태였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득 물건을 실은 지게차 운전자는 길 위에 있던 노씨를 발견하지 못했고, 결국 노씨는 뱃속의 장기가 노출될 정도로 심한 부상을 입었다. 병원으로 급히 후송됐지만 피를 많이 흘린 노씨는 이날 오후 12시22분께 사망했다.
동일한 사망사고는 지난 5월에도 두 건이나 발생했다. 하청노동자 고아무개(43)씨는 5월22일 대우조선소에서 지게차에 치여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대우조선노조에 따르면 지게차 운전자의 시야를 가릴 정도로 많은 적재물을 싣고 작업지휘자 없이 코너를 돌다 운전자가 미처 고씨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 사고의 원인이다. 숨진 고씨는 지게차 바퀴에 깔린 채 100미터가량이나 질질 끌려가 시체조차 온전치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보다 일주일 앞선 16일에는 두산중공업 창원공장에서 하청노동자 변아무개(35)씨가 공장 안을 이동하다 지게차에 깔린 채 수십미터를 끌려가 숨졌다. 이 사고 역시 지게차는 운전자가 전방을 주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물건을 싣고 있었고, 지게차 운전의 안전을 돕는 신호수가 배치되지 않아 일어났다.
금속노조는 “6월13일 대전 유성의 한 사업장에서도 똑같은 사고가 발생해 올 들어서만 4명이 지게차에 끼이거나 깔려 사망했다”고 밝혔다.
산업안전공단이 조사한 산업재해 원인통계에 따르면 지게차로 인한 사망은 매년 전체 산재사망자의 2~3%를 차지하고 있다. 2005년 산재사망자 1천142명 중 32명, 2006년은 1천133명 중 23명이 지게차로 인해 숨졌다.
잇단 지게차 사망사고, 왜?
한진중공업·두산중공업·대우조선소에서 발생한 지게차 사망사고는 모두 운전자가 시야를 가릴 정도로 많은 짐을 싣고 작업한 것이 원인이다. 금속노조는 지게차 사망사고가 연달아 발생한 6월23일부터 7월12일까지 3주간 소속 사업장 93곳을 대상으로 자체 실태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사고위험 예방 및 안전대책에 관한 작업계획서(안전수칙) 미작성 △작업지휘자 및 유도자(신호수) 미배치 △지게차 운전자의 시야 확보 기준의 미설정 및 시야 미확보 △지게차 운전자의 자격과 안전교육 미실시 등의 안전조치가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작업장 내 좁은 이동통로나 지게차 과속방지 장치를 달지 않은 사업장도 일부 있었다.
안영태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지게차 산재사망은 노동강도와 관련이 높다”고 말했다. 산업안전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지게차 운전자는 시야를 가리지 않도록 화물을 적재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공정에서 시간당 투입인원을 계산하는 탓에 지게차 운전자들은 더 많은 짐을 싣고 운반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또 출하업무의 외주화도 지게차 사망사고의 원인 중 하나다. 올해 발생한 사망자 대다수가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이다. 산업안전기준에 관한 규칙에는 지게차 운전시 반드시 신호 유도자를 배치하도록 돼 있다. 적당한 적재물로 시야확보를 했다 해도 지게차 구조상 사각지대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금속노조는 “출하업무 외주화 등으로 인해 지게차 운전작업에 신호 유도자를 별도로 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노동부의 감독 부재가 안타까운 사망재해를 유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게차 안전작업 표준안 만든 금속노조
노조는 지게차 사망사고를 막기 위해 대책마련에 분주하다. 지게차 운전자에 대한 특별안전교육 2시간 실시하도록 했다. 지게차 운전자뿐만 아니다. 법정 정기 안전교육과 별도로 지게차와 관련된 작업 내용을 중심으로 2개월에 1회, 1시간 이상을 필히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사업장 자체로 교육을 실시하기 어려운 중소사업장은 지부가 관장해 교육하기로 했다. 노조는 또 ‘지게차 안전작업 표준(안)’을 만들어 이달 안에 노사 합의를 추진하라는 지침을 전 사업장에 내렸다.
이제 남은 것은 사업주와 노동당국의 몫이다. 두산중공업은 2004년 11월9일, 2005년 1월21일 두 달 간격으로 지게차 관련 사망사고가 발생했었다. 당시 노사는 △지게차 운행 시 신호수 배치와 안전 교육 등 재발 방치 대책을 마련했으나 올해 다시 재발됐다.
안영태 실장은 “노동부가 의지를 가지고 작업장 감독에 나선다면 지게차 산재사고는 충분히 막을 수 있다”며 당국의 철저한 지도·감독을 촉구했다.
금속노조 지게차 안전작업 표준(안) 주요내용
– 지게차를 사용하는 작업 시 작업계획서 작성, 작업지휘자 지정
– 지게차 운행 시 최대 속도는 매시 10킬로미터 이하로 하되, 물건을 운반할 때는 매시 5킬로미터 이하로 규정. 과속방지 장치 부착
– 작업자가 지게차나 물건에 접촉하지 못하도록 작업지휘자 또는 신호수를 배치하고, 사각지대를 대비해 후방카메라 설치·운영
– 지게차 운행 시 휴대폰·무전기 사용 및 라디오 청취 등 불안전한 행위 일절금지
– 물건 적재하고 이동시 화물 높이는 지상에서 최대한 낮게 하며 운행에 지장이 없을 정도의 높이로 유지.
– 지게차 작업지휘자·작업자·신호수를 대상으로 별도의 안전교육 정기적 실시
– 지게차는 전문교육 이수자가 운행
– 전조등 및 후미등을 갖추지 않은 지게차 사용금지
– 작업장 내 도로의 횡단보도와 경계선 등 노면표시를 해야 하며, 지게차 이동통로와 작업자 안전통로 구분해 안전거리 확보
– 지게차 작업시 포크·버킷·암 또는 이들에 의해 지지돼 있는 화물의 밑에 작업자 출입금지, 작업지휘자는 작업 반경 5미터 이내에 일반 작업자 접근방지 조치
– 지게차가 넘어지거나 물건이 떨어져 주위 작업자에게 위험을 미칠 우려가 있을 경우 지게차를 유도하는신호수를 배치하고 지반이 침하된곳이나 갓길·비탈길 등을 지게차가 운행하지 못하도록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