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희의 인권이야기] 2백만 원, 2천만 원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돈이다. 한 검사의 문자메시지에 언급된 샤넬 가방 하나를 살 수 없는 돈이기도 하고, 반값 등록금 정책 덕에 서울시립대 한 학기 등록금을 내고도 남을 돈이기도 하다.
벌금이 2백만 원이라면 어떤 일을 저질렀다는 것일까? 구글로 ‘벌금 2백만 원’을 검색해보았다. 수렵이 금지된 장소에서 공기총으로 꿩을 사냥한 이가 야생동식물보호법위반죄에 근거해 벌금 2백만 원을 판결 받았단다. 소방서 장난 전화, 인터넷 연예인 관련 기사 악성 댓글, 교통단속 중인 경찰에게 욕설, 머리 빨리 자라는 샴푸라는 과대광고 등이 모두 벌금 2백만 원짜리 죄였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지난 7월 초, 이마트 탄현점에서 냉동기 보수작업을 하던 노동자 네 명이 질식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 중 한 명은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나섰던 휴학생이라 사람들은 더욱 안타까워했다. 사회단체인 노동건강연대는 이마트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고발했고, 고용노동부와 일산 경찰서도 각각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이마트 대표와 트레인코리아 대표 등을 검찰에 송치했다.
며칠 전, 검찰은 약식명령 청구에 의해 최종 벌금 200만 원을 통지했다. 이마트 법인 100만원, 탄현지점장 100만원. 이는 사건 후 노동부의 실태 점검에서 확인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에 대한 벌금일 뿐, 사망사고에 대한 책임은 묻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사업주 ‘개인’에게 부과된 것은 1백만 원 뿐이다. 산재보상이 있으니, 책임은 그걸로 충분하다는 뜻이리라. 발주업체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이 반드시 동물보다 소중한 존재라고는 말 못하겠다. 하지만 꿩을 죽여서 부과되는 벌금과 노동자 네 명이 죽고 나서 부과되는 벌금이 같다는 것은 참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 2천만 원
2천만 원은 어떤가? 2008년 벽두, 노동자 40명이 한 자리에서 화상과 질식으로 사망하는 말도 안 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경기도 이천에서 ‘코리아2000’ 사의 냉동 창고를 건설하던 중에 벌어진 일이다. 이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와 산업안전법 위반이 빚어낸 근래 최악의 참사였다. 당시 수원지법은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코리아2000 대표에게 벌금 2천만 원, 현장소장에게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방화관리자에게는 금고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코리아2000 법인에는 벌금 2천만 원이 선고되었다.
사업주 개인에게 돌아간 벌금은 결국 2천만 원. 그랬다. 4명에 2백만 원, 40명에 2천만 원, 법인 벌금까지 포함해서 4천만 원이니 노동자 한 명 목숨의 대가는 50만원, 많아야 1백만 원인 셈이다.
2010년 한 해에만 노동자 2,200명이 일터에서 죽었다. 이런 생각을 해보자. 932명의 승객을 가득 태우고 방금 서울역을 떠난 KTX 열차 두 편, 3백 명의 승객을 태우고 제주도를 향해 이륙한 김포공항의 비행기 한 대. 이것들이 모두 바다 한 가운데로 추락했다고 말이다. 헐리우드 재난영화와 자웅을 겨루어볼만하지 않은가? 어떻게 이런 일이 매년 반복될 수 있을까?
노동자가 당한 고통을 사업주도 똑같이 당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업주 자신이 저지른 일이 그저 차가운 서류 속의 ‘위반’, 벌금 수십만 원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남아 있는 이상 이러한 떼죽음은 줄어들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기업주도 사람인데, 노동자쯤이야 죽어도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안전에 투자하는 비용과 사고가 발생했을 때 드는 비용을 비교했을 때 후자로 처리하는 게 저렴해서 그리 한 것이라면 이건 자본주의적 합리성이다.
그러나 아무리 시장이 비정해도 시장을 만드는 것도 사람들이다.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을 해치는 것이 기업주에게 감당할 수 없는 경제적 손실이자 인신의 구속, 사회적 모욕을 안기는 무엇이 되도록 만드는 것, 한국 사회에는 이런 것이 필요하다. 현재의 50만 원, 100만 원 목숨 값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살인 기업주’를 강력하게 처벌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