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산재’ 키우는 규제완화
입력: 2008년 10월 05일 18:46:50

경제개발 13위, 동북아중심국가, 반도체, 자동차, 화학, 철강, 조선, 휴대전화, 컴퓨터 세계시장 석권, 국민소득 2만달러 근접 등등…. 겉으로 드러난 대한민국의 경제 성적표다. 그러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경제성적표를 무색하게 하는 지표들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산업재해(노동재해)로 인해 해마다 평균 2500명 이상의 근로자들이 사망하고, 9만147명이 부상한다는 사실이다. 2007년 기준 16조2113억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다. 국내총생산(GDP)의 약 2% 수준의 사회적 비용이 발생했다. 2006년 국제노동기구(ILO) 발표자료의 경제활동 10만명당 산재사망수 비교를 보면 영국 10.8명, 스웨덴 1.9명, 핀란드 2.9명, 프랑스 3.0명, 일본 3.2명, 미국 5.2명, 캐나다 6.4명, 한국 15.7명으로 나타났다. 나타난 지표들만 보면 생산과 소비의 주체인 노동자들이 한국에서는 생산을 위한 단순한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달리 이해할 길이 없다. 곳곳에 빼곡히 들어선 고층 아파트가 건설노동자들의 산재무덤인 것이다.

반도체 세계 1위라는 자랑스러움에 가려져 계속 죽어가는 삼성전자의 백혈병 사망 노동자들. 조선업 세계 1위에 가려져 추락, 협착, 폭발 사고로 계속해서 죽어가는 조선소 노동자들. 직업병인 줄 알면서도 비정규직이라 하소연도 못하고 치료비를 자신이 부담하는 860만명 비정규 노동자들….

상황이 이러할진대 ‘기업규제완화’의 기치를 내걸고 이명박 정부는 경제 5단체의 요구를 대폭 수용할 준비를 하고 있다. 사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도 산업안전보건 분야의 기업규제 완화는 경제 살리기라는 이유로 상당히 많이 기업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것이 외환위기 이후 좀처럼 산업재해가 줄지 않고 있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건설 최고경영자(CEO) 출신답게 건설현장 산재 원인에 대해 무엇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해마다 건설현장에서는 700명이 넘는 건설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다. 지난 1월7일 경기 이천의 냉동창고 건설현장에서 40명의 건설노동자들이 한순간 화염에 생떼 같은 목숨을 잃었다. 그중에서 17명은 조선족 동포를 포함한 외국인 이주노동자였기 때문에 국제적 망신까지 사게 되었다. 불법 다단계 하청구조가 낳은 구조적 인재참사였다. 그런데 보수언론과 내막을 모르는 정부가 ‘안전불감증’ 운운하는 사이 참사는 잊혀 갔다.

이제 한국은 또하나의 명예를 달았다. 바로 ‘산재 공화국’이다. 회사 입장에서 1명의 산재근로자는 보상해주고 신규 채용하면 된다고 단순하게 생각하겠지만 산재를 당한 유족과 가족은 그 자체가 파탄이자 평생 가슴에 담고 가야 할 절망 그 자체인 것이다.

지난달 1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는 이영희 노동부 장관을 비롯한 국내외 안전보건 관계자 5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산업안전보건을 증진하고 노사정의 사회적 책임을 실행하기 위한 ‘제1회 산업안전보건 서울선언서 실행을 위한 글로벌 포럼’이 개최되었다. 이는 지난 6월29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개최된 ‘세계 제18차 산업안전보건대회’의 서울선언서 채택을 구체화하는 자리다.

아무쪼록 최초의 세계 산업안전보건 대회에서 약속한 노사정 ‘서울선언서’가 요란한 생색내기에 그치기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