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무시·폭언…“홀로 삭힌다”
대인서비스직 여성노동자, ‘무조건 빌어라’식 서비스교육 개선 시급
“아무래도 외국인들을 주로 상대하다 보니까, 외국어로 된 음란한 농담이나 음담패설을 들어 넘겨야 하는 경우가 많고요. 남성 고객이 여성 딜러의 엉덩이를 만진다거나, 카드를 건네며 일부러 손을 스치거나 심지어 손에 입을 맞추는 경우도 종종 발생합니다.”(G카지노 딜러 강윤경 씨(가명))
“백화점의 경우 남성 고객보다는 여성 고객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성희롱 문제는 거의 발생하지 않아요. 다만, 여성 고객들에 의한 인격적 무시도 서비스업종 노동자들에겐 굉장한 스트레스로 다가오죠. 대부분의 경우 무조건 직원이 ‘잘못했다’고 사과해야 하는데, 그런 일 한번씩 겪고 나면 많이 힘듭니다. 사과 안하고 버티면, 나중에 인사상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고….”(M백화점 판매원 김지은 씨(가명))
대인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남성 고객들에 의한 성희롱’과 ‘여성 고객들의 무시’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와 서울여성노동자회가 추진 중인 ‘대인 서비스직 여성의 근로실태 조사’의 기초자료를 제공하기 위해 서비스연맹이 최근 산하 7개 노조 59명의 여성노동자를 심층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4.2%(32명)가 “언어적·육체적·시각적 성희롱을 겪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주요 고객의 성별에 따라 성희롱 노출 빈도가 현격하게 차이 나는 것으로 조사됐는데, 남성들이 주로 찾는 골프장과 카지노에서의 성희롱이 특히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설문에 응한 I골프장 경기보조원의 경우 응답자 11명 모두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답했고, G카지노 여성 딜러들 역시 응답자 11명 중 9명이 성희롱 당했다고 답했다.
특히 이들 대부분은 △음담패설 △외모 등에 대한 성적 비유나 평가 △음란한 내용의 전화 통화 △성적 관계를 강요하거나 회유하는 행위 △회식자리 등에서 술을 따르도록 강요하는 행위 등 ‘언어적 성희롱’ 사례를 경험했다고 답했고, △신체의 일부를 만지거나 접촉하는 행위 △안마나 애무를 강요하는 행위 등 ‘육체적 성희롱’에도 빈번하게 노출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주부 등 여성을 주로 상대하는 백화점·할인점 판매사원, 학습지교사 등은 성희롱 노출 빈도는 낮되, 여성고객들의 의한 인격 모독을 경험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에 응한 M백화점 여성 판매직원들의 경우 응답자 10명 중 2명만이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답했으나, ‘눈빛, 말투, 태도’ 등을 통해 인격적으로 무시당했다고 느꼈거나 폭언을 들었다는 응답자는 7명에 달했다. 설문에 응한 학습지 교사 6명 중 5명도 인격적으로 무시당했다고 답했다.
<자료사진=매일노동뉴스>
한편, 고객들에 의해 성희롱이나 인격적 무시 등을 당하더라도 대부분 여성노동자들이 이를 ‘참아 넘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에 대해 응답자들은 “원래 이 일이 고객을 응대하는 일이다보니 고객에게 함부로 할 수 없다”고 설명했고, “고용상의 불이익이 발생할까봐”라는 응답도 나왔다.
정민정 서비스연맹 여성부장은 “대부분의 서비스 업장에서 연1회 이상 성희롱 예방교육과 고객서비스교육 등이 실시되지만, ‘문제가 발생하면 무조건 고객에게 사과하라’는 등,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내용으로 채워지고 있다”며 “이처럼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교육보다는 ‘성희롱으로 적발되면 법적으로 처벌받게 된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업장에 설치하는 등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은회 기자 press79@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