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온 참새가 기절하는 기이한 공장, 

정체는 뭘까요?”

[더러운 산업, 반도체의 진실·2] 웬링 투 타이완 국립정치대학 교수
      
     
지난 11월 11일(금) 대전에서 개최된 대한직업환경의학회 추계 학술 대회에서는 ‘전자 산업의 건강 문제’ 심포지엄이 열렸다. 다음 날인 12일(토)에는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반도체·전자 산업 노동 건강권과 환경 정의 국제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들 행사는 반도체·전자 산업 관련한 건강 및 환경 문제에 대한 국내 첫 공식 학술 행사이자 국제 심포지엄이었다.
과 노동건강연대는 이들 행사에 참석 차 내한한 테드 스미스(Ted Smith)와 웬링 투(Wenling Tu)를 만나 전자 산업 노동 환경 정의 문제의 핵심 이슈와 국제 동향을 들어보았다.
테드 스미스는 현재 ‘기술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국제 운동(ICRT, International Campaign for Responsible Technology)’의 코디네이터이며, ‘실리콘밸리 독성 물질 방지 연합(SVTC, Silicon Valley Toxic Coalition)’의 설립자다.
웬링 투는 타이완 국립정치대학 교수(공공행정학과)로서 현재 ‘지구공민기금회(CET, Citizen of the Earth in Taiwan)’ 이사로 활동 중이며 ‘타이완환경행동네트워크(TEAN, Taiwan Environmental Action Network)’의 설립자 중 한 명이다. 이들은 국내에서 번역 출간된 (메이데이 펴냄)의 공동 저자다.
인터뷰는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인 김명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연구원이 진행했다. 은 인터뷰를 테드 스미스, 웬링 투 순서로 두 차례에 나눠서 싣는다. (☞테드 스미스 인터뷰 : “전쟁하는 삼성·애플, ‘더러운’ 기업 대표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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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웬링 투 타이완 국립정치대학 교수. ⓒ프레시안 
김명희 : 우선 당신이 활동했던 ‘타이완환경행동네트워크(TEAN)’을 소개해 달라.
웬링 투 : 이 모임은 1998년에 시작되었는데, 당시 나는 미국에서 유학 중이었다. 기억하기로 그 해는 국제 해양 보호의 해였다. 당시 우리는 타이완 그룹이 국제 해양 보호 캠페인에 연계를 갖길 바랐다. 타이완은 섬나라이기 때문에 해양 문제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당시 타이완에는 이러한 국제 활동에 참여하려는 그룹이 없었다. 국제 활동을 하려면 영어가 필요한데 그게 쉽지 않고, 또 국내 단체들은 이미 많은 투쟁 때문에 매우 바쁜 상태였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다면 환경 이슈를 공부하고 있는 우리 학생 그룹이 참여하자’ 이렇게 결심했다. 우리는 함께 모여서 공동 학습을 하고 이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김명희 : 그렇다면 유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시작했다는 것인가?
웬링 투 : 맞다. 우리는 언어에서 유리함이 있었으니까. 우리는 국내 그룹과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자고 생각했다. 우리는 우선 미국에 환경 그룹으로 등록하고, 국제회의에 참여해서 타이완의 투쟁을 소개했다. 동시에 지속 가능성에 대한 국제적 동향을 국내로 되가져가는 미션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이러한 캠페인에서 일종의 지렛대 역할을 하길 원했다.
김명희 : 그렇다면 당시 국내 운동 단체들과 이미 연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뜻인가?
웬링 투 : 나는 대학생 시절부터 환경, 아니 그보다는 폭넓은 사회 운동에 참여해 왔었다. 1987년은 타이완 역사에서 군사 지배가 종식된 일종의 결정적 시기였다. 권위주의 국가로부터 민주주의 국가로 이행하면서 그 즈음에 수많은 사회 운동들이 일어났다. 나도 학생 운동 리더그룹 중 한 명이었다. 그러한 시기에는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알게 되고 연계를 맺게 된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는 이미 학생 시절부터 많은 곳을 방문하고 함께 활동해 보았기 때문에, 나중에 유학을 가서도 연계가 가능했다.
김명희 : TEAN에는 주로 어떤 사람들이 참여했나?
웬링 투 : 처음에는 거의 대부분 학생들이었다. 그러한 상황은 2004~2005년이 지나면서 바뀌었다. 많은 학생들이 학업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왔고, 그들 중 많은 이들이 교수가 되거나 시민 단체 활동가가 되었다. 타이완으로 돌아와서는 우리의 미션과 경험을 현실에 옮길 필요가 있었다.
이건 다른 이야기지만, 타이완에서 일단 교수가 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일이다. 사람들은 사회 참여와 교수로서의 연구를 병행하기 위해 일종의 투쟁을 하고 있다. (웃음) 어쨌든, TEAN은 이후로 계속 진화를 거듭했고, 작년에 ‘Mercy on the Earth’와 합병하여 ‘지구공민기금회(CET)’라는 재단을 출범시켰다.
이 두 조직은 동일한 이상을 가지고 있었고, 사회·환경 운동에 헌신해왔었다. 우리는 조직을 좀 더 강하고 전문적으로 만들고 싶었다. 또한 이러한 운동에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더 나은 근로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김명희 : 이러한 환경, 노동, 건강 문제에 대한 타이완 학계의 반응은 어떠한가? 한국의 경우, 이러한 문제가 정치적이고 비과학적이라는 시각을 갖는 경우도 적지 않다.
웬링 투 : 타이완도 비슷하다. 일부는 희생자나 힘없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가진다. 우리가 타이완에서 논쟁하고 있는 것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분명한 증거, 확고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건강과 환경 문제에서 확고한 과학적 증거만을 요구하는 것은 의혹을 생산하고 불확실성을 조장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확실한 답을 내기란 거의 불가하다.
RCA 사례에서도 정부, 기업, 법정은 확실한 근거를 요구했다. 하지만 그 사건은 이미 오래 전에 발생한 일이 아닌가. 1970~80년대 근로 환경에 관한 자료를 오늘에 와서 재구축할 수는 없다. 또 근로 환경 말고도 암에 대한 다른 기여 요인들도 많을 수 있다. RCA 노동자들은 그들을 돕는 내 동료한테 물었다. 그 모든 과학적 근거를 얻으려면 도대체 우리가 얼마나 더 죽으면 되겠냐고….
역학의 경우, 어떤 방식으로든 환자가 죽어야만 숫자가 헤아려진다. 하지만 사람은 실험실의 쥐가 아니다. 심지어 실험실에서 쥐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라도 그 결과를 확실하게 재연하기는 어렵다.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실에서 다른 혼란 요인들을 보정한 가운데 인과성을 확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우리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이 아니지 않나. 건강과 환경 문제에 대해 100퍼센트 혹은 환벽한 과학적 근거를 요구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갈등하는 양측, 도움을 필요로 하는 측과 의심을 생산하는 측 사이에 불평등한 지위라는 문제가 존재한다. 기업들은 훨씬 많은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작업장에 대해서 잘 모르고 가끔 물질 안전 보건 자료로부터 일부 정보만을 얻을 뿐이다. 작업장에서 사용되는 화학 물질의 3분의 1 이상에 대해 여전히 건강 효과를 잘 모르지 않나. 심지어 기업들도 다 알지는 못한다.
우리는 이러한 종류의 안전 보건 연구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우리 정부, 우리 사회가 산업 기술에 투자하는 것과 비교해볼 때, 건강 분야에 대한 투자는 상대적으로 적다. 물론 항상 불균형은 있어왔지만, 현재는 그 정도가 지나친 수준이다. 그래서 사전 예방의 원칙에 대한 국제적 옹호가 중요하다. 안전하다는 다른 증거가 없다면, 사전 예방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연구비라는 자원 뿐 아니라 재판 과정에서도 자원의 불평등 문제가 부각된다. 기업은 유명한 대규모 로펌, 수많은 변호사들을 고용한다. 그들에게는 시간이 중요하다. 재판에 소요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돈이 많이 들고, 그들에게 더욱 유리해진다. 반대로 희생자를 위해 일하는 변호사들은 돈을 잘 벌지 못한다. 그들은 매우 스트레스를 받는다. 희생자를 위해서 많은 일을 해야 하지만, 보상은 매우 작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주 과학 산업 단지 투쟁에 참여했던 변호사는 행정 업무를 보조해줄 인력이 없어서 일과를 마치고 나서 그 많은 서류들을 본인이 직접 복사한다고 했다. 나는 이번 방문에서 배운 한국의 사례들을 타이완 동료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들은 영감을 받을 것이다.
김명희 : 타이완의 대표적인 전자 산업 건강피해 사례인 RCA 사건을 간략히 소개해 달라.
웬링 투 : 미국 기업 RCA는 1970년대에 처음으로 타이완에 진출했다. 그들은 당시 매우 유명한 기업이었고, 양질의 노동력, 특히 당시로서는 고학력이었던 고등학교 졸업 여성 노동자들을 대거 채용했다. 노동자들은 거기에서 일하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가졌다. 지금 팍스콘 노동자들이 그런 것처럼. RCA는 노동자들을 위한 모든 종류의 편의 시설들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엄격한 환경 규제가 없었고, 사람들도 환경오염 문제에 대해 잘 몰랐다. 기업은 화학 폐기물을 우물에 버렸다. 당시 노동자들은 지하수를 마셨고, 관리자들은 생수를 사 마셨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그곳 노동자와 주민들 사이에서 대규모 암 발병 문제가 불거졌다.
나는 그들을 지원하면서 다양한 증언을 들었다. 노동자들은 당시에 참새들이 공장 안으로 날아 들어오면 기절해 버리곤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그 때에는 그것이 그저 신기한 이야깃거리였다는 것이다. 참새들이 왜 저럴까? 노동자들은 나중에서야 이 문제를 이해하게 되었다. 오염된 공기가 문제였던 것이다.
문제는 RCA 노동자들이 엄청난 환경 변화의 와중에 있었다는 것이다. 작업 환경은 매우 빠르게 변해서 더 이상 과거의 작업 환경이 존재하지 않고 또 많은 이들이 결혼 후 회사를 떠났다. 당시의 노동자들이나 지역 주민들을 추적하기가 매우 어렵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 문제가 더 어려운데, 행정 자료가 남성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결혼을 한 여성들의 이름을 추적하기란 매우 어렵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RCA에 대한 소송 사건이 미국에서 진행 중인데, 진짜 곤란한 것은 현재 RCA라는 기업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톰슨과 GE에 합병된 것이다. 우리가 도대체 누굴 상대로 싸워야 하나? 물론 타이완에 있는 RCA 자산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상호 인수 합병은 첨단 기술 산업에서 매우 흔한 일이다. 많은 유명 기업들이 어느 날 갑자기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이제 우리는 RCA뿐 아니라 정부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1970~80년대에 이를 통제할 강력한 환경법이 없었다는 것 때문이다. 아마도 아시아 지역이 모두 비슷한 문제에 직면해있을 것이다.
김명희 : 학회에서 언급한 폐기물 무단 방류 사건은 최근의 사례인가?
웬링 투 : 2002년에 일어났던 일이다. 아주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 회사는 독성 폐기물 처리 회사로, 정부가 발행한 면허도 가지고 있었다. 매우 유독한 독성 물질 처리라 면허를 가진 업체들이 얼마 되지 않는다.
김명희 : 규제가 상대적으로 허술했던 과거가 아니라 그렇게 최근에 발생한 문제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우연한 사고도 아니지 않나?
웬링 투 : 맞다. 이 사건 때문에 가우숑 지역 주민들이 이틀 동안 물을 마실 수 없었다. 이 기업은 그 후에도 다른 물질들을 강 지류에 방류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잘 몰랐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별로 살지 않는 상류로 가져다 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이 신주 과학 산업 단지와 연루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당시에 알아차리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회사가 신주 과학 산업 단지에 속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회사는 단지 내 기업들의 80퍼센트와 화학 폐기물 처리 계약을 맺고 있었다. 이걸 다 이야기하자면 매우 긴데, 어쨌든, 이 회사가 생겨난 이래 신주 과학 산업 단지의 폐기물들은 어디로도 갈 수 있게 되었다.
정부는 폐기물 처리 문제를 고민하면서, 처음에 해안가 산업 단지 저장고를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담아두기에는 양이 너무 많았다. 다음에 생각해낸 것이 시멘트 공장이었다. 정부는 이 화학 물질을 연료로 쓰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걸 타이완 동쪽에 위치한 이란 지역의 시멘트 회사로 보내기로 했다. 그러나 그곳 사람들이 이것이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반대했다.
그래서 정부는 신주 과학 산업 단지 내에 소각로를 지으려고 했다. 그건 사실 좋은 생각이다. 폐기물을 만들었으니 그걸 스스로 처리하는 게 합당하지 않나. 그들은 단지 중앙에 소각로를 지었다. 하지만 500미터에서 1킬로미터 반경에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8개의 학교가 위치해 있다.
단지 주변 사람들은 대개 지식이 있었다. 두 개의 명문 대학인 칭화 대학과 자오퉁 대학 교수들도 그 동네에 많이 살았고, 소각로 반대 운동에 결합했다. 정부는 이 소각로 규모가 작기 때문에 환경영향평가가 필요 없다고 이야기했다. 폐기물 처리 과정에서 나온 슬러지만 처리하면 되고, 유기 화학물은 연료로 쓰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그것이 쓰레기가 아니라 연료이며 재활용되는 것이라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 주변에 살던 교수들은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다시 저항했다. 2~3년 후 이 프로젝트는 결국 중단되었다. 소각로는 건설되었지만 결코 작동하지 못한 것이다. 이는 심지어 2000년대에도 정부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운동은 과학 산업 단지 확장 프로젝트에도 영향을 미쳤다. 끊임없는 확장 요구에 제동을 걸게 된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기업들은 더 많은 땅과 공장을 요구하면서 중부 지역으로 확장하려고 했다. 그들은 항상 이야기한다.
‘봐라, 한국 정부가 삼성을 얼마나 지원하고 있는지. 경쟁력을 갖추는데 우리 정부는 효율적이지 않다. 환경 규제와 장벽이 너무 많다. 그래서 공장 건설이 지연되고, 이제 더 이상 예전만큼 이윤을 확보할 수 없다. 이렇게 계속 우리를 지원하지 않으면 다른 나라로 떠나겠다.’
비용이 낮고 환경 규제가 적을수록 기업의 활동은 쉬워진다. 하지만 타이완에서 그런 낮은 비용으로 사업을 하기란 불가능하다. 노동 비용과 환경 규제 비용 때문이다. 비용을 낮추려면 이제 그 비용을 어디론가 ‘외부화’해야 한다. 결국 사회의 나머지 사람들에게.
김명희 : 이는 약간 다른 이야기다. 타이에서 홍수 문제가 심각한데, 잘 알려져 있듯 타이는 전 세계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생산의 중심기지이다. 홍수로 인한 독성 화학 물질 유출 문제는 없는 건가? 별도의 대비책이 있는지 알고 있나?
웬링 투 : 나도 모른다. 홍수에 대한 소식은 듣고 있지만 독성 물질 관리에 관한 소식은 들어본 바 없다. 전체 산업 지구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오랫동안 물에 잠겼으니 아마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사례를 보자. 지난 지진 이후 동북부 산업 지구에 관한 뉴스가 보도된 적이 있다. 지진과 쓰나미 때문에 독성 물질들이 유출되었다고. 특히 땅이 갈라지면서 지하수 오염이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었다. 그에 비해 타이의 경우에는 그 어떤 뉴스도 없다는 게 사실 놀라웠다.
김명희 : IT 관련 뉴스들은 HDD 공급 혼란 문제를 걱정하고 있다.
웬링 투 : 맞다. 전자 산업 공급 체인에서 타이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공급 문제를 걱정하지 독성 화학 물질 걱정은 하지 않는다. 타이완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1997년에 신주 과학 산업 단지에서 화재 사고가 난 적이 있다. 이는 사람들이 첨단 산업의 문제를 처음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주요 언론들은 이 회사가 화재로 생산에 차질이 생겨 경쟁에서 뒤쳐질 수 있다는 문제만을 지적했다. 그들은 독성 화학 물질 문제를 알지도 못했고 드러내지도 않았다. 우리가 2000년에 수행한 조사 자료를 보면, 소방관이 단지 안에 들어갔다가 정신을 잃은 적도 있다. 당시 소방대장이 사건 일주일 후 화재 현장에 들어갔다가, 심지어 1주일 후였는데도 쓰러진 것이다.
신주 과학 산업 단지 안에는 기업들이 자체 소방팀 내 응급 화학 물질 처리반을 운영하고 있다. 나머지 소방대원들은 화학 물질에 대해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고, 그 일을 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지금은 타이에서 아무 소식도 들리지 않지만, 향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지금이야 홍수 그 자체와의 싸움이 중요하지만 이후 복구와 청소 문제가 얼마나 엄청날지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김명희 : 한국과 타이완은 국제 전자 산업에서 이중적 지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RCA 사건처럼 피해자이기도 하고, 다른 측면에서는 폭스콘처럼 가해자 위치에 서 있기도 하다. 한국에 주고 싶은 교훈이나 혹은 한국으로부터 배우고 싶은 것이라면 어떤 것이 있나?
웬링 투 : 우리는 비슷한 경로를 걸어왔고, 역사에서도 유사점이 많다. 한편으로는 오늘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자이기도 하다. 우리는 건강과 환경 문제에 대한 경험들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나는 지난 며칠 동안 많은 것을 배웠다. 당신들이 수집한 정보, 연구자들이 공장에 들어가 확인한 정보 같은 것은 여전히 타이완에서 불가능한 것들이다. 법정 투쟁 또한 배울 게 많았다. 이 문제와 관련한 사회적 논의를 촉발하고, 학계 전문가들로부터 의견서를 받고….
우리가 좀 더 환경 이슈에 집중되어 있다면, 한국에서는 이것이 좀 덜한 것 같다. 왜 이런 종류의 문제가 한국엔 더 적을까? 한국 기업들의 환경 책임이 좀 더 강해서인지, 아니면 지역 사회가 전혀 몰라서인지, 혹은 자신들이 경험하고 있는 문제가 산업과 연관되어 있는 줄을 몰라서인지…. 우리의 경험은 한국 시민들로 하여금 그러한 환경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또 기업과 정부가 환경 문제에 책임이 있음을 생각해보도록 만들 것이다.
이는 일종의 지식 노동이며, 이러한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양쪽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공유정옥을 통해 한국 사례를 타이완에 알려주고 싶다. 우리는 더 나은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이 길이 옳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건강과 환경 보건, 지역 사회의 보호, 이 모든 것이 경제적인 것보다 훨씬 중요하지 않나. 우리는 좀 더 단결하고, 이러한 메시지를 다른 분야에 있는 이들에게 전파해야 한다. 특히 타이완의 법조계에 한국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이 일을 옳은 것이니 정부와 기업의 뒤를 지원하는 활동을 더 이상 하지 말라고 말이다.
한국의 근거들이 타이완의 투쟁에 도움이 될 수 있고, 또 타이완의 연구와 투쟁들이 한국에서 활용되고 학습될 수 있다. 그런 방식으로 연계를 구축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환경 운동, 인권 그룹, 환경 연구자들을 서로를 알게 되는 계기도 되고.
타이완과의 약간 차이라면, 우리는 환경공학자, 보건학 연구자, 법률 전문가들이 모여서 하는 학제 활동이 활발하다. 현재는 사회학, 철학, 공공 정책 등 다른 다양한 분야로 더욱 확장하고 있다. 이와 달리 한국에서는 믿기 어려울 만큼 많은 의사들이 이러한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타이완에서는 이런 의사가 10명만 있으면 충분할 것 같다. 우리는 한국의 경험을 토대로 타이완 의사들을 더 모을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한국은 환경 공학 등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을 더 모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어쨌든 우리는 동일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한국의 학회에서 논의된 모든 것들-노동자 건강 영향에 대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고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우리도 환경 문제에서 동일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하나는 근로 환경이고 하나는 지역 사회 환경에 관한 이슈이지만 결국은 동일하다.
우리는 서로 협력하고 국제 캠페인으로 조직할 필요가 있다. 국제적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국제캠페인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미 시장은 글로벌 체인이 되지 않았나. 중국은 벌써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고, 인도와 타이에서도 또 다른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한국과 타이완은 일정한 책임이 있다. 그러한 문제들을 다른 나라로 수출했기 때문이다.
이는 한 두 나라가 아니라 전체 글로벌 시장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자본은 쉽게 이동하며 어느 장소에서든 더러운 일을 계속하고, 사람들은 이를 유연한 생산 네트워크라고 부른다. 이제 어느 한 특정 회사가 책임이 있다고 말하기 어렵게 되었다.
기업들은 현명하다. 많은 경제학 교과서들도 이러한 유연성을 찬양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한 종류의 유연성이 어떻게 지역 사회에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우리도 기업들만큼 현명하고 똑똑해져야 한다. 그러한 국제 시스템 안에서 그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우리는 이 문제를 일국이 아니라 국제 시스템 안에서 보고 국제 체계로 공조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