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먹어라…미국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프레시안 2006-06-16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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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강양구/기자] 최근 농림부가 현지 점검을 실시한 미국산 쇠고기 수출 작업장 37곳 중 대다수가 광우병 위험 물질 안전관리가 부실했던 곳이라는 주장이 나와 주목된다.

미국 쇠고기 수출 작업장 대부분 광우병 안전관리에 엉터리

보건의료단체연합,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녹색연합 등 17개 시민ㆍ사회단체로 구성된 ‘식품 위생 및 광우병 안전 연대’는 15일 서울 연건동 서울대의대 함춘회관에서 토론회를 열어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재개를 밀어붙이려는 노무현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박상표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편집국장은 “강기갑 의원이 농림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확인한 결과 지난 5월 농림부가 현지 점검을 실시한 미국산 쇠고기 수출 작업장 37곳 중에서 34곳이 미국에서 일본으로 쇠고기를 수출하는 작업장과 겹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폭로했다.

박상표 국장은 “일본으로 쇠고기를 수출하는 작업장 34곳 중에서 광우병 감염 위험이 높은 부위(특정위험물질, SRM)에 대한 관리 소홀로 적발되지 않은 곳이 단 2곳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이런 사실은 충격적”이라며 “국내로 쇠고기를 수출하는 작업장 대부분의 실태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농림부는 지난 7일 37곳에 대한 점검 결과를 공개하는 대신 “일부 작업장에서 문제점이 발견돼 개선될 때까지 작업장에 대한 승인을 유보한다”고 밝혔었다. 최근 일부 언론은 문제가 발생된 작업장 7곳이 타이슨푸드, 카길, 스위프트 등 미국의 거대 농업회사 소속으로 이들의 압력 때문에 농림부가 점검 결과를 은폐해 온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했었다.

정부 광우병 대응은 ‘무대책’?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김정범 공동대표는 광우병에 대한 정부의 예방 대책의 허점을 조목조목 지적해 관심을 끌었다.

김정범 대표는 “우리나라 농림부의 광우병에 대한 예방 대책은 ‘무대책’이 큰 특징”이라며 “유일한 정책 목적이 우리나라도 광우병 발생국가가 돼 미국만큼 그 수준을 높이는 것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라고 꼬집었다.

김 대표는 “농림부는 국제수역사무국(OIE) 기준을 들이대면서 30개월 이하의 소에서 생산된 살코기는 안전하다는 주장만 하고 있다”며 “하지만 광우병의 위험성을 조금만 심각하게 인식한다면 이런 주장이 얼마나 대중을 호도하기 위한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30개월 이하의 소가 안전하다는 주장은 이미 일본에서 21개월, 23개월 소에서 광우병이 발견되면서 근거가 희박한 것임이 확인됐다”며 “그래서 일본에서는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할 때도 20개월 미만이라는 조건을 제시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살코기도 결코 광우병 위험에서 안전하지 않아

김정범 대표는 더 나아가 살코기만 수입하면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주장도 강하게 반박했다.

김 대표는 “일본, 홍콩, 대만의 경우 미국으로부터 수입하려는 살코기에 SRM인 등골이 섞여 있어서 수입 재개를 연기한 적이 있다”며 “광우병에 대한 예방 조치가 턱없이 미흡한 미국 현지의 작업장의 실태를 염두에 둘 때 이런 일은 필연적”이라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아주 미량의 감염된 뇌 조직이라도 광우병을 전파할 수 있다”며 “광우병에 걸린 소의 뇌 조직 1㎎을 먹인 소 열다섯 마리 중 한 마리에서 광우병이 발병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농림부의 확신을 보고 있자면 살코기만 베어 가겠다고 호언장담하다 낭패를 봤던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샤일록이 연상된다”고 꼬집었다.

김 대표는 더 나아가 “살코기 역시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는 “최근 인간광우병(vCJD,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콥병)에 걸린 사람 32명 중 8명의 근육에서 광우병 유발 물질로 알려진 변종 프리온 단백질이 발견된 사실이 보고되는 등 살코기에도 변종 프리온 단백질이 있을 것이라는 증거가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지적들에 대해 토론회를 지켜보던 서울대 수의대 우희종 교수도 공감을 표시했다. 우 교수는 “유럽에서는 주인이 쇠고기 살코기를 먹인 고양이가 광우병에 감염된 사례가 보고돼 과학자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며 “이런 사실은 살코기에도 미량의 변종 프리온 단백질이 섞여 있으며 그것이 조금씩 축적돼 결국 인간광우병과 같은 치명적인 질병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 교수는 “지금 문제는 미량의 변종 프리온 단백질이 체내에 축적됐을 때 그것을 검출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일본 광우병 전문가, “한국 정부 제발 솔직해라”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일본 정부의 광우병 대책을 자문하는 일본 식품안전위원회 프리온전문조사위원회 의장(대리)을 역임한 카네코 기요토시(48) 도쿄의대 교수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카네코 기요토시 교수는 지난 3월 일본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방침에 강한 우려를 표명하며 다른 위원 5인과 함께 전격적으로 프리온전문조사위원회를 탈퇴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다.

카네코 교수는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이 전혀 담보되지 못하는 상황인데도 무리하게 수입 재개를 하려는 일본 정부의 처신을 보면서 과학자의 양심이 국민을 속이는 일에 동참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며 프리온전문조사위원회 탈퇴 배경을 밝혔다.

카네코 교수는 “토론회에서 잘 지적한 대로 미국산 쇠고기는 광우병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며 “그런데도 오키나와 인근 센카구 열도의 영토 분쟁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의 여러 문제를 안고 있는 고이즈미 총리는 대미 외교라는 정치적 고려 차원에서 쇠고기 수입 결정을 내린 것 같다”고 설명했다.

카네코 교수는 “한국 정부도 마찬가지겠지만 솔직함이 가장 큰 미덕”이라며 “일본 정부도 차라리 ‘미국의 요구를 어쩔 수 없이 들을 수밖에 없으니 미국산 쇠고기가 위험하지만 수입할 수밖에 없다’고 국민에게 솔직하게 토로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명백한 위험이 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어용학자’들의 전문성에 기대 ‘안전하다’고 강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덧붙였다.

(<프레시안>은 카네코 교수와의 별도의 인터뷰를 게재할 예정이다.)

강양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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