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폐기물 재활용’ 급급…유해물질 ‘재생산’ 하는 꼴
[한겨레 2006-09-15 09:33]
[한겨레] 중금속 쓰레기까지 마구잡이 소각…시멘트 재료·연료로
시멘트 공장에는 제철소의 용광로에 해당하는 소성로가 있다. 이곳에는 주원료인 석회석 외에 폐주물사, 소각재, 하수찌끼, 폐타이어, 폐비닐 등 갖가지 산업 폐기물이 부원료나 보조연료로 투입된다. 이들 가운데는 크롬·납·카드뮴 등 유해 중금속을 함유한 것도 적지 않다.
환경부 폐기물 정책의 부산물=이런 중금속들은 결국 시멘트에 포함되거나 굴뚝으로 빠져나와 주변으로 퍼져 나간다. 최근 불거진 시멘트 6가크롬 문제(<한겨레> 11일치 1면)는 재활용으로 쓰레기를 치우는 데 급급했던 환경부 폐기물 정책의 부산물인 셈이다. 정작 중요한 국민 건강은 소홀히 다뤄졌다.
현행 폐기물 관리법은 시멘트 회사가 어떤 사업장 폐기물이든 소성로에 투입할 수 있게 허용하고 있다. 한국산업규격(KS)에 맞는 제품을 만드는 데 재활용한다고 시·도지사에게 신고만 하면 된다. 그러나 시멘트에 대한 한국산업규격은 제품에 필요한 성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이다. 유해물질 함유량 규정은 없다. 제품이 친환경적인지 반환경적인지 판단할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폐기물 재활용 정책에서 국민 건강 홀대는 소성로가 내보내는 대기오염물질 관리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환경부는 생활 쓰레기를 태우는 도시 소각로에 대해 다이옥신·크롬·납·카드뮴·수은 등 모두 15가지 대기오염물질을 관리한다. 하지만 소성로는 다이옥신은 물론 여러가지 중금속을 배출하는데도 먼지·황산화물·질소산화물·염화수소 등 네 가지만 관리하고 있다.
한국 소성로는 국제 폐기물 처리장?=시멘트 소성로에 대한 이런 특별 대우는 한국의 소성로를 국제 폐기물 처리장으로 만들고 말았다. 폐기물 처리비가 비싼 외국의 폐기물들이 처리비가 적게 드는 곳을 찾아 한국으로 오고 있다.
일본산 석탄회를 쓰는 한 시멘트 업체 관계자는 “일본에서 처리비로 1t에 2만여원씩을 받고 있다”며 “화물선이 접안할 항구를 낀 공장들에서 주로 수입 폐기물을 쓴다”고 말했다. 무역협회 통계를 보면 이렇게 수입되는 슬래그와 석탄회는 해마다 늘어난다. 지난해 일본·중국·영국 등에서 50만843t이 수입됐다. 올해는 지난 7월까지 일본에서 들어온 것만 36만1069t에 이른다.
이렇게 수입된 슬래그 중에는 6가크롬을 포함한 총 크롬 함량이 7000ppm이 넘는 제련 슬래그도 포함된 것으로 밝혀혔다. 이런 수준의 슬래그는 유해 폐기물의 국가 사이 이동을 통제하는 ‘바젤협약’의 적용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 시멘트 업체 고위 관계자는 “한 시멘트 공장이 2004년 한햇동안 일본의 제련소에서 나온 슬래그 6만t 가량을 수입해 부원료로 사용하다 너무 높은 크롬 함량 때문에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해 중단했다”며 “그러나 그 뒤에 다른 시멘트 공장이 이 슬래그를 받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슬래그에 함유된 크롬은 시멘트 제조공정에서 상당 부분 유해한 6가크롬으로 전환돼 시멘트에 섞였을 것으로 보인다. 박일호 환경부 자원재활용과장은 “소성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알지만 너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면 폐기물 재활용 정책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소성로 앞에 서면 작아지는 환경부=환경부가 지난 11일 발표한 시멘트 6가크롬 함유량 기준은 5월 말 요업기술원이 ‘시멘트 중금속 함량조사 연구’ 용역보고서에서 제안한 그대로다.
시멘트에 최초로 유해물질 함유량 기준을 설정하는 근거가 된 이 연구용역은 설정될 기준을 적용받을 시멘트 업계가 발주했다. 용역비는 6000만원이었다. 환경부 관계자는 “직접 조사하려고 했는데, 양회공업협회 쪽에서 예산이 확보돼 있다고 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부가 용역비에 인색한 것은 아니다. 환경부는 2000년 9월 과학기술부와 함께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3년 동안 25억6600만원의 정부 예산을 쏟아붓는 연구를 맡겼다. 연구 주제는 제철소 폐기물을 시멘트 원료로 재활용할 기술 개발이었다.
환경부는 2009년부터 적용할 6가크롬 함유량 기준을 20㎎/㎏으로 설정한 이유를 “앞서가는 일본 기준에 맞춘 것”이라고 밝혔다. 이 설명은 다른 환경기준 설정 과정에서 환경부가 보여온 신중한 태도에 비춰보면 더욱 군색하게 들린다. 선진국 환경 기준은 어디서나 통한다는 식의 주장은 환경 기준 설정의 기본을 무시한 것이다.
김윤신 한양대 대학원 보건학과 교수는 “유해물질에 대한 기준을 설정할 때는 사람들이 해당 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을 반드시 평가해야 한다”며 “노출 가능성은 생활양식과 환경에 따라 다르다”고 말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우원식 의원(열린우리당)은 “폐기물 재활용도 좋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국민 건강”이라며 “환경부가 환경을 중심에 세우지 않고 너무 경제를 의식해 자기검열을 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영월 제천/글·사진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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