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화제] “악몽의 7년이었습니다”
[부산일보 2006-09-23 11:21]
‘만성신부전’ 산재보상 전액 받아낸 박종해씨
“지난 7년간은 정말이지 악몽 같았습니다.”
박종해(48·부산 수영구 광안동)씨는 22일 감사원으로부터 심사청구 결과를 통보받고 끝내 굵은 눈물을 떨궜다. 지난 2000년 산업재해를 인정받기 위한 힘겨운 싸움을 시작한 지 6년이 지나서야 드디어 산재보상금을 모두 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지난 1999년 4월 중순 박씨는 직장에서 갑자기 쓰러졌다. 병명은 ‘다낭신종에 의한 만성신부전증’. 8개월의 입원치료가 끝난 뒤인 2000년 5월 박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했으나 ‘유전에 의한 질병이어서 산재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이때부터 박씨의 기나긴 싸움이 시작됐다.
박씨는 지난 2001년 2월 17일 법정 소송을 제기하면서 ‘나홀로 소송’에 나섰다. 그동안 법원에 제출한 서류만 3천~4천여장. 박씨는 병든 몸을 이끌고 법원,사회단체,서울의 근로복지공단 등 관련 기관을 일일이 돌며 자료를 모았다. 갈수록 악화되는 병과 행정기관들의 자료공개 거부 등으로 소송을 포기하려 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박씨의 마음을 멍들게 했던 건 전문가들의 외면이었다. 법률 조언을 얻기 위해 관련 교수 등 전문가들을 찾아갔다가 “분쟁에 휘말릴 수 있는 일에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차가운 말만 듣고 되돌아선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박씨는 힘들 때마다 ‘여기서 주저앉으면 내 억울함이 묻히고 만다’며 입술을 깨물고 소송에 매달렸다.
이 같은 노력으로 박씨는 지난 2004년 대법원으로부터 산재 인정 판결을 받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같은 해 4월 공단에 요양급여와 휴업급여 등 보험급여를 신청하자 공단 측은 휴업급여 소멸시효가 3년이라는 규정을 들어 대법원 판정을 기점으로 3년 전까지의 휴업급여만 지급했다.
박씨는 산재를 인정받기 위해 싸워왔던 지난 2000~2001년 동안의 휴업급여도 지급해줄 것을 주장하며 지난 2004년 5월 감사원에 공단 결정에 대한 심사를 청구했다.
박씨는 ‘휴업급여 일부 부지급 결정’에 관한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불안한 마음에 청와대,노동부 등 정부 기관에 수차례 민원을 제기했지만 매번 거절당하거나 감사 대상인 공단 측으로 민원이 되돌아오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심사청구 2년4개월여 만인 22일 감사원은 마침내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모든 보험급여의 소멸시효가 중단된다는 대법원의 판례 △박씨의 경우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는 점 △공단이 휴업급여의 소멸시효에 대한 정보를 박씨에게 통지한 적이 없다는 점 등을 이유로 박씨의 손을 들어줬다.
박씨는 “남은 것은 결국 망가진 몸과 사회에 대한 적대감뿐”이라며 “그래도 아픈 몸을 이끌고 법적 공방을 계속한 것은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회적 약자들에게 희망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공단 측은 “박씨의 경우 처지는 안타깝지만 소멸시효는 법 개정을 통해 시정돼야 할 문제이지 유권해석에 근거해 법과 달리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에 따르면 매년 공단으로부터 산재 신청을 거절당하는 노동자는 전국적으로 2만~3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지만 대부분이 비용과 절차상의 문제 때문에 소송을 포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형·정선언기자 withpen@busa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