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을 하청 주고, 사고 나면 ‘나몰라라'”
[기고] 하청 노동자 덕에 기업하기 좋은 나라, 우리나라
정해명 노동건강연대 정책위원? 공인노무사
철도 선로를 고치는 노동자는 왜 죽어가나
지난 9일 인천 공항철도 계양역에서 철로 보수작업을 하던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5명이 열차에 치여 유명을 달리했다. 사망한 노동자들이 소속된 코레일테크의 원청인 코레일 공항철도는 사고가 나자 곧바로 사망한 노동자들이 작업실시 전에 거쳐야 하는 선로진입승인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며, 노동자와 코레일테크의 과실로 몰아가고 있다. 경찰 역시 하청업체 관련자들과 기관사를 구속하겠다고 한다.
이번 참사를 보면서 바로 떠오르는 사건이 있다. 최악의 철도 산재사고라 일컬어지는 2003년 2월의 신태인역 철도사고가 그것이다. 2003년 2월 15일 정읍시 신태인역 부근 호남선전철화사업 야간 선로보수공사 중에 공사구간의 하도급업체인 신성산업공사 소속 노동자 8명이 호남선 열차에 치여 7명이 숨지고, 1명이 큰 부상을 입었다. 당시에도 사고가 나자 경찰은 급히 하청 작업반장과 철도역 관계자를 구속하였으며, 언론은 안전 불감증이 부른 인재라 했지만 바로 잊혔다.
2003년 신태인역 열차사고와 이번 인천 공항철도사고는 여러 면에서 비슷하다. 우선 사고발생시간이 열차운행이 적은 심야시간대였고, 사고발생시기가 2월(신태인역 사고)과 12월(공항철도사고)로 날씨가 추운 동절기로 작업자들의 움직임이 불편했던 점도 비슷하다. 작업자들이 전부 사상을 당한 것 또한 비슷하다.
사고를 당한 노동자들은 모두 철도청이나 공항철도 등 발주처나 원청 소속이 아니고 하청업체 소속이다. 그리고 선로보수작업에 반드시 배치해야 할 열차감시원이 배치되지 않았고, 열차 운전자는 작업사실을 통보받지 못하였다.
▲ 지난 9일 0시 31분 코레일 공항철도 계양역에서 인천공항 방향으로 1.3km 떨어진 선로 위에서 동결방지 작업을 하던 노동자 5명이 열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9일 오전 사고현장에서 경찰이 유류품 등 사고 증거물을 수가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사고 역시 원청(도급업체)인 코레일 공항철도는 ‘협력업체 측에서 상황실에 보고도 없이 무단으로 선로에 들어갔다’고 주장하며 ‘작업자의 단순과실’로 몰아가려 하고 있다. 2003년 최악의 선로 산재사고가 발생했을 때 철도청은 ‘철로 보선작업 승인시간을 지키지 않고 하청업체에서 이른 시간에 작업에 투입했다’며 그 책임을 하청업체에 돌렸다.
철도청의 철도공사 전환 이후 선로유지보수 업무는 급격하게 외주화되었다. 기존의 철도청(철도공사) 소속의 노동자가 선로의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게 아니라 선로유지보수 업무를 도급받은 하청업체에서 이를 관리한다. 하청업체는 상대적으로 적은 인력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으며, 보수작업을 하는 시간에 오직 열차를 감시하는 감시원을 세워둘 인력이 부족하다. 또한 열차의 운행을 담당하는 원청(또는 발주처)과의 보고체계도 문제가 있음이 앞에서의 사건에서도 드러났다.
사고가 발생하면 철도공사나 공항철도는 도급인, 원청, 발주처라는 ‘갑’의 신분으로 책임을 하청업체, 수급인에게 떠안기고 회피한다.
▲ 주요 선로 보수공사 사고일지(뉴스검색) ⓒ정해명
※ 2000년대 들어 주요 선로보수공사 중 발생한 사고에서 사만자들의 소속은 외주·하청업체로 바뀌고, 열차 감시원은 배치되지 않은 사례가 많음을 알 수 있다.
전봇대 올라가는 전기원 노동자는 한전 직원일까
급격한 외주화가 사고를 부르는 것은 철도의 선로유지보수업무만이 아니다. 전력공급에 필요한 배전설비의 설치·보수 또한 한국전력이 아닌 영세 전기공사업체에서 맡고 있다. 한국전력이 배전설비의 설치, 보수, 운영에 대한 공사를 발주하면, 이를 수주한 전기공사업체들이 전기원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배전공사현장에 투입하는 것이다. 전봇대에 올라가 아슬아슬하게 작업하는 노동자들을 보면 당연히 한전을 떠올리지만 사실 한국전력은 그들의 안전을 지켜주지 않는 것이다.
전기원 노동자들은 한국전력이 생산한 전력의 공급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나, 대부분 영세한 전기공사업체에 소속되어 상용 또는 일용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들 전기공사업체들은 대부분 소규모이고 영세하여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갖추기 어렵고, 사고를 막기 위한 사전 조치들을 취할 여력이 없다. 결국 안전관리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한국전력이 도급인, 원청, 발주처라는 서류 뒤에 숨어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음으로써, 전기원 노동자들의 감전사가 해마다 증가하고 이들이 한국전력에 대화를 요구하는 상황이 되었다.
IMF사태 이후 급격히 늘어난 외주화의 광풍 속에서 기존의 원청, 도급업체가 지던 안전에 대한 책임을 힘없는 하도급업체의 비정규직, 간접고용 노동자에게 떠넘기고 있다. 철도나 전력과 같이 발주대상에 대한 장소적·물리적 통제권을 쥐고 있는 발주처에 안전의 책임을 요구해야 하는 이유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인 이유가 있다
주요 산재 사망사고에 대한 처벌실태를 살펴보면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지난 7월, 등록금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대학생을 포함한 노동자 4명이 사망하여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이마트 냉매가스 교체작업 사고에서 이마트는 법적으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원청업체에게 안전책임을 지우는 대상사업에 유통서비스업, 도소매업이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산업구조가 2차산업에서 3차산업 중심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현실에서 3차산업 원청사업주의 책임을 물을 수 없도록 법 조항이 막고 있다. 원하청 관계가 있고 다양한 비정규 고용형태에서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데 말이다.
사고 직후 노동건강연대는 이마트를 고발했다. 각종 사소한 안전규칙 위반을 적발한 노동부의 노력 덕분에 이마트 법인 100만 원 벌금, 사고가 난 이마트 탄현지점장 100만 원 벌금을 부과 받았다. 2008년 촛불시위 참가시민이 도로교통방해죄와 집시법 위반으로 200만 원 벌금을 받았다고 하는데, 노동자 4명의 생명을 앗아간 장소의 주인도 200만 원 벌금을 받았다.
통계와 판례를 분석해보면 원하청 구조 아래서 일어난 하청노동자들의 사망사고에 대한 처벌은 300만 원 이하의 벌금이거나, 정식재판을 청구할 경우 무죄로 확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의 생명 하나를 앗아가도 벌금 기백만 원이면 그만인데 대기업이든 공기업이든 효율과 합리에 반기를 들지 않고서야 어느 누가 일하는 이들의 안전을 챙기겠는가. 더군다나 가난한 노동자들이 끊임없이 하청, 외주업체로 흘러들고 있어 인력 걱정도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