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 다 지키면 사업 망한다?
성서공단 밑바닥 노동자 이야기

박찬희 성서공단노조 부위원장 08-08-27

성서지역은 대구광역시 최대 공단과 주거지역이 공존하는 곳이다. 달구벌 대로를 사이에 두고 한쪽은 아파트가 밀집한 주거지역이며, 한쪽은 대구 최대 규모인 성서공단이 자리하고 있다. 노동자 한 사람으로 보면 하루 24시간을 달구벌 대로 이쪽저쪽에서 다 보낸다고 할 수 있고, 그런 노동자들이 많다. 따라서 노동자의 가계 사정이 이 작은 지역사회에서 밀접한 영향을 미친다.

사업체수의 80%가 50인 이하 사업장

성서공단은 임금·노동조건 등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영세사업장이 밀집해 있다. 성서공단은 80년대 중반 1차 단지 조성을 시작으로 2000년대 초·중반 4차 단지 조성까지 해 현재는 대구 최대 규모의 지방 산업단지가 됐다. 공단 전체 규모를 보면, 5만5천명의 노동자가 2천500여개의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 사업장 규모가 영세함을 알 수 있다. 50인 이하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과반수이고, 사업체수로 보면 80% 이상이다.

공단 전체로도 조직률은 전국 평균보다 낮으며, 영세사업장은 거의 0에 가깝다. 4인 이하 사업장은 그 자체로 근로기준법이 제한적으로 적용되며, 노동조합의 부재는 스스로의 권리를 지켜내고 확보하는 것조차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이속에서 영세사업장 사업주들은 ‘노동법 다 지키고 사업하면 망한다’고 버젓이 주장하고, 그나마 자신들이 사업체를 유지하기 때문에 고용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성서는 지역사회 자체가 인터내셔널하다.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는 정확한 통계를 낼 수가 없다. 추산하기로 전체 중에 약 10%는 이주노동자일 것으로 본다. 공장뿐만 아니라 시장·마트·공원 등 성서지역에서는 언제, 어디서든 이주노동자와 마주친다. 한국인들의 생각이 어떠하든 이미 같은 공간, 같은 생활환경에서 함께 공존한다. 또한 영세사업장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노동력이다. 반드시는 아니지만 대체로 젊은 남성 노동력은 거의 이주노동자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서공단노조는 위와 같은 지역사회를 배경으로 2002년 10월 지역노조 형식으로 설립됐다. 또한 산별노조를 중심으로 노동조합의 조직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이 지금도 진행되는데, 이에 대한 비판적 기획을 포함하고 있다. 산별노조는 10% 내외인 노동자 조직률을 높이기 위해 광범위한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한다는 목표를 항상 포함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산업을 축으로 하는 종적인 질서가 강화될수록 횡적 질서인 지역연대가 약화되는 것이 현실이었다. 성서공단노조는 영세사업장 노동자와 이주노동자를 조직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가장 열악한 위치에 있는 노동자들을 노조의 주체로 세움을 뜻한다. 비정규직·실업자 등도 조직대상이다. 그 성과는 아직까지 미미하다. 공단 전체를 대상으로 활동을 펼치지만 정작 조합원은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노조는 좋으나 가입은 ‘갸우뚱’

노조는 성서공단 영세사업장 노동자를 대상으로 보다 실천적이고 현실적인 데이터 마련과 비정규직과 다름없는 노동권 사각지대 문제 등을 사회적으로 제기하기 위해 실태조사를 했고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2005년 50인 이하 영세사업장 노동조건 실태조사

임금·노동시간·노동조건·노동환경이 얼마나 열악한가를 수치로 확인하는 실태조사였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실수령액을 기준으로 월평균 147만원, 상여금은 연간 약 177% 수준이었다. 노동일도 주중 약 4일은 연장근로를 하고, 토요일도 99%가 출근해 오후 4~5시까지 일했다.

2. 2007년 50인 이하 영세사업장 노동자의식 실태조사

2007년도 조사는 노동조합에 대한 생각이 어떠한가가 초점이었다. 약 70%의 노동자들이 우호적인 생각이었다. 그러나 ‘가입하겠는가?’라는 질문에는 약 30%만이 긍정적으로 답변했다. 물론 현실의 조직률은 그것도 되지 않는다. 여성·저학력 등 보다 취약한 노동자일수록 노조 필요성은 높은 데 반해 가입의사는 낮았다. 이러한 결과는 현실 노조운동을 하는 주체들이 반성을 하게 만들고, 이러한 노동자들을 주체로 세우는 노조의 상에 대해 많은 고민을 던지는 것이었다.

3. 2008년 50인 이하 영세사업장 건강권 실태조사

영세사업장 노동자에 주목하는 연장선에서 앞선 두 차례 실태조사 속에서 건강과 안전, 작업장 환경에 대해 별도로 조사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돼 현재 진행 중에 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공단 거리에 나가 노동자들을 1대 1로 면접 조사한다. 지난 5월부터 시작했으나 여러 가지 활동으로 매일하지는 못한다. 현재는 폭염으로 잠시 휴식 상태다. 가을쯤엔 결과가 나올 것이다.

성서공단노조는 크게 두 축의 사업을 한다. 하나는 영세·비정규 노동자 사업이고 또 하나는 이주노동자사업이다. 각각은 노조 자체 사업과 지역 연대사업을 또다시 축으로 가진다. 전자의 연대사업 축은 ‘성서지역 노동자·주민 기본권보장 공동대책위’와 민주노총 내의 연대사업이 있고, 후자는 ‘이주노동자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연대회의’라는 틀이 주요하다. 노동조합을 기본으로 연대단위들과 함께 선전·교육·투쟁·상담활동을 펼친다.

선전활동은 매월 선전물을 발행하고 출근선전전·중식선전전을 진행한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선전은 별도로 저녁시간이나 자주 모이는 곳 등을 찾아다니는데, 매월 정기적인 선전전만큼 잘 되지는 않는다. 기본적인 선전활동과 연계돼 상담이 굉장히 많다. 대체로 임금·고용·산재 관련 문제들이다. 이주노동자의 경우는 내용이 좀 더 다양하다. 상담은 노동자 개인에 대한 권리구제로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노동자들의 현실적 상태, 현장의 흐름 등이 노동조합으로 주요하게 포착되는 경로이기도 하다.

대구지역의 ‘좋은 친구들’이라는 노래패의 적극적 동참으로 수년째 꾸준히 하는 사업으로 일명 ‘밥 한술 뜨고 노래 한 자락 듣고’라는 거리공연이 있다. 봄·가을에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에 공단 거리 곳곳을 돌아다니며, 노래공연이라는 문화매체를 통해 노동·노동자·권리에 대해 얘기하고 선전활동을 진행한다.

영세사업장의 경우 회사식당이 없다. 공장 밖으로 점심식사를 위해 나가는 길목·식당 앞 등에서 공연을 펼친다. 삭막하고 옆을 돌아 볼 여유 없이 노동에 매여 있는 노동자의 일상 속에 문화매체로 스며들고자 하는 사업이다.

한편 지역에는 성서공단노조의 활동보다 역사가 오래된 사업이 있다. 2001년부터 8년째 이어오는 사업으로 수요공연, ‘우리들 삶의 이야기 ‘공감”이 그것이다. 아파트단지 사이에 있는 와룡공원에서 열리는데 지역주민들 사이에서 노동과 노동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공감대를 넓히고자 하는 사업이다. 지난해까지는 ‘우리는 노동자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는 제목으로 했지만, 근로기준법이 너무도 너덜너덜한 현실적 상황과 노동자가 곧 시민인 상황에서 삶에 대한 보다 넓은 이야기로 공감하는 공간을 만들자는 취지로 개명했다.

여름 한철 매주 수요일에 노동·교육·민영화·이주노동자 등의 주제를 갖고 공연을 펼치는데 노래·몸짓·연극·영상·풍물 등 다양하다. 공연하는 주변으로는 천막노동상담소를 노무사들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고 각종 선전 전시물도 펼쳐놓는다.

투쟁활동은 기본적으로 연대투쟁이 주를 이룬다. 비정규직·영세사업장·장기투쟁·이주노동자투쟁을 중심으로 한다. 노조 자체적으로는 상담과 그에 따른 대응과 투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고, 현장에 대한 조직화와 단체협약을 체결하기 위한 투쟁도 있다. 이주노동자 투쟁은 단속추방 반대와 노동허가제 쟁취가 주요투쟁이다. 가끔 많은 수는 아니지만 그쪽 나라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집회를 함께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미얀마 민주화투쟁 연대집회, 네팔 국왕 하야를 위한 연대집회, 전쟁반대집회 등이 있다.

현장의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해 단체협약을 체결하기 위한 투쟁을 하더라도, 최소한 그 사업장 내 전체 노동자들의 수준을 향상시키는 목표를 설정하고, 더 나아가 공단 전체 노동자들의 요구를 대변할 수 있는 투쟁으로 조직하고자 한다. 이를 실현시켜 나가면 ‘공단협약’의 형태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생존을 위한 ‘연대’가 필요한 21세기

조직된 10% 노동자가 미조직 노동자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

가장 낮은 임금, 가장 긴 노동시간, 가장 고약한 노동환경, 가장 혹독한 노동통제 속에 있으며 무엇보다도 자신의 처지를 개선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계층, 이들이 바로 미조직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비정규 노동자, 영세사업장노동자, 청소년노동자, 여성노동자, 그리고 죽어도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사업장 안에 갇힌 노동자…. 이들은 결과적으로 안전보건 보호막에서도 가장 변두리에 존재한다. 이러한 주장이 결코 무리하지 않다는 것이 이 글의 주요 논지다.

규모 작을수록 임금·안전보건 열악

유감스러운 것은 우리나라 노동자 대다수가 거의 이러한 상태에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노동조합 조직률은 2005년 현재 약 12%, 계산방식에 따라서는 10%까지 떨어진다. 사업장 규모가 커질수록 조직률은 매우 높은 경향을 띠며 사업장 규모가 작아질수록 반대 양상을 보인다.

그 격차도 매우 높아 0.4%~56.6%라는 엄청난 차이를 나타내 큰 우려를 낳고 있다. 평균으로 보더라도 우리나라 노동자의 약 90%는 미조직노동자인 것이다.

조직 노동자와 미조직 노동자는 어떠한 차이를 안고 있을까? 우선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내용이 임금격차다. 노조조직률이 높은 곳이 ‘자본의 지불능력’이 존재한다고 얘기되는 대사업장이라는 측면을 고려하더라도 노조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주요한 교섭력으로 작용한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실제 다음의 통계자료가 보여주듯이 노조가 있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임금격차는 매우 크다.

그렇다면 다른 조건은 어떠할까? 남성보다는 여성의 조직률이 낮고 중장년층보다는 청년층의 조직률이 낮고 상용직보다는 임시일용직의 조직률이 현저히 낮다. 이 중 가장 큰 차이를 드러내는 항목이 고용형태별 구조임을 알 수 있다.

지면의 한계로 더 이상의 통계자료를 제공하지 않더라도 여성의 임금수준이 남성의 60% 수준에 불과하다는 사실과 청년노동자의 노동조건이 ‘88만원 세대’라는 고유명사를 만들어낸 것, 비정규 노동자들이 정규직 임금의 50% 수준이라는 점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 됐다. 이들의 조직률이 비교대상 집단보다 낮은 것이다. 어디 임금뿐이겠는가.

이러한 제반의 조건은 결국 안전보건 영역에서의 큰 격차로 귀결된다. 우리나라 전체 산업재해 결과는 사업장 규모별로 살펴볼 때 거의 대부분 10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산재의 81.2%가 10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어나며 사망재해의 66.8%가 100이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다.

단체교섭 적용범위 넓혀야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들의 실마리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당장 조직률을 수십 %포인트 올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그것은 사실상 중장기 과제다. 지금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를 살펴야 한다.

핵심적인 정책대안이라고 한다면 여러 가지를 얘기할 수 있겠으나 여기서는 단 한가지만 설명하고자 한다. 미조직 노동자들의 안전보건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결국 조직노동자가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현재의 산별노조가 가지고 가야 할 주요한 몫이다. 바로 단체협약의 적용범위를 넓히는 일이다. 프랑스와 스페인 같은 나라들은 우리와 비슷한(그리고 우리처럼 다양한 경향의 중앙산별이 존재하는) 10% 조직률 수준으로도 넓은 적용범위를 자랑한다. 이는 노조가 무엇을 요구하며 싸우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우리는 밥 먹듯 ‘연대’를 외치지만 정말 쉽지 않은 일이 바로 이 연대다. 그러나 결코 포기할 수도 그렇게 돼서도 안 된다. 그렇게 된다면 정말 노조운동의 미래는 없을 테니까. 좀 더 솔직해지자면 아름다운 연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10% 조직률의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생존’하기 위해서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한인임 노동안전보건교육센터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