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와 ‘죽음의 신’은 무슨 관계?

[오마이뉴스 2006-08-24 09:35]

<오마이뉴스>는 지금까지 10회에 걸친 ‘한미FTA, 처음부터 다시보자’ 특별기획을 통해 한미FTA의 절차상의 문제점을 따져봤습니다. 이제 다음으로 각 협상 분야별 주요 쟁점과 문제들을 짚어보려 합니다. 먼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에 대한 박상표 ‘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편집국장의 글을 싣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자 주>

[오마이뉴스 박상표 기자]
논픽션 <원자폭탄 만들기>로 퓰리처상을 받은 작가 리처드 로데스(Richard Rhodes)는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칼레턴 가이듀섹을 비롯한 존 콜린지, 페트리샤 메르즈 등 세계적인 광우병 연구학자들을 두루 찾아서 꼼꼼하게 인터뷰를 한 후 <죽음의 향연(Deadly Feasts)>이라는 책을 썼다.

이 책에서 작가는 탁월한 추리력으로 범인을 찾아내는 탐정처럼 광우병 퍼즐을 하나씩 맞춰나간다. 마치 셜록 홈즈나 CSI 특수수사대처럼 쿠루에서부터 스크래피, 크로이츠펠트-야콥병, 전염성 밍크 뇌증, 광우병을 서로 하나의 고리로 연결시켜 마침내 공포의 가면을 쓴 ‘죽음의 신’의 정체를 밝혀낸다.

지난 6월 30일 현재 죽음의 신 광우병에 의해 목숨을 잃은 전 세계 인간광우병 환자는 공식적으로 집계된 수만 하더라도 183명이나 된다.

‘죽음의 신’ 광우병의 정체는?

작가 리처드 로데스가 밝혀낸 광우병의 정체는 인류를 파멸에 이르게 할지도 모르는 공포의 전염병으로, 사람을 비롯하여 소·염소·양·사슴·쿠두·니알라·겜스복·아라비아오릭스·일런드영양·긴칼뿔오릭스·들소 등 소과(Bovidae) 동물뿐만 아니라 고양이·치타·퓨마·호랑이·오셀롯 등 고양이과(Felidae) 동물들이 모두 감염될 수 있음이 밝혀졌다. 또한 돼지·생쥐·다람쥐·밍크·명주원숭이·짧은 꼬리 원숭이·닭·타조 등도 감염되는 것이 확인되었다.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은 뇌와 안구를 포함한 두개, 척수, 척추, 배근신경절, 장전체, 편도, 장간막 등에 고농도로 존재한다. 하지만 최근 연구보고에 따르면 예전에는 발병인자가 들어있지 않다고 여겨졌던 근육, 오줌, 혈액, 젤라틴, 우유 등에도 저농도의 발병인자가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따라서 광우병 발병인자는 동물의 거의 모든 부위로 확대되고 있으며, 돼지가죽지갑, 닭의 분변을 이용해 만드는 유기농 비료, 수술용 봉합사, 크로이츠펠트-야콥병(CJD) 환자로부터 유래한 조직 이식과 그들을 치료했던 수술기구, CJD 환자로부터 추출한 호르몬제, 도축장의 작업용 전기톱과 칼, 음식물 쓰레기 등에도 발병인자가 들어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쇠고기 수입 재개 압력 배후는 타이슨푸드, 카길 등 다국적기업

한미FTA 협상 개시를 앞두고 미국은 ‘스크린쿼터 축소, 쇠고기 수입재개, 의약품 관련 투명성 제고, 자동차 배기가스 허용기준 완화’ 등 이른바 4대 선결조건을 집요하게 요구했다. 정부는 그럼에도 그동안 “4대 선결조건이라는 용어는 없으며, 미국에 양보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해왔다.

지난해 9월 작성된 ‘제5차 대외경제위원회 안건자료’나 올해 2월 작성된 ‘미국 의회조사국 보고서(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Report)’에는 한국 정부가 한미 FTA 4대 선결조건을 양보한 구체적 내용이 드러난다.

미국 의회와 정부는 우리나라에 미국산 쇠고기를 수출하려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여 압력을 행사했다. 미국 정부가 쇠고기 수입재개 압력을 행사하는 배후에는 타이슨 푸드, 카길 등 다국적기업이 있다.

타이슨 푸드, 카길 등 메이저 축산기업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다 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식량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이들 기업은 거액의 정치자금으로 의원들을 매수하고, 전직관료 등을 로비스트로 고용해 미국정부의 정책까지 결정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타이슨 푸드, 카길 등 악명 높은 다국적기업들의 직·간접적인 로비를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미 상원의원 32명은 지난 5월 24일 “뼈 없는 쇠고기뿐 아니라 뼈 있는 쇠고기와 내장 부위까지 수입하지 않으면 한미FTA의 의회 통과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서한을 이태식 주미 한국대사에게 보냈다.

또한 얼마 전 8월 4일에도 색스비 챔블리 공화당 의원(상원 농업위원회 위원장)과 톰 하킨 의원(상원 농업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 대표) 등 미국 상원의원 31명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즉각 재개하지 않을 경우 한미FTA 자체가 무산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 서한을 보냈다.

이어서 8월 8일에는 미 농무부 관계자가 “한국이 지난번 문제가 발견되었던 몇몇 쇠고기 처리 작업장을 재검검하기 위해 미국에 새로운 현지 실사단을 파견하기로 동의했다”면서 “미 농무부는 한국 실사단이 다음 주 초쯤 들어오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한국 정부는 미국의 압력에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농림부는 8월 24일부터 9월 3일까지 수의과학검역원과 농림부 소속 전문가 3명을 문제가 된 미국 내 수출작업장에 파견, 작업환경 개선 여부를 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정부는 올 4월 미국 광우병 소 나이판정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 현지 조사단 파견이라는 요식행위를 거쳐, 9월 6일부터 9일까지 미국 시애틀에서 열리는 한미FTA 3차 협상이나 9월 14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의 선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를 선언할 우려도 있다.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지 않은 이유

[1] 생후 30개월 미만의 소에서도 광우병 발생

한·미 양국 정부는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기준을 근거로 30개월 미만의 소는 안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의 경우 생후 30개월 미만의 소에서 최소한 19건의 광우병 사례가 확인되었으며, 일본에서도 생후 30개월 미만에서 2건의 광우병 사례가 발생했다. 또한 유럽연합에서는 표본추출 프로그램에 의해 생후 30개월 미만의 소에서 20건 이상의 광우병 양성을 확인했다. 그러므로 국제수역사무국의 기준은 결코 과학적이라고 볼 수 없다.

또한 최근 근육에도 광우병 원인물질인 프리온이 존재하는 연구결과들이 발표됨에 따라 살코기는 안전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스위스의 과학자 아드리아노 아구치(Adriano Aguzzi)는 지난 2003년, 인간 광우병인 크로이츠펠트-야콥병(CJD)에 걸린 사람 32명 중 8명의 근육에서 위험한 프리온 단백질을 발견했다고 밝혀 살코기에 프리온이 있다는 과학적 증거를 제시했다.

프리온 연구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프루시너 박사도 살코기를 통해 프리온이 전파될 수 있으며, 저농도의 프리온이 상당량 축적됨으로써 광우병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쥐 실험을 통해 증명했다.

그리고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스크립스연구소도 최근 <사이언스(Science)>에 “최근 쥐 실험을 통해서 프리온이 원인이 되는 새로운 유형의 심장병을 규명했으며, 프리온은 혈액순환을 통해서 심장 감염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2] 미국의 광우병 검사체계, 신뢰 못해

미국은 2003년에 도축한 3549만5천 두의 소들 중에서 겨우 0.6%인 2만543 두만 광우병 검사를 실시했으며, 2005년 이후에도 1% 정도를 검사하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미국은 최근 이러한 부실한 광우병 검사 계획마저도 10분의1로 축소해 0.1%만 검사하겠다고 발표했다.

미 농림부의 이러한 광우병 검사 축소 방침은 미국 내에서조차 비판을 받고 있다. 미국 소비자연맹(Consumer Union)의 대변인 마이클 핸슨(Michael Hansen) 박사는 “유럽에서는 겉으로 보기에는 건강하게 보이는 동물이 도살장을 통해 식육으로 들어가기 전에 검사를 통해서 광우병 양성으로 밝혀진 적도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유럽에서는 광우병 검사를 철저하게 실시하고 있다”면서 미국 정부는 오히려 현재보다도 광우병 검사를 확대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일본은 생후 20개월 이상의 전체 도축소와 광우병 의심 소에 대해 검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유럽은 생후 30개월 이상 전체 도축소와 광우병 의심소를 검사하고 있다.

[3] 미국의 사료정책은 광우병 예고편

미국은 동물성 사료(MBM) 정책에서도 영국에서 이미 1988~1990년 사이에 실시했다가 무려 2만7천 마리가 광우병(BSE)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되어 실패한, ‘되새김(반추) 동물에게만 동물성사료(MBM)를 금지’하는 정책을 1997년 8월부터 실시하고 있다.

1997년 미국과 동시에 ‘되새김(반추) 동물에게만 동물성 사료를 금지’하는 법을 도입한 캐나다에서도 이 법 실시 이후에 태어난 소에서 광우병 양성이 확인되었다. 이에 따라 캐나다는 1997년부터 실시해 온 기존 광우병 예방 대책의 허술함을 인식하고, 현재의 사료 정책을 폐기했다. 따라서 모든 동물에게 동물성 사료의 투여를 금지하는 새로운 사료정책을 2007년 7월부터 실시할 계획이다.

미국 식약청(FDA)도 현재의 사료정책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돼지나 가금류에 광우병 특정 위험물질을 전면 금지하는 새로운 동물성 사료정책을 2004년 7월 입법예고했다. 그러나 미국 축산기업의 반발로 새로운 입법 조치는 시행되지 못했다.

[4] 국내 유통단계의 안전망 전무, 소비자 선택권조차 박탈

현재 국내에서는 1~5% 미만의 한우에서만 이력추적제(Traceability)를 시범적으로 실시하고 있으며, 음식점의 원산지 표시제도는 전혀 시행되지 않고 있다. 농림부는 2008년부터 쇠고기 이력추적제를 전면 실시할 계획이고, 2007년부터는 연면적 300 평방미터 이상의 음식점에서만 쇠고기를 대상으로 원산지 표시 제도를 시범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농림부가 계획하고 있는 이력추적제와 원산지 표시제도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현재 상태에서는 국내산 쇠고기조차 95% 이상 이력을 추적할 수 없으며, 미국에서 기르고 있는 소도 90% 이상 이력 추적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300㎡ 이하의 중소규모 음식점은 원산지 표시가 전혀 시행되지 않는 사각지대로 남게 된다. 또한 유명백화점이나 대형마트조차 명절 때만 외구산 쇠고기나 젖소 고기를 한우로 둔갑시켜(!) 판매하다가 적발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부가 광우병 위험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강행함으로써, 소비자들은 자신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최소한 미국산 쇠고기를 선택하지 않을 권리조차도 박탈당하고 있다.

국민의 힘으로 ‘죽음의 신’ 광우병 막아내야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가 이루어진다면 ‘죽음의 신’ 광우병이 이 땅에 ‘강림’할 수 있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정부는 “국민 건강을 최우선으로 하여 엄격한 과학적·기술적 검토를 거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결정했다”며 “한미FTA와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가 임박함에 따라 광우병 재앙은 공상과학소설이 아니라 현실로 바뀌고 있다. 광우병이 불러올 ‘죽음의 향연’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국민이 힘을 모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시켜야 한다. 현재로선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중단이 최선의 방법이다.

그리고 차선책으로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국익’을 위해 미국산 쇠고기를 어쩔 수 없이 수입해야 한다면, 국민에게 솔직하게 그 사실을 고백하고 국민의 동의와 이해를 구해야 한다. 광우병과 인간광우병에 관한 과학적 사실을 공개하고, 전문가 토론회와 국민들이 참여하는 공청회 및 설명회를 개최해야 한다.

아울러 최소한 일본의 수입조건 수준인 생후 20개월 이하의 쇠고기만을 수입해야 하며, 국내 유통단계의 안전망을 구축하여 소비자들이 자신의 의사에 따라 국내산과 미국산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미FTA 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광우병 위험이 높은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재개를 강행하는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보다 소중한 국익은 없다’는 경고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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