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결한 화장실에 세면장 없는 곳 태반
건설노련 “인권위 제소 방침” 2000만원대의 ‘명품’ 아파트가 출현했지만 건설현장 근로조건은 ‘최하품’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건설노련에 따르면 건설노동자들이 이용하는 간이화장실은 매우 불량해 이용할 수 없을 정도라는 의견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등 편의시설 전반이 낙제점을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안전연대 한기운 회장은 “산재사고 사망자 가운데 고층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화장실을 찾다 추락사한 경우도 있다”며 “250만 건설노동자의 안전과 인권을 위한 작업환경 개선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간이화장실 1~2개에 100여명 이용 = 서울 송파구의 ㅇ건설 아파트건설 현장 구석에 간이화장실 5개가 설치돼 있다. 건축자재에 둘러싸인 간이화장실은 청소를 안했는지 각종 오물이 변기 주변에 쌓여있다. 여름철 심한 악취 때문인지 한 인부가 화장실 문을 열어놓은 채 볼일을 보고 재빨리 돌아선다.
현장에서 만난 한 인부는 “깨끗한 화장실은 고사하고 전철을 타면 몸을 씻지 못해 몸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 느낀다”고 말했다. 다른 현장에서 만난 형틀목수 20년 경력의 강 모(46)씨는 “간이화장실이 턱없이 부족해 아무 곳에서 볼일을 본다”며 “층별 화장실을 갖춰 이용하는 외국의 현실이 부럽다”고 말했다.
최상권(52)씨는 “지하층 작업 중에는 40m를 올라갈 때도 있다”면서 “간이화장실 1~2개당 100여명이 이용한다”고 토로했다. 최 씨는 또 “샤워시설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하면 ‘다른 곳도 안 만들어 준다’며 면박주기 일쑤였다”고 덧붙였다.
◆환경개선을 위한 인식변화 절실 = 건설노련이 지난해 4월 울산리서치연구소에 의뢰해 대형 건설프랜트 현장이 밀집한 울산지역 건설근로자 97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건설현장 내 화장실이 없는 곳은 46.9%, 탈의실·휴게실이 없는 곳은 42.7%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간이화장실의 청결도를 묻는 질문에는 74%가 ‘매우 불량해 이용할 수 없을 정도’라는 답변했다.
한기운 회장은 “건설수주액 100억원당 최소 5개의 비율로 화장실과 샤워실 등을 설치하도록 규칙이 개정돼야 한다”며 “건설노동자에 대한 인권의식 개선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관련 규정 미비, 인권위 제소방침 = 건설현장의 실태가 이 처럼 계속되는 이유는 관리규정의 미비가 한 몫을 하고 있다. 현재 산업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은 샤워실과 휴게실을 설치해야 한다고 명시만 돼있을 뿐 설치기준이나 관리기준은 들어있지 않다.
특히 화장실의 경우는 이런 기준조차도 없다. 최근 노동부가 산업보건기준을 개정하면서 사무관리직 노동자의 화장실은 방역에 대한 규칙을 새롭게 재정했다. 하지만 건설현장의 화장실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가 없다.
전국건설노련 최명선 산안부장은 “관련 공무원이 건설현장 편의시설을 감독하려 해도 관련법이 없어 애를 먹고 있다”며 “9월 인권위 제소를 통해 화장실 식당 휴게실 등 설치기준을 개정해 명시하도록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