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정 품은 환자에 피살된 간호사 ‘업무상재해’
대법원 “홀로 야간근무, 업무연관성 있다”…”범인의 사적인 감정에서 비롯” 원심 파기
매일노동뉴스 김미영 기자 08-09-02
병원에서 야간 당직근무 중이던 간호사가 연정을 품은 퇴원환자에게 살해당했다면 ‘업무상재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홍훈 대법관)는 병원 야간 당직근무 중 연정을 품은 환자 이아무개씨에게 피살된 간호사 ㄱ씨의 어머니 박아무개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산재보험유족보상·장의비청구 부지급결정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업무상재해가 아니다”고 판단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일 밝혔다.
지난 2006년 4월부터 한 달 간 충북 제천시의 한 정형외과에서 무릎치료를 받은 이씨는 퇴원한 뒤 입원해 있는 동안 자신을 친절하게 간호했던 간호사 ㄱ씨에 교제를 제의했으나 거절당했다. 한 달 뒤인 5월20일 이씨는 병원에서 야간 당직근무를 하던 ㄱ씨를 찾아 성관계를 요구하다 거부당하자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했다.
ㄱ씨의 어머니인 박씨는 “병원 경비가 허술했기 때문에 ㄱ씨가 살해당했다”며 업무상재해로 인정해줄 것을 공단에 요청했다. 공단은 그러나 이씨의 사적인 감정에 의해 발생한 사건인 만큼 ㄱ씨의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며 유족보상 및 장의비를 지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박씨는 이에 공단을 상대로 산재보험유족보상·장의비청구 부지급결정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ㄱ씨가 간호업무를 수행하다 살해당한 만큼 이 사건은 망인의 업무에서 기인했고 병원에 경비원이 상주하지 않고 경비시설도 설치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사건이 발생한 만큼 업무상재해”라며 “유족보상 및 장의비를 지급하지 않기로 한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이 사건은 이씨의 사적인 연정에서 비롯됐고 간호업무에 내재돼 있거나 간호업무에 수반되는 위험이 현실화된 사건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한 뒤 “이씨의 개인적인 원한이나 감정에서 사건이 유발된 만큼 업무상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이씨는 해당 병원이 외부인의 침입에 취약하고 범행 당일 야간에 여성간호사인 ㄱ씨 혼자 당직근무를 한다는 사실을 미리 확인한 뒤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며 “따라서 ㄱ씨의 업무 자체에 범행의 표적이 될 수 있는 위험성이 내재돼 있어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고 원심을 파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