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지물 전락한 특수고용직 산재보험 적용
대상자 10명 중 8명이 적용제외 신청 … 사업주 가입 방해 등 문제점 노출

매일노동뉴스 김미영 기자

지난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40년 만에 전면 개정되면서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특례(125조)’ 조항이 신설됐다.

법령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지만 업무상재해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돼 있다. 그래서 특수고용노동자의 산재보험 적용은 일반 노동자와 다르다. 일반 노동자는 보험료를 100% 사업주가 부담하고, 반드시 가입해야 한다.

하지만 특수고용직은 보험료도 사업주와 반반씩 부담하도록 돼 있고, 임의적용 조항을 둬 적용제외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때문에 노동계는 “반쪽짜리 산재보험법 시행으로 입법효과가 얼마나 발휘될지 의문”이라며 △특수고용직 전면적용 △임의가입 철폐 △보험료 사용자 부담 등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노동계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4일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지난 7월부터 보험설계사 등 4개 직군 특수고용직의 산재보험 가입이 허용됐지만 전체 대상자 48만명 가운데 고작 6만4천764명만 가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33만여명의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산재보험에서 빼 달라며 적용제외 신청을 했다. 특수고용직의 오랜 염원인 산재보험 적용이 현실화되자마자 무용지물로 전락한 것이다.

특수고용직 산재보험 적용제외율 83.55%

산재보험 적용대상 특수고용직은 6만1천719개 사업장, 48만여명이다. 이 가운데 39만3천796명의 특수고용노동자가 공단에 입직신고(특수고용직의 신상과 업무내용을 신고)를 마쳤다. 동시에 32만9천32명의 특수고용 노동자가 산재보험 적용제외를 신청했다. 적용제외율은 무려 83.55%에 달했다.

업종별는 △보험설계사 82%(23만8천명) △레미콘 운전자 62%(8천190명) △학습지교사 90%(6만1천명) △골프장 경기보조원 96%(2만1천명)가 산재보험 적용과 함께 적용제외 신청을 했다.

단 한 명의 특수고용노동자도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업장도 2천601개에 달했다. 공단측은 잠정집계 결과라고 밝혔으나 보험사의 경우 사업장의 61%에 해당하는 1천504개사에서 특수고용노동자 전원이 적용제외를 신청했다.

고성진 보험모집인노조 위원장은 “사업장에서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특수고용 노동자의 산재보험 가입을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험모집인노조에 따르면 대부분 사업장에서 노동자는 보험료 부담이 전혀 없다면서 산재보험 대신 단체상해보험에 가입하도록 유도한 것으로 확인됐다.

ㄱ사업장의 경우 보험설계사에게 산재보험 적용 사실조차 알리지 않은 채 임의로 자사 단체상해보험에 가입하도록 하고 공단에는 집단 적용제외 신청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회사에서 내는 산재보험료만큼의 비용을 급여에 포함시켜 주겠다며 산재보험 가입을 방해한 사업장도 있다는 게 고 위원장의 설명이다.

“사업주가 산재보험 가입 방해”

사용자가 산재보험 대신에 단체상해보험 가입을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험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현재 생명보험사에 14만4천324명, 손해보험사에 7만3천579명, 소규모 대리점 등에 5만1천396명의 보험설계사가 일하고 있다. 이에 해당하는 산재보험료는 연간 662억6천160만원 수준으로 이 중 절반이 사용자의 몫이다.

생명보험 23개 회사 가운데 삼성·대한·교보·흥국·동부·ING·푸르덴셜·PCA·뉴욕생명 등 9곳의 설계사들은 이미 자사 단체상해보험에 가입돼 있다. 보험업계는 자사의 단체상해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산재보험에 가입하는 것보다 비용면에서 절반 가까이 부담이 적다고 설명한다.

가장 규모가 큰 삼성생명측은 언론을 통해 “이미 전액 회사비용으로 보장이 더 큰 단체보험에 가입해 복리후생시스템을 잘 갖춘 상태”라며 산재보험 가입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산재보험료에 대한 비용부담도 원인 중 하나지만 실상은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이 확대되는 것에 대한 부담이 더 크다.

보험업계는 “산재보험 다음에는 고용보험까지 적용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산재보험 가입을 신중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회에서 특수고용 관련입법이 없던 일로 끝나면서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인정문제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제도적 보완책 마련해야

문제는 또 있다. 현재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특수고용직은 4개 직군에 불과하다.

민주노총 추산 180만명, 노동부 추산 90만명에 달하는 특수고용직 가운데 보험설계사·학습지교사·골프장 경기보조원·레미콘기사 등 4개 직군 39만명에게만 한정된 좁은 문이다. 여기에 노동계의 주장대로 임의적용이나 보험료 절반 부담 등 일반 사업장 노동자와 차별되는 조건은 특수고용직의 산재보험 가입에 진입장벽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고성진 위원장은 “특수고용직은 노동관계법상 노동자가 아니어서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하소연할 곳조차 없다”며 “산재보험 가입대상을 전면 확대하고 보험료 부담 등 불합리한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현재 노동연구원에 관련 연구용역을 발주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