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추모’ 하기엔 이르다”

[레이버투데이 2006-09-06 19:04]

“이젠 그칠 때도 됐건만 중근이가 다친 날도, 중근이를 보내는 오늘도 이 비는 그칠 줄 모릅니다. 수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 고단하고 모진 삶을 살아온 당신이어야 하는지 아직도 분하고 원통한 마음이 풀리지 않습니다.”

고 하중근 포항건설노조 조합원이 사망한지 37일만에 영면했다. 고인의 사망원인에 대한 진상규명조차 나오지 않았지만 유족들의 요청으로 포항건설노조는 6일 건설노동자 장으로 고인을 보냈다. 그 마지막 길에 조합원들은 영정을 앞에 두고 약속했다. 반드시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를 받아내겠다고 말이다.

▲ 37일간 영하 5도 안치실에 몸을 뉘였던 고 하중근 조합원. ⓒ 매일노동뉴스 정기훈 객원사진기자

건설노동자, 하중근

지난 밤부터 내린 비가 고 하중근 조합원의 장례식이 열리는 6일에도 계속됐다. 37일간 영하 5도의 안치실에서 몸을 뉘였던 그는 몸단장을 하고 오동나무 관속으로 들어갔다. 97년 포항건설노조에 가입해 10여년을 건설노동자로 살아온 그는 한평 남짓한 관 속에서야 눈을 감을 수 있었다.

오전 9시 발인을 앞두고 영안실이 분주하다. 유족들의 요청으로 급작스럽게 준비한 장례일정에 조금의 실수도 없게 하기 위해 조합원들은 상복으로 갈아입고 그가 타고 갈 꽃상여를 정성스레 손질한다.

▲ ‘느그 엄마도 델고 가라, 중근아’ ⓒ 매일노동뉴스

병원을 나서기 전 발인을 하는 자리에서도 조합원들은 소리 내 울지 않는다. 팔순 노모의 막내 아들, 피붙이 막내 동생을 떠나보내야 하는 유족들의 오열에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그들은 이를 앙다물었다. 아직 눈물을 보일 때가 아니다.

“병술년 구월 엿새 날 정오 해동 조선국 포항 땅에서, 이 땅의 공장을 만들고 다리를 놓고 집을 만드는 건설노동자들이 억울하고 원통한 우리 동지의 극락왕생을 천지신명께 고하나이다.”

지난 7월16일 ‘포항건설노조 파업 승리를 위한 건설노동자 결의대회’가 열렸던 포항 형산강 로터리에서 노제가 시작됐다. 고 하중근씨가 부상을 입고 쓰러졌던 곳이다. 53일만에 그는 싸늘한 시신으로 그곳을 찾았다.

그날 집회에서 맨 앞에 섰던 중근씨. 강제해산을 통보하지도 않은 채 진압에 나선 경찰에 둘러싸여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을 것이다. 동료들의 ‘깨어나라’는 바람도 듣지 못하고 16일간 생사의 갈림길에서 홀로 견뎌야 했던 그는 결국 지난달 1일 오전 2시55분께 사망했다. 마흔다섯 짧은 생을 그렇게 마감했다.

“억울하고 분하다. 폭력의 실체를 밝혀내지 못하고 동지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피눈물이 쏟아진다. 진실은 사장될 수 없다. 지금 동지를 보내지만 반드시 영정앞에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를 세우겠다.”

고인의 영정 앞에 단병호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 고개를 숙인다. 조합원들도 함께 약속했다. 지금 중근이를 보내지만 이 싸움이 끝난 것이 아닌 다시 시작되는 것이라고.

▲ 영정 속 황색 민복 곱게 차려입은 중근씨가 형산강을 건너다. ⓒ 매일노동뉴스

살아서 건널 수 없었던 형산강

운구차를 앞세우고 포항건설노조 깃발과 황색 민복을 곱게 차려입은 하중근씨 영정이 뒤따른다. ‘열사정신계승’ ‘노동탄압분쇄’가 적혀있는 수십여개의 만장과 꽃상여, 상복을 입은 포항건설노조 장례위원들이 그 뒤를 잇는다.

유족들의 요청에 따라 ‘중근이를 가슴에 묻고 보내’기로 마음 다졌던 조합원들의 발걸음이 느려지더니 결국 장례행렬은 형산강 다리에서 멈춘다. 표정 없는 그들의 시선이 형산강 다리 너머 포스코 공장으로 향하고 굴뚝에서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는 연기를 따라 흩어진다.

▲ ‘미안하다, 미안하다’ 포스코 정문을 앞에 둔 형산강 다리 위 조합원들의 발걸음이 무겁다. ⓒ 매일노동뉴스

한참을 그렇게 머문 행렬이 다시 움직이고 ‘미안하다’ ‘미안하다’ 되뇌이며 조합원들도 무거운 발걸음을 떼놓는다.

굳게 닫힌 포스코 정문 앞. 컨테이너 모양의 철제 박스 ‘로로선 카세트’로 어김없이 막혀 있다. 코일모양의 철강제품을 배에 실을 때 제품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로로선 카세트는 폭 2.7m, 높이 3.3m, 길이 7m에 무게는 7톤이다. 육중한 ‘괴물’ 뒤로 포스코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한 시간 반을 그렇게 걸어서 도착한 포스코 본사 앞. 포스코본사 점거 당시 중근씨도 그 안에 있었다. 몸이 좋지 않아 먼저 나올 수밖에 없었던 중근씨가 이제야 그 앞에 섰다.

ⓒ 매일노동뉴스

“무거운 짐 벗어놓고 편히 가십시오”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열사정신 계승 하중근 열사 건설노동자장’ 플래카드 아래 중근씨의 영정이 놓여 있다.

“비정규직 설움 우리에게 남겨두고 편히 가십시오. 이제 80만 민주노총이 동지의, 85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한을 반드시 해결하겠습니다. 약속하겠습니다. 이대로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조준호 위원장의 목소리가 떨렸다. ‘열사’의 명예를 회복하고 전국노동자장으로 성대히 가는 길을 돌보고 싶었던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은 유족들의 마음을 헤아려 사죄를 드린다는 말로 조사를 시작했다. “유족들에게 깊은 사죄와 위로를 드립니다. 동료를 잃은 건설노동자의 아픔을 유족들의 아픔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장례를 미루며 약속했던 일들 이루지 못해 죄송합니다.”

▲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소리 내 울 수 없습니다. ⓒ 매일노동뉴스

남궁현 건설산업연맹 위원장은 미리 준비해 온 조사를 힘주어 읽어 내려갔다.

“이곳까지 힘들게 달려왔습니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남았기에 동지를 먼저 보내는 것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솔직히 어렵고 힘들지만 고인의 뜻대로 반드시 이 싸움 승리로 이끌겠습니다.”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아직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데, 이대로 고인을 보낼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과 미안함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장례절차를 모두 마치고 포항건설노조 조합원들은 중근씨에게 말한다. “무거운 짐 우리에게 맡겨놓고 부디 편히 가십시오.”

고 하중근 조합원은 유족들의 뜻에 따라 포항시립화장터에서 한줌 유해로 남았으며 포항시 남구 대보면에 위치한 선산에 안장된다.

마영선 leftsun@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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