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유통업체 곳곳서 의자놓기 ‘봇물’
경남 마산 한 백화점서 시작해 전국으로 확산 … 계산원노동자만 의자지급은 개선점

매일노동뉴스 오재현 기자

백화점과 대형할인점의 판매와 계산업무 같이 서서 일하는 노동자는 전국적으로 20만4천여명. 노동부가 최근 조사한 결과다. 중소할인점과 슈퍼마켓 등 중소유통업체까지 포함하면 약 600만명으로 추산되는 서비스부문 여성노동자들은 업무시간의 90% 이상을 서서 일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관리자의 ‘게으르다’는 편견과 고객의 ‘건방지다’라는 우려 때문에 의자가 옆에 있어도 앉지 못했다. ‘서서 일하는 서비스여성노동자에게 의자를 국민캠페인단’에 따르면 유통서비스 여성노동자의 건강을 위해 개선되어야 할 과제 1순위로 41.5%의 유통서비스 노동자가 아픈 다리 문제 해결이라고 꼽을 정도다.

‘서서 일하는 서비스여성노동자에게 의자를 국민캠페인단'(캠페인단)은 노동계, 정당, 시민·사회·연구단체 등이 모여 지난 7월22일 출범했다. 국민캠페인단 차원의 활동은 이달 마무리될 예정이다. 일단 지난 4개월 동안의 캠페인 결과는 희망적이다. 전국 백화점과 할인점 곳곳에서 희망적인 소식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봇물 터진 의자놓기

첫 포문은 경남 마산의 대우백화점이 열었다. 백화점은 지난 9월20일부터 매장에서 서서 일하는 계산원 노동자들을 위해 의자 35개를 지급했다. 민간서비스연맹(위원장 김형근)은 “전국적으로 대국민캠페인을 진행한 지 약 두 달 만에 유통업계에서는 드물게 자발적으로 의자를 비치한 첫 번째 사례”라고 환영했다.

대우백화점 소식이 알려진 뒤 전국의 유통매장에서 계산원 노동자들을 위해 의자를 놓기 시작했다. 18일 연맹에 따르면 현재 의자를 비치하거나 계획 중인 사업장은 △애경백화점 △신세계백화점 △현대백화점(광주점) △대구백화점 △동아백화점(대구점) △대우백화점(마산점·창원점) △홈플러스(평촌점·부천여월점) 이마트(안성점) △경남 사천휴게소 △신탄진휴게소 등이다.

특히 사천휴게소는 원청은 물론 하청업체 직원까지 의자를 지급해 의자놓기의 모범사례로 꼽히고 있다.

서비스연맹 관계자는 “노동자 건강권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서비스업종에서 산업재해와 산업안전보건법에 대한 이해가 높아져 가고 있다”며 “현장에 대한 변화를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있던 서비스노동자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고 말했다.

의자놓기 캠페인, 노동부를 움직이다

노동계는 그동안 회사측과 유통업체 이용자의 인식전환도 중요하지만, 사용자가 의자를 놓고 일하도록 강제하는 노동부의 적극적인 행보를 주문해왔다. 산업안전보건법 보건규칙 제 277조에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노동자가 작업 중 때때로 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는 의자를 비치’하도록 한 규정을 지키도록 노동부가 관리·감독해야한다는 것이다.

결국 노동부는 지난달 30일 서울 팔레스호텔에서 백화점 대형마트 사업주 21명이 참여하는 간담회를 열고, 판매·계산원 건강보호를 위한 의자놓기에 동참해달라고 호소했다. 입좌식의자·발받침대·피로예방매트 등 건강보호기구와 외국 우수사례를 소개하는 사진도 전시됐다.

정현옥 노동부 산업안전보건국장은 “서서 일하는 근로자 건강보호에 대한 인식이 정착될 때까지 꾸준하고 다양한 활동을 펼치겠다”며 “사업주의 적극적인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노동계와 노동부의 적극적인 캠페인에도 일부 중소 유통업체들은 ‘의자놓기’에 소극적인 게 사실이다.

실제로 서울 노원구 하계동에 위치한 ‘세이브존 노원점’은 지난 2~3월 매장을 리모델링하면서 약 300제곱미터(90평)가량의 직원식당과 물품보관소(라커룸) 등을 축소했다. 의자를 놓는 유통업체들이 늘고 있는 흐름에 역행한 것이었다.

연맹 관계자는 “기사가 나간 뒤 노동부에서 산업안전 감독을 나갔고 시정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결국 세이브존 노원점측은 지난 13일 계산대 19곳에 모두 의자를 배치했다. 계산원 직원들의 반응은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세이브존 노원점에서 행사를 진행하는 노동자들은 “우리는 언제 의자를 사용할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계산원만? 판매노동자도 의자 필요해

세이브존 노원점의 행사진행 노동자뿐만이 아니다. 롯데백화점 분당점에서 화장품을 판매하는 ㄱ아무개씨. 그는 지난달 의자에 앉아 잠시 컴퓨터를 이용했다. 그러자 백화점측 직원이 사진을 찍고는 사유서를 쓰라고 얘기했다. 회사측은 노조의 저지로 사유서 받기를 포기했다.

의자놓기는 계산원 노동자를 중심으로 실시되고 있다. 가 지난 9월 롯데·현대·신세계 등 주요 백화점 1층에 있는 의자수를 조사한 결과 롯데백화점 강남점 150개, 현대백화점 삼성센터점 220개, 신세계백화점 영등포점 120여개로 나타났다. 백화점에 입점한 구두·핸드백·지갑 매장에도 평균 서너 개의 의자가 있었다. 히자만 화장품 판매노동자들은 손님을 응대할 때만 잠시 앉아 있을 뿐 손님이 없을 땐 모두 서 있었다.

정민정 연맹 여성부장은 “사업주들은 계산원 노동자에게만 의자를 제공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한편 중소 유통업체들은 최근까지 큰 유통업체도 아닌 곳에서 의자놓기를 하라고 하느냐며 억울해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유통업체 빅3 가운데 2곳이 의자놓기를 실시하는 등 대형 유통업체들의 행보도 달라지고 있다. 실제로 신세계백화점·롯데백화점·현대백화점 가운데 현대백화점을 제외한 두 곳에서 의자놓기를 실시하거나 계획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부평점이 이달 초 서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를 위해 의자를 비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본사인 롯데쇼핑은 백화점 28개, 할인점 61개, 슈퍼마켓 107개를 운영하는 국내 최대의 유통업체로, 전국 매장에 의자놓기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 유통점에서 먼저 의자를 놓을 경우 중소업체들도 의자놓기에 따라가는 분위기가 조성될 가능성이 높다.

정민정 부장은 “이제 시작이기 때문에 한계보다는 희망적인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며 “제조업 사업장에 비해 관심이 부족했던 서비스노동자들의 건강하게 일할 권리가 더 많은 관심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