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탐구> `조용한 살인자’ 석면
[연합뉴스 2006-09-21 08:50]
캐나다의 석면수출에 항의하는 시위가 시드니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
단열재, 브레이크 등 수천 곳에 사용
체내에 수십 년 잠복…1급 발암물질
단계적 규제강화 불구 안전의식 희박
(서울=연합뉴스) 이선근 편집위원 = 우리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공사현장을 지나게 된다.
대개 비어 있던 땅에 새 건물을 세우는 것보다는 낡은 건물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첨단 기능이 도입된 새 건물을 올리는 현장이 훨씬 많다. 그래서 도심 공사현장에서는 먼저 낡은 건물을 헐어내는, 소음과 먼지로 뒤범벅된 별로 유쾌하지 않은 작업을 흔히 보게 된다.
건물 잔해 더미에는 콘크리트와 목재, 철근조작과 함께 단열재 뭉치들도 어지러이 섞여 있고, 대형 덤프트럭들이 바쁘게 이 폐기물을 실어나른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주변에 먼지가 흩날리고, 행인들은 손으로 입과 코를 가리며 종종걸음으로 현장을 지나간다.
요즘은 공사현장에서 비산먼지에 신경 쓰는 경우가 많아 예전보다는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건축 폐자재 취급 상태를 곁눈으로만 지켜봐도 불안감을 떨치기 어렵다.
과연 주변에 날리는 먼지와 여기저기 흩어진 폐자재가 불쾌감을 넘어 건강상 위협을 주지는 않는 것일까. 최종처리는 안전하게 되고 있는 것일까.
이런 불안감은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낡은 건물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1급 발암물질인 석면먼지가 퍼지기 때문이다.
지금은 석면의 위험성에 대해 어느 정도 일반의 인식이 퍼져 있는 편이지만 실제 작업자들의 안전 문제나 관리실태는 사실상 무방비 상태로 방치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침 노동부는 20일 석면을 함유한 건축물을 해체하거나 제거할 때 반드시 작업자의 건강보호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산업보건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내년부터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앞서 지난 7월 산업안전보건정책심의회를 거쳐 내년부터 석면 함유제품 사용을 단계적으로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건축자재용 및 자동차용 석면제품 사용을 금지하고 2009년부터는 석면제품의 제조와수입, 사용을 전면 금지할 방침이다.
이것으로 충분한 것일까. 우리나라의 석면 규제는 선진국에 비하면 많은 격차가 있고 작업장의 안전의식도 희박하다. 석면제품의 조속한 전면 사용금지 및 당국의 철저한 감독과 감시가 시급한 실정이다.
◇ 석면, 왜 위험한가 = 석면(asbestos)은 그리스어로 `불멸의 물질’이라는 뜻이다. 사문암이나 각섬석에서 추출한 극히 미세한 섬유형태의 광물질이다.
부식과 마모에 강하고, 단열효과가 탁월한 등 물성이 좋아 단열재 등 건축자재에서 배관용 파이프 피복재, 방음재, 방화복, 자동차 브레이크 패드, 램프 심지까지 수천 가지 용도로 사용돼 왔다.
문제는 미세한 석면섬유가 공기 중에 먼지 등의 형태로 떠다니다 호흡 등을 통해 인체에 한 번 들어오면 빠져나가지 않고 장기적으로 조직과 염색체에 이상을 초래해 암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미국 산업안전 보건청(OSHA)은 석면을 `인체에 암을 일으키는 것이 확실한 1급 발암물질’ 27종 중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국제암연구학회(IARC)도 석면을 1급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석면의 다양한 용도로 인해 우리는 항상 석면먼지에 노출될 가능성을 안고 있기 때문에 석면의 위험도는 특정 직업군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석면은 당장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통상 노출된 양에 따라 10-30년, 통상 25년 정도의 잠복기를 거쳐 대부분 암을 일으키게 된다.
건물철거현장에서 석면함유 추정내장재가 어지럽게 널려있는 모습
석면을 다루는 직업에 20년 이상 종사한 경우 폐암발병률이 일반인의 10배, 여기에 담배까지 피우면 40배나 된다는 사실은 왜 석면을 `조용한 살인자’ `죽음의 섬유’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다. 특히 석면먼지가 늑막이나 복막을 뚫고 침투해 생기는 중피종 암에 걸리면 대개 1년 내에 사망하게 된다.
또 석면먼지를 오랜 기간 많이 들이마시게 되면 진폐증처럼 폐가 섬유화돼 호흡곤란을 일으켜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ILO(국제노동기구)에 따르면, 석면으로 인한 사망자는 연간 10만 명에 달한다. 직업병 중 석면에 의한 피해가 단일요인으로서는 농약(연간 사망자 7만명)을 뛰어넘는 가장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 석면제품의 무궁한 용도 = 석면은 열에 강하고 내마모성, 내열성, 내약품성이 좋아 전 세계적으로 위험성이 널리 인지되기까지 3천여 종의 제품에 사용됐다.
대표적으로 우리 초가지붕을 대체한 슬레이트도 석면제품이다. 전 세계적인 대형건축물에도 이전에는 석면이 단열재나 냉난방파이프 배관을 감싸는 피복재 등으로 대량 사용됐다.
지금은 비석면제품으로 대체되고 있는 추세이지만 탁월한 내마모성과 내열성 때문에 열에 강하고 잘 닳지 않아야 하는 물성을 요구하는 자동차 브레이크용 패드 역시 석면제품이다. 지하철 전동차 브레이크에도 사용되고 있어 전동차가 역 구내로 진입할 때에는 수백 개의 석면함유 브레이크 패드에서 비산먼지가 발생한다.
전체적으로는 건축자재로 90%가 사용되고, 자동차용으로 6.5%, 산업 및 공작기계 등에 2%, 내열 및 내약품성이 요구되는 화학플랜트용으로 0.6%, 기타 충전재나 선박 및 절연재 등으로도 사용된다.
러시아, 캐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전 세계 총 공급물량의 80% 이상을 대고 있으며 기타 중국, 이탈리아, 미국, 그리스에서도 석면을 생산하고 있다. 연간 사용물량은 400만-500만t 수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석면 위험성이 주목을 끈 국내외 사례들 = ▶ 서울대는 지난 5월 중앙도서관 리모델링 작업을 하던 중 석면이 검출돼 공사중단 소동을 빚었다.
원래 건물 등을 철거할 때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석면이 검출되는지를 미리 검사해야 하지만 그대로 도서관을 철거하다 시민단체에 의해 다량의 석면이 검출되자 공사를 중단했던 것.
서울대 측은 문제의 건물이 30년이나 된 노후건물이어서 내부자재로 목재를 쓴 줄 알고 석면 유무 검사를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이 사건은 석면이 일반 건축물에 얼마나 일반적으로 사용되어 왔는지, 공사 발주자나 관련 업체 등이 석면 문제에 얼마나 무심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지적되고 있다.
▶ 뉴욕 유엔본부에도 석면이 다량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대대적인 개보수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척 슈머 미 상원의원은 지난달 유엔본부 건물이 지난 50년 동안 한 번도 개보수 작업이 이뤄지지않아 `죽음의 덫’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하면서 관련 예산편성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슈머의원이 지적한 문제점 중에는 내장재로 사용된 석면제품이 노후화하면서 석면먼지가 입주자들의 건강을 좀먹고 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유엔본부 건물을 뜯어고치는 데는 16억 달러라는 막대한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 일본의 대형 건설기계 업체인 구보타는 지난 5월 석면피해를 입은 공장주변 주민들에게 32억엔을 보상하기로 했다.
석면 중에서도 독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청석면을 취급해온 구보타는 1978-2004년에 걸쳐 전·현직 직원과 하청업체 종사자 등 총 79명이 중피종으로 사망하고 공장주변 주민들의 피해 호소가 잇따르자 지난해 석면 사용을 중단한 데 이어 이번에 추가보상키로 합의한 것.
인도의 폐선박처리장 모습. 작업인부 6명중 1명꼴로 석면질환을 앓고있다.
석면피해 보상 대상자는 이미 200만엔의 조의금과 위로금을 지급받은 공장주변 주민 가운데 중피종 환자와 유족 등 88명. 금액은 2천500-4천600만엔씩이다.
▶ 프랑스의 퇴역 항모 클레망소가 `해체지’를 찾지 못한 채 이리저리 해외를 떠돌다가 결국 지난 5월 프랑스로 되돌아왔다.
1997년 퇴역할 때까지 36년간 프랑스 해군의 자부심이었던 클레망소가 이처럼 골칫거리가 된 것은 내장재로 사용된 막대한 석면 때문. 클레망소는 석면의 위험성에 대한 환경단체의 따가운 감시 아래 2003년 해체에 앞서 먼저 석면을 제거하기 위해 프랑스를 떠났으나 스페인 업체와 계약이 파기되면서 이탈리아 해역에 발이 묶이는 등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클레망소는 최근 인도에서 해체작업을 진행키로 돼 있었으나 그린피스 등 환경단체는 항모를 관계 법령과 시설이 미비한 곳에서 해체하면 근로자에 폐암을 유발할 수 있다며 인도행을 강력 저지해왔다.
여기에 인도 대법원도 클레망소의 인도 영해 진입 금지 결정을 내리자 결국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본국 회항을 지시했다.
▶ 세계 최대의 단열재 제조업체인 미국 오웬스 코닝은 지난 5월 석면 피해자들에게 52억 달러를 지급키로 했다. 오웬스 코닝은 석면의 유해성이 확인된 이후 총 100억 달러에 이르는 피해보상 소송에 시달려왔으며, 이에 따라 법원에 아예 파산보호 신청을 해놓은 상태.
미국 의회예산국(CBO)이 지난해 11월 추산한 결과에 따르면 석면 관련 소송 규모는 모두 1천500억 달러에 달한다. 앞서 지난 1월 미국 1위 석고보드 제조업체 USG그룹도 39억5천만 달러를 석면 피해 보상금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 외국의 석면 사용 규제 현황 = 선진국들은 일찌기 석면제품의 사용을 금지해왔다.
석면 피해가 늘어나자 북유럽국을 중심으로 1980년대 들어 석면사용을 법으로 금지하는 나라들이 늘어나다 1999년에는 유럽연합(EU)중 13개국이 석면사용을 전면금지했고, 현재는 유럽 전역 대부분의 나라가 석면금지 조치를 취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1972년 완공된 파리 6,7대학 건물의 석면오염문제가 1996년 쟁점화하자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건물 철거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프랑스는 이어 석면위해성에 관한 정부 보고서가 나오자 이듬해인 1997년 석면사용을 전면금지했다.
일본도 1983년부터 대부분의 석면제품에 대해 수입금지 조치를 내린 것을 시작으로 2004년부터는 사실상 석면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같은 해 10월부터는 브레이크 패드, 브레이크 라이닝, 클러치 라이닝 등의 자동차 부품에 대해서도 석면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미국도 1989년부터 단계적으로 규제를 강화해오고 있는 추세다.
◇ 우리는 규제와 감독이 미흡 = 우리나라는 1980년대 들어 선진국들이 속속 석면사용 규제에 나섬에 따라 석면의 국제가격이 떨어지자 오히려 석면수입을 늘리는 등 석면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뒤처져왔다.
이런 인식부족 아래 1970-1997년 사이에 우리나라가 수입한 석면의 총 물량은 약 187만t에 달한다. 그중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더 높은 청석면, 갈석면의 수입이 금지된 것은 1997년이기 때문에 그 이전 수입물량은 독성이 더 높은 석면이 섞여 있다.
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특히 근년 들어 석면 규제가 강화되면서 원자재 수입은 줄었지만 석면함유제품 수입은 오히려 최근 10년새 6배나 늘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석면 원자재 수입량은 1995년 8만8천722t에서 2005년에는 6천477t으로 크게 줄었지만 제품 수입량은 1995년 7천932t에서 2005년 4만7천967t으로 급증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단계적으로 석면 퇴출 정책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지난 2003년 7월부터 건축물의 석면해체 작업을 할 때에는 사전에 노동부장관의 허가를 받아 안전규정에 맞게 작업하도록 하고 있고, 지난 2월부터는 상대적으로 더 위험한 청석면과 갈석면 등 석면류를 제조ㆍ사용 금지물질로 지정했다.
또 내년 1월부터 건축자재용과 자동차용 석면 제품 사용을 금지하고 2009년까지 모든 석면 제품의 제조ㆍ수입ㆍ사용 등이 금지된다.
내년부터 사용 금지되는 제품은 건축자재 중 지붕과 천장, 벽, 바닥재용 석면 시멘트 제품으로 석면 슬레이트와 석면 칸막이(밤라이트) 등이며 석면마찰 제품인 자동차용 브레이크라이닝(패드)과 클러치라이닝(페이싱)도 대상이다. 그렇지만 석면이 중량비 1% 이하 함유된 제품은 규제대상에서 제외된다.
문제는 당국의 감시.감독기능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점이다.
건축물 철거시 석면 여부를 자진신고하게 돼있 지만 실제 어느 건물에 어느 정도의 석면이 사용됐는지 아무도 모를 뿐더러 300명도 채 안 되는 근로감독관이 전국 철거현장의 석면 실태를 파악한다는 것도 사실상 무리다. 또 석면은 지정 폐기물로 특별한 취급을 하게 돼 있지만 슬레이트 등 덩어리로 돼 있어 석면먼지를 날릴 염려가 적은 것은 일반 폐기물로 분류돼 있는 등 법규 자체에도 틈새가 있다는 지적이다.
sunn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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