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중독이 병 부른다
만성피로·스트레스…과로사 증가 개인적·사회적 차원 노력 병행 돼야
황해윤 nabi@gjdream.com
기사 게재일 : 2008-10-06 06:00:00
“직장을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 몇년 전까지 나는 심각한 일중독자였다. 맡은 과업을 완수하는 것이 내가 살아 있는 목표라고 생각하는 듯 행동했고, 오늘 해치우지 않으면 내일 더 많은 일들이 되돌아오는, 세상은 일들로 가득 찬 것처럼 보였다. 긴급한 일이 사라지면 초조하고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했거나 잊어버리고 있는 일들이 있을 거라고 믿으며, 무슨 일이든지 찾아서 재빨리 해치워버리고는 했다. 여유가 생기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면서 평소에 못했던 일들을 해치우려 들었고 결국에는 여유라는 것이 없었다.”
어느 일중독자의 고백이다.
‘열심히’ ‘더 오러 ‘더 빨리’ ‘더 많이’ 일을 하는 것이 ‘선’으로 포장된 시대를 살고 있다. 대통령마저도 “대한민국 모든 기업이 24시간 2교대로 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며 ‘지금보다 더 열심히’를 강조한다.
‘일중독 벗어나기’의 저자 강수돌은 “일이 사람들의 삶에서 지배적 비중을 차지하면서 자기 일은 물론 다른 사람들과도 병적 관계를 형성하게 되고 또 갈수록 더 많은 일이나 더 높은 성과를 내야 만족할 수 있으며 나아가 그 일을 중단하는 경우엔 견디기 어려운 불안감과 상실감을 느끼게 되는 병적 상황”을 일중독으로 정의한다. 최근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들 절반 이상이 퇴근 후 업무에 대한 걱정을 하는 등 일중독에 빠져 있다고 한다.
일중독은 사회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일잘하는 사람’ ‘성실한 사람’ ‘능력이 뛰어난 사람’으로 칭찬하고 포상하기 때문에 더욱 조장되고 은폐되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개인적·집단적 일중독은 만성피로의 누적, 높은 스트레스, 산업재해와 과로사 공황장애나 과로 자살 등이 문제로 발전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강 씨는 한국에서 독주 사용량 증가나 폭탄주 유행 등도 일중독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그 고통을 효과적으로 잊기 위한 수단이라고 지적한다. 일중독은 다른 중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일중독을 병리 현상으로 보는 신경정신과 전문의들은 일중독을 벗어나기 위해 우선 자신이 일중독증 환자라고 인정하는 솔직한 인식, 자신의 취미에 맞는 규칙적 운동, 매일 5분 이상의 명상, 6시간 이상의 충분한 수면, 1년에 1주일 이상 일에서 벗어난 휴식 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해야 할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의 리스트를 작성해 실천하는 것도 권한다.
하지만 강씨는 개인적 노력과 더불어 조직적·사회적 차원의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기업과 나라 차원의 발상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 사람들의 충성심과 조직몰입 직무몰입을 자극하기 위한 유인책 등은 일중독을 조장할 수 있으므로 심각하게 재고해야 하며, 성과주의에 따른 승진 정책이나 경력개발제도가 아닌 균형잡힌 인력 양성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일중독을 병리현상으로 보는 데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최소한 스스로 경쟁력 이데올로기를 내적으로 수용, 일중독에 빠지는 일을 경계하는 것은 건강하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 될 듯 하다. 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
참고: ‘일 중독 벗어나기’(강수돌 지음)
도움말: 노동보건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