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산재보험요율 인하, 노동자는 불안하다
“경제위기로 사회안전망 확충해야 할 때, 노동부가 역행” 비난 목소리
김미영 기자
세계경제가 위태롭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3분기 실질 국민 총소득(GNI)이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수준을 나타냈다. 국민 호주머니가 비어가고 있다는 소리다. 또 대형 제조업체들이 잇따라 생산물량을 줄이면서 중소기업의 줄도산이 우려된다. 이에 따라 해고대란, 실업대란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2일 기획재정부 등 관련 부처에 따르면 최근의 경제·금융위기가 심화되면서 빈곤층이 삶의 존립 기반마저 흔들릴 수 있다고 보고, 이들을 위한 특단의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노동부가 앞장서서 사회안전망 확충을 포기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 원인은 5년만에 산재보험요율 인하 결정을 했기 때문이다.
산재보험유율 인하, 왜?
노동부는 지난달 24일 행정예고를 통해 내년 평균 산재보험요율을 1.80%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올해 1.95%보다 7.7%나 인하됐다. 2004년 이후 줄곧 인상됐던 산재보험요율이 5년 만에 처음으로 인하된 것이다.
산재보험요율 인하 결정과 관련해 노동부는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매년 산재보험요율을 올리다보니 보험료 수입은 증가했는데 지출(보험급여) 증가율은 한자리 수로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보험료 수입은 2004년 이후 지속적인 보험요율 증가추세와 함께 산재보험 적용 사업장·노동자 수 증가로 대폭 늘어났다. 산재보험 수입(수납액 기준)은 2004년 2조9천590억3천만원에서 지난해 4조3천673억4천만원으로 약 1.5배 가까이 증가했다.
반면 산재보험 지출의 증가폭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여기서 분명히 집고 넘어갈 점은 지출의 원인인 산업재해는 감소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출 증가폭이 한자리 수로 줄어든 이유는 근로복지공단이 급여관리를 엄격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부의 올해 연구용역 보고서인 ‘산재보험 재정운용방식 개편방안 연구’에 따르면 지난해 산재노동자 1인당 요양급여와 휴업급여는 각각 476만6천774원, 649만1천556원으로 나타났다. 2004년 이후 꾸준히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보고서는 산재보험 주요 급여항목별 수급자 1인당 지급액을 분석한 결과 “산재보험 지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요양급여와 휴업급여가 감소추세로 돌아섰다”며 “공단이 급여관리를 강화한 결과”라고 밝혔다.
요양·휴업급여가 대폭 감소했다는 것은 산재노동자의 요양기간이 그만큼 짧아졌음을 의미한다. 2004년 전체 5만3천68명의 산재요양 환자 가운데 요양기간이 6개월 미만인 노동자는 10명 중 3명이었으나, 지난해는 총 4만4천256명의 산재환자 가운데 2명 중 1명이 단기요양자로 나타났다.
특히 산재노동자의 요양기간 동안 지급되는 휴업급여액도 큰 폭으로 감소했다. 2004년의 경우 12만3천275명의 산재노동자에게 총 9천546억1천여만원의 휴업급여가 지급됐지만 지난해는 12만3천383명에게 총 8천3억여만원이 지급됐다. 4년 사이 휴업급여 지급총액이 무려 1천543억1천여만이나 줄어든 것이다.
“아픈 것도 억울한데 파스도 본인부담”
산재보험 지출 증가폭이 줄어든 원인에는 요양기간 단축만 있는 것은 아니다. 파스류나 물리치료 등 치료 중인 산재환자들에게도 직접적인 제한이 늘어나고 있다.
탄광노동자 김명수(75)씨는 진폐증과 기관지확장증 등으로 18년 간이나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올해 들어 파스나 소염진통제조차 산재보험 처리가 잘 안 된다”며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있다 보면 안 아픈 곳이 없는데 파스조차 개인부담을 하라니 해도 너무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약물남용 문제가 심각하다며 올초 진통·진양·수렴·소염 외용제 등 파스류를 건강보험에서 적용제외(경구투여가 가능한 경우) 시켰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병원 문턱이 높은 서민·노인층에서 불만이 높은 상태다. 산재보험의 경우 원칙적으로는 종전대로 요양급여 적용에 적용시킨다는 방침이지만, 실제 병상에 있는 산재환자들은 ‘하늘의 별따기’라고 말한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건강보험에서는 사실상 파스류를 개인부담하고 있지만 산재보험에서는 허용하고 있다”며 “다만 과잉진료 가능성 때문에 예전보다 적게 지급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경제위기 속 불안한 노동자
노동계는 “노동부의 산재보험요율 인하방침은 잘못된 결정”이라는 입장이다. 노동건강연대는 최근 성명을 통해 “경제위기의 불안감이 날로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사회안전망인 산재보험 지출을 더욱 증가시켜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노동건강연대에 따르면 우리나라 산재보험 지출은 선진국에 비해 과다하게 요양급여와 연금에 편중돼 있다. 선진국은 산재예방과 산재노동자 재활에 전체 지출의 30% 정도를 쓰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전체 산재보험 지출의 5~7% 수준에 불과하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은 “선진국의 산재보험 보장성은 거의 100%에 달하지만 우리나라 산재보험 보장성은 85% 수준에 그치고 있다”며 “산재예방과 산재노동자 재활에 더 많은 돈을 쓰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더 많은 돈이 보험료 수입으로 확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조병기 노동부 산재보험과장은 “산재보험요율 책정은 내년 지출을 감안해 결정한 것으로 산재보험 보장성과는 별개”라고 밝혔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 정하고 있는 기준에 따라 급여를 지급하기 때문에 산재보험요율 결정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번 산재보험요율 인하는 노동부가 산재보험 재정지출의 폭을 지금처럼 계속 줄이겠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따라서 노동계는 “경제위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사회정책 방향은 실업률 제고와 함께 사회안전망 확충·노동력 보존이며 따라서 보다 많은 재정지출이 필요한 분야가 사회보험”이라며 “산재보험요율을 인상하고 그 돈으로 노동자들의 사회안전망 확충에 나서야 한다”고 맞서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