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지 마치다 ILO 산업안전보건국장 직무대행
“쇠고기보다 심각한 산업재해는 왜 관심 없는거죠?”

매일노동뉴스 김미영 기자 08-09-10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는 9만147명. 사망자는 2천406명이다. 일터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가 하루 7명꼴이고, 산업재해로 인한 경제적 손실규모만 16조2천억원에 달한다. 국제노동기구(ILO)의 2005년 자료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연간 2억7천만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를 당하고, 1억6천만명이 직업병으로 고통받고 있다.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만 한 해 2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산업재해로 인한 근로손실일수는 노사분규로 인한 그것보다 60배나 높지만 세간의 관심은 현대자동차 파업의 60분에 1에도 미치지 못한다.

9일 ‘제1회 산업안전보건 글로벌포럼’을 위해 방한한 세이지 마치다(53) ILO 산업안전보건국장 직무대행은 “사회 최고위층이 사업장 안전보건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직까지 전세계에서 노동안전보건은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되고 있다”면서 “환경이나 지구온난화 문제처럼 세계 정상들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 ILO 산업안전보건국 구성과 사업에 대해 소개해달라.

“ILO의 어젠다는 크게 4개 섹터로 구분된다. 국제노동기준과 조약·고용·사회보장·사회적대화가 그것이다. 산업안전보건국은 주로 사회보장 차원에서 접근하지만, 산업안전활동에 대한 국제조약을 만들고 여러 나라에서 체결하도록 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국(Safe Work)에는 약 25명의 전문가들이 근무하고 있다. 국제조약을 담당하는 부서에도 노동안전분야 전문가가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보면 25명이 훨씬 웃돈다.”

– 지난 7월 열린 세계산업안전보건대회에서 사업장 안전보건의 국제헌장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선언’을 채택했다. 선언에서 ILO는 노동안전보건이 ILO 설립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며, 노동안전보건이 인간의 기본권 보장을 넘어 경제성장과 발전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가치임을 확인하고 있다. 구체적인 이행방안은 무엇인가.

“우선 서울선언이 나온 배경부터 보자. ILO는 노동안전보건과 관련한 조약들이 상당히 많다. 수많은 조약이 모든 나라에서 비준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ILO는 지난 2003년 노동안전보건을 위한 글로벌전략을 만들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보건문화의 정착이다. 안전보건문화란 막연히 ‘사고를 조심하자’ 같은 분위기가 아니다.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이며 동시에 노동자가 이를 잘 알도록 하는 것이 안전보건문화다.

서울선언은 ‘안전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에서 일할 권리는 노동자의 기본적인 인권이며, 세계화는 반드시 이를 보장하기 위한 예방대책과 함께 진행돼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각국에서 안전보건기준을 법률로 정해도, 안전보건문화가 뿌리내리지 않으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대통령처럼 최고위층에 있는 사람이 직접 나서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환경문제는 국제정치의 가장 뜨거운 이슈다. 순위를 매긴다면 노동안전보건은 꼴찌수준이다. 지난 세계산업안전보건대회에서 사상 최초의 국제안전보건대표자회의가 열린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한국에서 미국 쇠고기 문제로 나라 전체가 떠들썩했다. 그런데 쇠고기보다 더 심각한 산업재해에는 관심이 없나. 노동안전보건이 국가 전체의 의제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비정규 노동자의 급증은 한국의 주요 노동이슈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국내 연구자들이 조사한 산업재해 통계를 보면 비정규 노동자 재해율이 정규직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다. 비정규 노동자를 고용한 회사는 규모가 상대적으로 영세하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기 어려운 형편이다. 산재은폐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ILO는 산업재해로부터 비정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가.

“세계 어디를 가도 노동조합 조직률은 낮아지는 추세다. 반면 비정규 노동의 형태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비정규 노동자는 위험한 업무를 외주화하는 과정에서 파생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산업재해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한국에서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면 더 조사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본다. 진짜 비정규직 재해율이 정규직보다 낮다면 그 원인을 찾아내고 홍보해야 하는 것 아닌가.(웃음)

ILO는 파견·임시직을 비롯한 비정규 노동자들이 노조의 보호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비정규 노동자의 노조 가입률을 높이고 노조의 세력을 키워나가도록 하는 것이 ILO의 정책방향이다.”

– 한국의 경우 이주노동자 유입이 늘면서 산업재해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주노동자 산재문제에 대해 많은 경험이 있을 텐데 모범사례를 소개한다면.

“외국인 노동자들 대부분이 기본적인 사회보장시스템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더라도 의사에게 어디가 아픈지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모범적인 이주노동자의 산업재해 보호 프로그램은 솔직히 말해 찾기 어렵다.

다만 건설노동자 100%가 이주노동자인 싱가포르의 경우 안전교육이 이뤄지지 않으면 노동허가가 나지 않는 시스템을 갖고 있어 99% 이상이 충분한 안전보건교육을 받고 있다. 교육의 질도 높다. 교재도 비디오나 사진을 주로 이용해 언어차이를 극복하고 있으며 강사도 방글라데시아나 태국의 대학교수급을 초빙해 높은 급여를 지급하고 있다. 싱가포르가 이주노동자에게 철저한 안전교육을 할 수 있는 배경은 인구가 적어 통제가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이주노동자의 99%가 합법체류자다.”

서울선언 실현을 위한 글로벌포럼 개최

서울선언의 실천방향을 논의하는 제1회 글로벌포럼이 서울에서 열린다.

산업안전공단은 “10일 서울 코엑스에서 국내외 안전보건 관계자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산업안전보건 글로벌 포럼’을 개최한다”고 9일 밝혔다.

이번 포럼에는 지난 7월 세계산업안전보건대회의 ‘서울선언’의 취지를 확산하고 구체적 실행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세이지 마치다 국제노동기구(ILO) 산업안전보건국장 직무대행과 한스 호르스트 콘코로프스키 국제사회보장협회(ISSA) 사무총장, 다국적기업인 듀폰의 동아시아 담당이사 등이 참석한다.

백헌기 한국노총 사무총장과 김지희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서울선언 실행을 위한 노동자대표의 역할’을, 라마브하드란 스리니바산 듀폰 동아시아 사업이사가 기업의 역할을, 세이지 마치다 ILO 산업안전보건국 직무대행이 국제기구의 역할을 각각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포럼을 주최한 노민기 공단 이사장은 “리우선언이 지구 환경보전의 중요성을 전세계에 일깨운 것처럼 서울선언은 안전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구현하고 안전보건 예방문화를 전파해 세계 산업안전보건 역사의 획기적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