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이는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주간연속 2교대 투쟁을 계기로 폭발(?)한 측면이 있지만, 몇 년 전 현대자동차 노동자들도 주간연속 2교대를 가지고 파업을 벌인 적이 있다. 정부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10년 9월 30일에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장시간근로 관행 개선과 근로문화 선진화를 위한 노사정 합의문’을 발표하며, 2020년까지 연평균 근로시간을 1,800시간 대로 단축해서 고용 창출 기반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올해부터는 5인 이상 사업장 모두에서 주 40시간제와 주 5일 근무제가 실시된다.
바야흐로 노동시간의 길이와 노동시간의 배치, 모두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비표준적 노동시간 : 해가 진 이후부터 해뜨기 전까지
이미 유럽을 중심으로 노동시간의 건강 영향에 대한 논의는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까지 논쟁의 주제는 노동시간의 절대적 길이와 상대적 밀도에 대한 것이며, 이를 고려한 배치 형태가 관심을 끌고 있다. 노동시간의 길이 연장은 ‘외적 연장 (extensification)’이라는 용어로 나타내기도 하며, 같은 노동시간 안에서 업무의 밀도가 높아지는 것을 ‘내적 연장(intensification)’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여기에 교대제 같은 노동시간의 배치 문제까지 포함되면서 노동시간을 둘러싼 다양한 의제들이 형성되고 있다.
현재 OECD 국가 중 최장 노동시간을 기록하고 전 국민이 24시간 불야성 사회에 익숙한 한국 사회에서 장시간 노동, 교대노동, 야간노동을 대해 적절한 언어로 정의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교대 노동의 형태와 빈도 같은 노동시간의 배치와 분할근무, 변형근로제의 도입으로 인해 매우 다양한 형태로 노동시간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하루 8시간, 해가 떠 있는 오전 7시에서 오후 7시 사이에 일하는 것을 ‘표준적’ 노동시간이라고 보고 이를 벗어나는 모든 형태의 노동시간을 ‘비표준적’ 노동시간이라 정의해 사용하고자 한다.
노동시간 단축의 의미
역사적으로 생산성 향상을 목표로 하는 자본의 일차적 수단은 노동시간의 연장, 생산설비의 24시간 가동이었다. 따라서 노동시간 단축투쟁은 항상 노자 간에 첨예한 접점을 형성하며 이루어지곤 했다. 그러나 노동시간 단축 투쟁의 양상은 전 세계적으로 다르다. 20세기 초 혁명적 고양기에 이루어진 투쟁들은 실질적인 노동시간 단축을 가져온 반면,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오히려 자본의 반격으로 인해 실질적인 노동시간 단축을 달성하지 못하거나 성과가 미미한 채로 생산성과 통제가 향상되는 결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1848년 프랑스 혁명 당시 12시간 노동법이 제정되었고, 1917년 러시아 혁명과 잇따른 유럽의 혁명적 투쟁은 8시간 노동법 쟁취로 이어졌다. 1935년 프랑스에서는 좌파가 내각을 장악하면서 주 40시간 노동법이 통과되었다. 이러한 시기 노동시간 규제는 전 산업과 기업에서 일제히 실시되면서 사회적 영향을 미쳤다. 반면, 장기간의 끈질긴 싸움에 의해 개선을 쟁취해 가는 경우, 노동시간 규제는 하나의 산업부문으로 확대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한편으로 노동시간의 개선은 쟁취하지만 다른 노동조건은 개악을 강요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미국과 영국에서의 노동시간 단축이 이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노동유연화와 임금유연화, 비표준적 노동에 대한 자발적 동조
한국은 점차적인 노동시간 단축이 이루어진 경우에 해당한다. 더구나 노동시간 단축은 고용불안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공세 속에서 생산성 향상과 저임금 시급제 구조를 안착시키고 노동자 착취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일자리를 나누자고 했지만 정규직 충원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임금보전을 위해서는 잔업과 특근을 통해 여전히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을 해야만 생활이 유지되는 구조 속에서 물량에 목숨 걸고 일할 수밖에 없다.
1996년에 정리해고제가 도입되면서 한국 사회에서 ‘평생직장’ 믿음은 깨졌다. 세계 경제의 호황과 불황에 따라 민감하게 생산을 조정할 수 있는 생산의 유연화가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되었다. 정규직이라 해도 회사가 살아남아야 자신의 일자리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경험을 한 노동자들은 벌 수 있을 때 벌자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회사의 물량이 자신의 목숨줄을 쥐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러다 보니 회사가 요구하는 수준의 물량을 맞추기 위해 연장근무와 특근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자발적 동조’를 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변화는 작업조직의 유연화, 자본의 흐름에 맞춘 노동시간 유연화를 통해 비표준적 노동시간을 다양한 산업 영역에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비표준적 노동시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미국 국립직업안전보건연구원은 2004년에 장시간 노동의 건강영향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여기에서는 장시간 노동과 관련한 노동시간의 연장을 교대근무 같은 근무 일정의 다양화와 노동일 증가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공히 노동자에게 질병과 재해의 위험을 높이며, 노동의 질과 임금에 영향을 준다. 또한 이러한 노동시간은 가족 구성원의 돌봄, 가족 관계의 질, 가족 소득, 가사 노동 부담에도 영향을 준다. 뿐만 아니라 사업주에게도 생산성, 질, 질병과 재해로 인한 비용 증가를 초래할 수 있으며, 전체 공동체 차원에서도 사고와 질병으로 인한 비용을 상승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 보고서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장시간 노동이 노동자 개인, 가족, 공동체에 악영향을 미치고, 사업주에게도 영향을 주며 이는 사회적인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고 했다.
그림3. “아빠는 언제 우리랑 외식해?”
현장 노동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영향은 좀 더 구체적이다. 24시간 노동하는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가족으로부터 소외되고 일 밖에는 모르는 사람으로 변해간다. 젊은 시절의 꿈과 희망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고 말이다. 15년 넘게 연간 2,500-3,000 시간을 일 해온 현대자동차의 한 노동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쉬는 날 되면 쉴 줄도 모르고, 놀러갈 줄도 모르고, 어디에 가야 맛있는 곳이 있는지 안 가보니까 모르지요. 있을 때 열심히 해서 조금이라도 벌어놓자. 그러다 보니 어느새 청춘이 다 지나가고 돌이켜 보면 벌써 40~50세, 정년까지는 많이 남았지만 그것도 잠깐이거든요. 나중에 좋은 날이 오면 즐겁게 재미있게 살겠지 그랬는데 그날이 없네요. 항상 부족하고 힘들고 살아가는 게 너무 재미없이 살아가요. 매일 특근, 잔업, 야간근무 이렇게 살다보니 언제 봄이 오는지 언제 여름이 가는지 몰라요.”
이렇게 일을 해왔건만 그들의 삶은 하루살이에 불과하다. 시간당 임금이 정해지고 일한 시간만큼 임금을 받는 시간제 임금체계에서 그들의 삶은 불안하다. 잔업이나 특근을 못하면 현재 받는 임금의 절반도 못 받는 노동자들이 그들이다.
“그러니까 우리 애가 중학생인데 과외를 하거든요. 만약에 특근을 줄이면 과외를 못 받아요. 이게 임금 인상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인 임금, 지출 이거를 줄여줘야만 어느 정도 임금이 감해도 생활이 가능하죠.”
이렇게 노동시간은 노동자의 삶의 전부를 좌지우지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현재의 임금체계에서 노동시간은 수입과 직결되어 있으며, 가족 및 자신이 속해있는 공동체 성원과의 관계, 자아 존중감과 정체성, 그리고 노동자의 건강에 영향을 준다. 자신의 시간에 대한 주도권을 본인이 가지고 있지 못한다면, 삶은 항상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
비표준적 노동시간과 노동시장의 문제
한편 노동시간 단축은 불안정한 노동시장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단초가 될 수 있다.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하는 고용형태별 근로시간 실태조사에 따르면 2009년 정규직의 월 평균 근무시간이 195.7 시간인데 비해 비정규직의 월평균 노동시간은 167.4 시간으로 훨씬 짧다. 그러나 비정규직을 세부 형태에 따라 다시 살펴보면 파견/용역 노동자의 월 평균 노동시간은 무려 206.7 시간으로 정규직에 비해서도 월등히 길다. 기간제 노동자와 한시 노동자의 경우에도 각각 월 평균 노동시간이 189.3 시간과 193.4 시간이나 된다.
즉, 비정규직의 짧은 노동시간은 일일 노동자와 단시간 노동자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러한 고용형태 이외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정규직과 비슷하거나 더 길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임금노동자가 아닌 자영업자의 자료까지 포함한다면, 아마도 한국에서 노동시간이 가장 긴 사람들은 영세 자영업자일 것이다. 실업과 반실업의 불안정성 속에서, 그나마 돈을 버는 것이 가능할 때라면 기꺼이 장시간 노동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이는 노동시간의 단축 문제가 결코 해결하기 쉬운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실제로 OECD 국가들 중 노동시간이 짧다고 알려진 유럽의 국가들은 법정 노동시간이 짧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시간제 노동자의 비중이 높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건강을 중심으로 한 노동시간의 개선
따라서 교대제 개선처럼 노동시간 배치 방식만의 변화를 통해 한국의 노동시간을 혁신적으로 줄이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그 해결의 방향이 노동자의 건강과 삶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라면 이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이를테면, 노동시간의 건강영향이 일직선의 양-반응 관계가 아니라 U자 모양이라는 주장도 있다. 즉 노동시간이 너무 짧으면 노동시간이 긴 것만큼이나 건강에 악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표준 노동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것은 불안정한 고용형태를 반영하는 것이고, 이는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여성의 경우에는 노동시간뿐 아니라 가사와 육아를 위한 시간을 포함하여 생활시간을 구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한국은 대부분의 업종에서 여성의 노동시간이 남성에 비해 짧다. 그러나 이들은 대개 가사노동과 육아라는 이중부담을 지고 있으며, 따라서 노동시간의 영향이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는 취약 집단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한 세기 넘게 지속된 노동자들의 요구
잠시 역사를 되짚어 보자. 한번쯤 들어보았을 ‘메이데이’의 유래인 시카고 헤이마켓 사건 당시 노동자들의 요구는 다름 아닌 ‘8시간 노동 쟁취’였다. 경찰은 당시 유혈 탄압을 자행했고, 이를 기억하고자 제2인터내셔널 창립대회는 매월 5월 1일을 메이데이로 기념하기로 했다. 당시 인터내셔널이 채택했던 연대 결의는 “기계를 멈추자,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투쟁을 조직하자,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하여 노동자의 권리 쟁취를 위해 동맹파업을 하자”는 세 가지였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일제 치하였던 1923년 5월 1일, 조선노동총연맹 주도 하에 2천여 명의 노동자가 모여 노동시간단축, 임금인상, 실업 방지를 주장하며 최초의 메이데이 행사를 치렀다. 일제시대, 한국 노동운동의 여명이었던 그 시기에도 원산총파업 같은 주요 파업에서의 요구사항은 ‘8시간 노동 쟁취’였다. 헤이마켓 사건 이후로 121년이 흐른 2011년에도 여전히 ‘8시간 노동’은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다. 심야노동을 하지 않고 싶다는 노동자들의 절규는 폭력 속에 묻혀버리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여전히 한국은 전체 노동자의 절반 정도가 야간에 노동을 하는 비정상적인 나라이다. 생물학적 영향을 고려한 야간노동의 기준인 ‘오전 7시 – 오후 6시 이외의 시간에 노동을 하는 경우’를 적용한다면 전 국민의 대부분이 야간노동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병원 간호사들과 발전소 노동자들은 3교대로 일터를 멈추지 않고 있으며, 청소 노동자들은 해도 뜨기 전인 새벽 4시에 일을 시작하며, 나이 지긋하신 아파트 경비 분들은 24시간 맞교대를 한다.
노동시간의 주체가 되기 위하여
노동시간은 빈곤, 임금, 일상의 불안정성, 가족관계와 공동체, 건강과 삶의 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장시간 노동을 줄이고 적정한 노동시간을 쟁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자의 건강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노동시간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독립적인 무엇이 아니다. 노동시간의 단축은 일자리의 질, 노동시간의 배치와 이에 대한 자율성, 시간압박, 노동강도의 문제를 반드시 함께 고려해야 한다. 또한 젠더 관점과 일-생활 균형의 측면에서의 고려도 필요하다. 진정한 의미를 가진, 제대로 된 노동시간 단축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렇기에, 노동하는 주체들이 주도권을 확보하고 본인의 시간을 필요에 따라 배치할 수 있는 시간의 주체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