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명]
95년의 죽음을 넘어 선 한타 동지들 2008년 뜨거운 여름 대반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몰랐다. 잡다한 일상과 그럴듯한 자족에 도취되어, 우리는 그가 저 머나먼 해남 땅에 유폐 퇴출되어 뇌종양과 생사를 놓고 소름끼치는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1994년 한국타이어에 입사. 가류과 GIP에 근무하였다. 1995년 한국타이어 노동자 대투쟁의 이유로 쫓겨나 10년이 지난 2007년 뇌종양으로 남들은 세상을 살면서 단 한번도 두개골이 노출되지 않지만 이미 이 동지의 두개골은 두 번이나 칼끝이 휘젓고 지나갔고 뇌종양이 또 다시 자라고 있다는 청천벽력 이였다.
94년 ~ 97년 가류과에 근무하며 수많은 유기용제에 피폭되어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 역사상 어느 나라에서 이토록 한꺼번에 단일 사업장에서 수백명이 한꺼번에 독극물에 노출되어 집단적 사망과 중독이 문제가 된 일이 있었던가.
어느 나라 어느 공장에서 이토록 오랜 시간 잔인하게 노동자를 탄압하고 죽음의 산재 계곡 속에 신음하게 하였는가 우리는 들어 보지 못했다.
우리는 이 모든 기나긴 투쟁과 탄압을 딛고 일어서 한 노동자의 마지막 죽음의 각오를 주목하고 있다.
바로 기업주 구속처벌과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10만 서명운동 제2차 호소문의 두개골 수술 사진의 주인공이다.
95년 겨울. 한국타이어 노동자 투쟁의 영혼을 갈갈이 찢어온 배신과 탄압이 있었지만 뒤에는 2008년 대반전의 뜨거운 여름이 기다리고 있다.
관계 당국은 유기용제 피해 노동자들을 제보하여 역학조사가 될 수 있도록 안내해 달라고 한다. 이는 더 이상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의 사망과 산업재해를 은폐하거나 숨길 수 없는 상황에 있음을 노동부와 청와대가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혼자였을 때 눈물이 되어 되새기며 이제 자신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다는 그 사실을 담담히 받아 들였다.
편안한 얼굴의 그의 입에선 뜻밖에도 함께 투쟁했던 동지들에게 미안했고 함께하지 못한 죄스러움이 늘 나를 괴롭혔다고 했다. 죽음의 문턱에 선 그에게 그 먼 길 달려와 준 사람은 바로 동지들이었고, 고맙다고 말했다.
우리 진실위원회의 첫 번째 결실! 현장 동지들의 산재투쟁의 본격화를 알리는 상징으로 우리는 판단한다. 은폐된 산재 사망자와 환자들에 대한 본격적 진상규명 투쟁 또한 뒤따르게 될 것이다.
2008. 6. 4.
김동열, 장갑철, 최민식
한국타이어 진실과 민주를 위한 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