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위해 죽는’ 아시아 노동자들
ANROAV 2008 연례회의 무엇이 논의되었나
변정필 기자 bipana@jinbo.net / 2008년10월01일 17시13분
생명은 삶의 전제조건이다. ‘아시아 노동재해 피해자 권리를 위한 네트워크(안로브, ANROAV)’ 2008연례회의가 중국, 인도, 네팔 등 16개국 12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27일부터 3일간 필리핀 마닐라의 펄 가든 호텔에서 열렸다.
안로브(ANROAV)는 아시아 지역에서 약 20여 년간 산업안전보건 향상을 위해 산재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높이는 데 노력해 온 단체로 한국, 일본, 홍콩, 대만, 태국 등 산업안전보건 단체들의 네트워크다. 규폐증, 카드뮴 중독 과 석면, 광산, 전자 산업에서의 산업안전보건이 주요 의제다.
안로브(ANROAV)의 산지브 판디타 아시아모니터센터(AMRC) 소장은 규폐증, 석면에 대해 “21세기에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특히 강조했다.
규폐증은 규산이 많이 들어 있는 먼지를 오랫동안 들이마셔서 생기는 폐병이다. 숨이 차고, 얼굴빛이 흙빛처럼 검어지면서 부종이 생기고 사망에 이를 수도 있는 치명적 질병이다. 그러나 이번 연례회의 보고에 따르면 중국, 인도 등지에서 보석을 만드는 원석 가공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노동자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석면 문제도 여전히 심각하다. 판디타 소장은 특히 “석면은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에서는 첫째 과제다. 아시아에서는 여전히 석면이 사용되고 있다”며, 캐나다 등의 선진국에서 중국 등 아시아지역으로 석면을 수출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했다.
더욱 큰 문제는 석면의 피해조차 집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판디타 소장은 “일본, 한국 등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에서는 희생자조차 파악이 되지 않고 있으며, 진단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 외에도 이번 안로브(ANROAV) 2008 연례회의에서는 인도 남부 코디 지역에서 체온계를 만드는 유니레버사의 노동자들이 수은에 중독된 사례와 투쟁, 중국 배터리 제조 공장 노동자들 사이의 카드뮴 중독 사례 및 투쟁 등이 보고되었다.
다음은 사례 발표를 일부를 요약한 것이다.
규폐증, 인도 원석 가공노동자 71명 중 61명이 관련 질병 판명
보석 세공 노동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규폐증은 여선히 많은 아시아 국가에서 나타나고 있다. 중국과 인도의 사례 발표를 통해 공동의 전략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인도 민중훈련연구센터(PTRC)의 자그디시 파텔은 사례 발표를 통해 원석 가공 노동자들이 규폐증으로 죽어가는 사례보고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며 2007년에는 19명이 사망했고, 2008년에도 11명이 사망했다고 보고했다.
자그디시 파텔은 2007년 원석 가공 노동자들의 건강을 향상시키기 위해 클리닉을 열었는데, 현재까지 검진한 123명의 노동자들 중 71명의 X-레이 필름을 전문가들이 판독했으며, 이 중 61명이 규석 관련 질병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했다.
자그디시 파텔은 규폐증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건식작업에서 습식작업으로 전환하는 게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또, 최근에는 남편을 잃은 많은 여성들이 원석 가공일을 시작했으며, 이 여성들이 아이들과 함께 출근할 경우 규폐증에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자녀들을 돌 볼 수 있는 ‘데이케어 서비스’를 열어 긍정적인 성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중국, 배터리 노동자들 사이 카드뮴 중독 확산돼
‘이타이이타이병’으로 알려진 카드뮴 중독은 최근 중국 배터리 제조 노동자들 사이에서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카드뮴 중독은 장기적으로 신체 조직 및 장기에 손상을 입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신장이나 뼈 구조에는 치명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2004년 배터리를 만드는 광둥의 골드피크(GP) 산업 노동자들 사이에서 카드뮴 중독 발생이 처음으로 알려졌으며, 적어도 400여명의 노동자가 중독되었다. 2004년 1월 당시 중국은 세계 배터리 생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80퍼센트는 수출을 위한 것이다.
2007년 1월에도 중국 장쑤 남부 지역의 워시에 위치한 워시마수시타배터리(WMB) 공장에서도 카드뮴 중독이 발생했다. 워시마수시타배터리의 모기업은 파나소닉이다.
발표에 나선 메이 웡 워시마수시타배터리(WMB) 산재 피해 노동자는 “골드피크(GP)의 사례를 접한 중국 노동자들이 2007년 1월 4일 사측에 2003년부터 진행한 자신들의 건강검진 기록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건강검진 기록이 조작된 것을 알게 되었다”라며 지금까지도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고 전했다.
메이 웡은 “사측에서 보여준 카드뮴 중독 테스트 결과를 보았는데, 건강검진 기록에 기록된 검진 날짜가 실제로 검진이 이루어진 날짜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손으로 쓰여진 것이 조작의 가능성 있었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현지 언론에 따르면 2003년에서 2005년 사이에 87건에서 과도한 카드뮴 중독이 기록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올해 1월에도 사측이 제대로 된 건강검진을 하겠다고 약속을 해 노동자들이 파업을 철회했지만, 실태조차 정확하게 파악이 안되는 상황에서 오히려 지도부들이 해고당하고 경찰에 의해 집회가 봉쇄되는 등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이 진행되고 있다고 메이 웡은 전했다.
이번 연례회의에서 중국 측 참가자들은 노동자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유해 물질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사측을 강력히 처벌할 것을 촉구하는 연서명을 받았다.
보팔, 끝나지 않은 25년간의 싸움
1984년 12월 인도 마디야프라데시 보팔 지역 미국 유니언 카바이드사의 공장에서 살충제 성분인 이소시안산 메칠가스 등 유독가스 40톤이 유출되어 지역 주민 등 3천 500명이 죽고, 50만명이 부상당하는 참사가 발생했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내년이면 25주년을 맞는 보팔, 한 세대가 넘어서도 피해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당시 피해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시력을 잃은 채 살아가고 있으며, 최근 태어나는 아이들에게서도 정신지체, 선천선 뇌성마비, 기형아 등이 발생하고 있다는 보고도 계속되고 있다.
또, 카바이드사가 남긴 옛 공장 부지에서는 아직도 독성물질이 흘러나와 현재도 주민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다.
2001년 유니언 카바이드사가 이후 세계 2위의 화학기업인 다우케미컬로 합병된 후, 지역 주민들은 다우케미컬에게 지역 정화작업 및 주민들에 대한 보상을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다우케미컬은 주민들에 대한 보상에서는 자신의 책임이 없다며 주민들의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라치나 딩라 ‘보팔 정의를 위한 국제 캠페인’ 활동가는 “현지 주민들이 총리가 8번 바뀔 동안 1000번에 이르는 집회를 했고, 보팔에서 델리까지 세 번을 걸었다. 작년에도 800킬로미터의 행진끝에 정부면담을 요청했다. 농성에 단식 투쟁까지 했다. 그러나 11일간의 감금이 정부의 답이었다”며 국제적인 관심을 촉구했다.
리치나 딩라는 특히 보팔 참사 25주년이 되는 내년 12월 국제적인 공동행동에 함께 해 줄 것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