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안전포커스]
‘공기단축’이 부른 예견된 산업재해
아파트 건설현장 ‘갱폼’ 작업으로 사고 잇따라…후속 안전대책 없어

매일노동뉴스 조현미 기자 08-10-15

지난 6일 충남 아산시 용화지구 신도종합건설 신도브래뉴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작업 중이던 윤아무개(60)씨와 함아무개(55)씨가 27층에서 추락해 숨졌다. 이들은 당시 아파트 외벽에 설치돼 있던 갱폼(Gang Form) 해체작업을 하던 중 갱폼과 같이 추락해 사망했다.

갱폼은 아파트를 지을 때 벽체 거푸집과 작업발판 겸용으로 사용하는 대형 구조물을 말한다. 우리나라처럼 1층부터 꼭대기층까지 획일화된 모습으로 아파트를 지을 때 유용한 거푸집이다. 재료는 철로 돼 있는데, 여러 개의 판을 이어 하나의 갱폼을 만든다. 판과 판은 볼트핀으로 연결하고 완성된 갱폼은 건물 외벽에 볼트로 조여 고정한다.

건설현장의 추락사고와 갱폼의 상관관계

14일 산업안전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사망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 곳은 건설업으로 모두 630명이 목숨을 잃었다. 전체 산재 사망자(2천406명)의 26.2%에 달한다. 추락으로 인한 사망자가 279명으로 전체의 44.3%를 차지했다.

고층건물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어 앞으로도 추락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잇따를 것으로 우려된다. 최근에는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갱폼 작업 도중 추락사고가 발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 2003년 4월2일 서울 송파구의 한 재건축현장에서 인양 중인 갱폼이 옆에 있던 갱폼에 부딪혔다. 그 충격으로 옆의 갱폼이 벽체에서 떨어졌다. 이 사고로 아래에서 지나가고 있던 원청회사의 대리가 깔려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갱폼 사고, 유형도 다양해

갱폼 관련 사고는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강풍으로 인한 낙하, 갱폼과 벽체를 연결하는 볼트의 결함, 타워크레인 인양 도중 낙하사고 등이다. 또 갱폼과 벽체를 연결한 볼트가 해체된 것을 모르고 통로를 지나다 하중을 못 이겨 갱폼이 추락하는 사고도 적지 않다.

갱폼을 설치하고 콘크리트 타설작업을 마치면 형틀목수노동자들이 갱폼과 외벽의 볼트를 미리 해체한다. 가령 10개 중 8개를 미리 풀어 놓는 식이다. 심지어 볼트를 다 풀었는데 다른 작업자가 그 사실을 모르고 지나다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통로부분 용접이 제대로 안 돼 위험한 경우도 있다. 대구에서 20년 동안 형틀목수로 일했다는 구자경(45)씨는 최근 경주에서 일하던 동료가 용접이 제대로 안 된 갱폼 발판 위를 걷다가 4층에서 추락하는 사고를 겪었다. 발판 용접을 대충한 상태에서 가는 철사줄로 갱폼을 묶어 놓아 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

타워크레인 노동자들도 긴장하긴 마찬가지

타워크레인이 없으면 갱폼을 사용할 수 없다. 아파트의 경우 한 층 공사가 끝나면 다시 갱폼을 위로 올려야 한다. 인양하면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이 바람이다. 갱폼의 판이 넓다 보니 바람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 갱폼을 부착하는 반대방향으로 바람이 불면 갱폼이 360도 돌아가 버린다.

타워크레인과 갱폼을 연결하는 슬링벨트가 끊어져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실제로 2004년 6월 부산의 포스코 센텀 건설현장에서 갱폼 인양작업 중 슬링벨트가 끊어져 3명이 숨진 사고가 있었다. 이들은 인양 도중 갱폼 발판에 탑승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에는 경기도 병점 우림건설현장에서 인양 중 슬링벨트가 끊어져 2명이 추락해 숨졌다.

박형종 서울경기타워크레인지부 남서지회장은 “갱폼의 중량이 워낙 무겁기 때문에 타워노동자가 중량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갱폼을 들어올렸을 경우 타워가 앞으로 갑자기 쏠렸다가 뒤로 튕기면서 전복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지회장은 “타워크레인 관련 안전사고의 30% 정도는 갱폼 인양작업에서 비롯된 사고”라고 덧붙였다.

‘빨리빨리’ 시공, 목숨까지 단축

건설사들이 갱폼 공법을 선호하는 것은 공기를 단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 갱폼이 유입되면서 아파트 건설현장의 작업속도는 두 배 이상 빨라졌다. 갱폼 공법은 90년대 중반 이후 활발하게 도입됐다. 이전에는 땅에 파이프를 심고 나무로 일일이 거푸집을 만들었다.

갱폼 공법은 당초 공기단축과 함께 안전한 공법으로 인식됐으나 건설현장의 ‘빨리빨리’ 문화 속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최근에는 갱폼만 전문적으로 맡아 하는 도급팀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종국 건설노조 노동안전국장은 “도급팀이 공사를 하면 아파트 한 층 공사가 하루도 안 돼 끝난다”고 말했다.

대전에 사는 형틀목수 오성근(53)씨는 “현장에서 실시하는 안전교육은 형식에 불과하다”며 “안전도구도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빨리빨리 작업을 하다 보니 갱폼 관련 안전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특단의 대책 만들어야

갱폼은 공기단축과 함께 인건비 절감효과까지 가져오면서 건설업체들이 선호하고 있지만 반대로 갱폼에 대한 경험이 미숙한 노동자가 작업을 할 경우 대형사고로 이어지기 쉽다. 지난 6일 신도브래뉴현장에서 숨진 노동자 두 명은 중국동포 출신으로 현장에 투입된 지 며칠 되지 않아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충분한 교육 없이 공사가 진행됐음을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아파트 건설현장의 이주노동자 비율이 70~80%까지 치솟는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들에게 충분한 교육을 하지 않을 경우 같은 사고가 재발할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박종국 국장은 “건설사들이 하청에 물량도급을 주기 때문에 작업자들이 앞다퉈 작업을 서두를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비좁은 국토에서 갈수록 고층화돼 가는 국내 건설현장을 감안할 때 향후 재발방지 교육이 없다면 이 같은 재해가 계속 발생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