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파는 여산(廬山)을
두고 이렇게 읊었습니다.
題 西林寺 壁(제 서림사벽/서림사 벽에 쓰다)

橫看成嶺側成峯(횡간성령측성봉)
處處看山各不同(처처간산각부동)
不識廬山眞面目(불식여산진면목)
只緣身在此山中(지연신재차산중)

모로 보니 재인 듯, 옆에서 보니 봉인 듯
곳곳마다 보는 산 서로 서로 다르구나.
여산의 참 얼굴 알아볼 수 없기는
다만 이 내몸이 산속에 있음이네.

평화와 인권을 존중하는 동지, 시민여러분! 기축 년, 새해를 맞아 여러분의 가정에
건강과 평안하심과 소망 이루시길 축원합니다. 아시는 데로 여러분의 열화와
같은 성원과 탄원서명에 힘입어 강기갑의원이 무죄판결이 된 것은 참으로 자축할
일이며 우리 모두의 승리입니다. 하지만 창조한국당 문국현대표가 일부 유죄판결이
되어 의원직상실의 위기에 처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입니다.

저는 창조한국당과 민주노동당의 당원도 아니며, 문국현대표와 강기갑대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평범한 시민의 한사람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원서명에 나서게 된 것은 불법선거를 묵인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의 인생관과 정치관이 비교적, 올바른 양심과 도덕적 실천을
통한 이 나라의 평화와 민주주의(절차적, 형식적이 아닌 참의미로서의)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나라당과 이명박정권이 자기들의 전신(前身)이 차떼기 당이었음을 망각한
체 검은 속내를 드러내어 이 나라의 정치적 현실과 그분들을 지지한 대다수국민
들의 여망을 무시하고 편파적 수사와 판결을 하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소동파가 위의 시에서 말했듯이 보는 관점에 따라 우리들은 생각과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와 견해가 다르고 이해관계가 다르고 소속된
당이 다르다 하여 배타적이거나 상대방의 의견을 묵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만인 앞에 평등해야할 법이, 특권세력에 의해 편파적이고 불순한 의도로
이용됨으로서, 법이 오히려 인격의 자유로운 발전에 족쇄가 되고,
올가미가 될 때, 우리는 헨리 소로우가 말한 “정치적 불복종의 의무” 수행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무관심은 불의를 방조할 뿐만 아니라 부지불식간에 악을
조장하기까지 합니다. 마치 맹수가 공격할 때 무리를 흩트려놓듯, 불의의
세력은 양심세력을 각개격파의 전략으로 격파해 나갑니다. 양심세력들이 본시
동근생 상전하태급(本是同根生相煎何太急 /본시 한 뿌리에서 나왔거늘 왜
이리도 서로 지지고 복아 대느냐?)의 형국으로 분열을 한다면, 우리 모두의
패배가 될 것입니다.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태산이 크게 울렸는데 겨우 생쥐한마리만
나타났다는 말. 즉 시작할 때는 천하가 떠나갈 듯 떠들썩하더니 그 결과는
보잘것없다는 뜻 )이란 이 문구도 이명박정권, 일년 의 보잘 것 없는 결산서에
잘 어울리는 말입니다만 요즈음 민주주의가 거꾸로 가는 정국이니 차라리
거꾸로 해석해서, 생쥐 한 마리가 태산 같은 온 나라 민중의 민권을 무자비하게
짓밟아 대어 민중을 울리고 있다! 라고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정치란 본디 묵인 인데, 다시 말해 대다수의 국민이 어찌할 수 없어서한 묵인
인데, 제멋대로 해도 되는 것인 양, 자루 없는 칼을 마구 휘둘러대다니!
‘임연선어 불여퇴이결망(臨淵羨魚 不如退而結網 /연못에 고기가 가득 넘칠지라도
돌아가서 그물을 엮는 것만 같지 못하다)’이라는 이문구가 시사하듯, 물론
목숨을 걸고 민주와 인권 수호를 위하여 항쟁한 분들의 희생과 노고를 모르는바

아니나 대부분의 점잖으신 학자님들, 목사님들, 신부님들, 스님들, 그리고 자칭
지성인들이 바위가 굴러내려 민중이 깔려죽게 생겼는데 온몸을 던져 막을 생각은
않고 멀지 감치 물러서서 “바위가 굴러 간다! 바위가 굴러간다! ” 고 소리만
질러대고 계시는 한, 빈말(虛言)에는 민중은 절대로 속지 않을 것입니다.

민중을 어리석다 하지만 그것은 민중을 정말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옳고
그름을 아는 ‘시비지심’은 하나님이 마음의 지성소(至聖所)에 누구에게나
넣어주신 것입니다. 인심을 개조하는 것은 권선징악의 법률이 아니라
‘알아주는 마음’입니다. 법률가의 고문(拷問)으로도, 도덕가의 설유(說諭)로도
못 하던 일을 예수께선 이 ‘알아주는 마음’하나로, 한마디의 요구도 없이 민중의
저절로 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지도자가 자기를 희생하며 진심으로 민중의 마음을 알아줄 때 민중은
감격하여 목숨조차 버리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아름드리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자유의 혼으로 무장된 민중의 숲에 어찌 가시넝쿨이 자랄 수 있으며, 자유의
열망과 깊은 내면의 성찰을 통한 혼의 힘으로 엮어진, 목숨을 건 민중의 그물망을
제아무리 이빨이 날카로운 생쥐인들 끊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이명박정권이 국회에 상정된 법안을 통과시켜, 국가정보원법개정을 하여 공안정국을
되살리고, 경찰의 폭력진압을 극대화 하며, 통신비밀보호법을 개정하여 개인의
휴대전화까지 감청을 합법화 하며 지피에스(GPS)위치정보를 ‘통신사실확인자료’에
추가하며, 조중동보수언론의 공조도 부족한 듯 급기야 모든 언론까지 장악을
획책하며 상정된 법안을 강공으로 밀어 붙이고 있는 것도, 물론 야당의석의 수의
열세도 문제지만,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시민저항운동이 일시적이고 다분히

감정적인, 하는 척만 할 뿐, ‘간디의 비폭력운동’과 같은 꾸준하고 철저하지 못한
태도에 있다 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양심세력을 우습게 본 것입니다. 감히 말씀
드립니다만 자업자득이라 할 것입니다. 간디가 말한 그대로입니다. “한 나라의
정치형태는 국민의 평균적 개인이 가진 혼의 힘(average individual’s soul-force)의
구체적인 표현일 따름이다” 즉 하나의 민족은 결국 그 민족에게 마땅한 정부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문명이 동틀 때부터 자라온, 수 만년 된 악의 뿌리가 세포 사이
사이, 골수뿐만 아니라 인간의 영혼 속에 깊이깊이 박혀있는데 백일기도, 천일
불공, 수백일간의 시위항쟁으로 악의뿌리가 뽑힐 리 만무합니다. 그를 가리켜
“하나님은 터럭 끝만큼이라도 다 갚기 전에는 결코 내놓지 않는 이“라고 예수께선
말씀하셨습니다.

제도가 개선되고, 민의가 반영되고, 독재정권이 퇴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문제는
‘너’가 아니라 ‘나’에게 있습니다. 자존 자립의 주체성을 가졌는가, 모험 진취의
정신을 길렀는가, 못 길렀는가? 진실무망(眞實無妄 )의 덕성을 길렀는가, 못 길렀는가?
다시 말해 ‘나의 혼’의 혁명에 달렸습니다.
.

그러므로 밤에는 은연 자중하여 내면의 성찰을 통한 혼의 힘을 기르고 낮에는
비폭력적 참의실현을 행동(설사 그것으로 인하여 투옥되고 목숨을 잃을 수
있더라도)으로 옮겨 우리 모두의 역량을 한 것 모아야할 때입니다.

창조한국당에서는 홈페이지를 통한 탄원에 대한 인터넷서명을 받고 있사오니
적극참여하시기 바라오며 차제에 문국현대표에 대한 탄원서파일을 함께
게재 하오니 서명하셔서 2009.1.10일까지 이메일로 제게 보내주시면 모아서 담당자에게
보내드리겠습니다.

오철근 올림. (ock011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