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근무를 포함한 교대근무의 건강문제에 대해서 글을 써달란 요청을 받고 난감했다. 최근 이삼년간 상당한 과로에 시달리다 보니 몸도 피곤하지만 마음의 여유도 없어져 차분하게 글을 쓴다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못쓰겠다고 할 염치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평소에 건강진단업무를 하면서 느낀 이야기를 써도 괜찮다면 해보겠다고 했다. 원고를 쓰기 위해 지난 해 가을 어느 날 새벽에 썼던 일기를 다시 읽어보았다.   
그날 나는 아침 6시 버스를 탔는데 라디오에서 손석희 씨의 말투가 약간 비장하게 들려왔다. 계속 들어보니 그날이 10주념 기념일이라, 첫 회 방송의 오프닝 멘트를 다시 들려준 것이었다. 십년을 한결같이 새벽을 지켰다니, 대단하다 싶었다. 손석희 씨는 문화방송에서 자신을 아침 방송용으로 뽑았다는 설(說)이 있다고 전하면서, 아침 일찍 일어나기 싫어서 피하고 싶었지만 결국 돌아왔다고 고백했다. 아, 아무리 대단한 아나운서라 해도 생체리듬을 거역하는 일은 힘들구나 싶었다. 애청자와 함께 하는 생방송이었는데, 새벽 여섯시에 출퇴근을 한다는 어느 교대근무 노동자는 회사와 집을 오가는 40분 동안 이 방송이 늘 곁에 있어주어서 좋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 역시 컴컴한 새벽길에 집을 나서는 생활을 하기 때문에 깊은 공감이 갔다. 우리 출장검진팀이 병원을 출발하는 시간은 대략 아침 여섯 시 반에서 일곱 시 사이이다. 퇴근 시간은 병원 규정인 오후 다섯 시 반이다. 하루 열 시간 이상 일하는 날이 많아 육체적 피로가 누적된다. 아침에 가족들의 잠든 얼굴을 보면서 출근해서 저녁 시간엔 행여 다음 날 업무에 지장 있을까봐 일찌감치 잠자리에 드는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가족과 오붓한 시간을 지내거나 개인의 발전을 위한 시간을 가지기는 어렵다. 특히 어린 아이들을 돌보아야 하는 입장에 처한 사람들에겐 정신적인 부담도 심해지는 근무조건이다. 어떤 날은 새벽 네 시 반에 병원에서 출발해야 한다. 검진 대상 회사의 야간근무자들이 퇴근하면서 건강진단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장거리 출퇴근자인 나는 집에서 병원까지 갈 수 있는 마땅한 교통편이 없어 그 전날 병원 기숙사에서 잔다.
 
몇 년을 이렇게 생활하다보니 이 생활을 언제까지 할 것인가 궁시렁궁시렁거리는 횟수가 점점 늘었다. 그날 아침은 유독 피곤하고 출근하기 싫었는데, 새벽 배달된 우유를 보고 이걸 배달하는 이는 몇 시에 나왔을까 생각하면서 다들 그렇게 사는데 투덜대지 좀 말자 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출근하던 날, 나만 힘든 게 아니라 손석희도 힘들고 그 방송과 함께 했던 많은 이들이 그렇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고 약간의 위로를 받았다. 
하지만 이런 위로는 해결책은 아니리라. 출장건강진단을 하러 가서 처음 만나는 수검자들은 흔히 야간근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노동자들이다. 건강진단이고 뭐고 다 귀찮으니 얼른 집에 보내달라는 사람들의 피곤한 얼굴을 보면서 이건 아니다 싶다. 여건이 좀 나아서 검진하는 날을 여러 날로 잡아 주간근무자만 대상으로 건강진단을 실시하는 회사에서도 사정은 별로 다르지 않다. 우리 병원은 생산직 노동자에 대한 검진을 할 때 증상문진표를 작성하도록 하는데, 교대근무 사업장에선 많은 노동자들이 피로와 수면문제를 호소한다. 고혈압과 고지혈증과 같은 기초질환 유병율도 비교대근무 사업장에서 더 높고, 음주, 흡연, 운동부족과 같은 위험요인도 더 많기 마련이다. 야간 근무가 끝나고 나면 잠이 안와서 매일 술을 마시는 사람,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야간근무하고 나면 꼼짝도 하기 싫어서 할 수가 없다고 하는 사람, 피곤할 때 담배 한 대라도 피워야 좀 낫다는 사람들을 계속 만나면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다. 그렇게 일하고 난 다음날 새벽 네 시, 출장검진하러 떠나기 전 먹을거리를 사러 들른 편의점에서 역시 피곤한 얼굴로 돈을 받고 영수증을 건네는 청년의 얼굴을 보면 이건 정말이지 더더욱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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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8. 야간에 꼭 필요한 노동? 
생각해보면 보건의료산업이나 공공의 안전을 책임지는 부분, 장치의 특성상 24시간 가동을 할 수 밖에 없는 경우 등 불가피한 경우를 빼고는 오밤중이나 꼭두새벽에 일을 할 이유가 없다.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밤새워 일하는 것도, 일상생활용품을 사고 파느라 편의점이나 할인점에서 누군가 잠을 안 자고 손님을 맞이하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은 결코 아니다. 야간 노동으로 인한 건강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불필요한 야간 노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병원이나 발전소, 철강 산업 등 업무 특성상 야간근무를 그만둘 수 없는 곳들도 있다. 이런 경우 노동자의 건강에 무리가 되지 않게 야간 근무 일정을 짜고, 건강관리를 위한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국제 노동기구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야간근무자의 건강관리를 위해 사업주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침 형태로 제시하고 있다. 한국에도 충분하진 않지만 유사한 지침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지난 십 년 동안 수많은 사업장을 다니면서 검진을 하고 노동자 건강상담을 하고 사측 관리자들에게 보건관리업무에 대한 조언을 해온 나의 경험을 돌이켜 보면 한숨 나오는 일이 더 많다.    
 
올해는 야간근무로 인한 건강문제 예방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유난히 생각을 많이 했다. 내 몸과 마음도 여기 저기 아팠지만 집에서 잠만 자는 엄마를 보면서 아이들도 많이 힘들어했다. 더 못 버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며칠 전에 병원의 검진업무를 그만두었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검진업무를 그만둘 수 있었지만 내가 만났던 야간노동 관련 증상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은 그럴 수가 없다. 출장검진업무를 하면서 대부분의 사람이 아침 잠 푹 자고, 불가피하게 밤 근무 하는 사람들에겐 충분한 휴식이 주어지는 사회가 되어야 나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으니, 야간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하여 사회적 책임이 있는 전문가로서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그러려면 나 스스로의 장시간 노동은 여전히 피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장시간 노동은 야간 노동 못지않게 건강에 유해한 근무조건이다. 그래서 일단 당분간은 하루 8시간 이상은 일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원고 제출이 3일 늦었다. 노동건강연대에 일러스트 자원활동을 하시는 분이 나 때문에 휴일에도 일을 하시게 될까봐 죄송스럽다. 노건연 회원으로서 하기 미안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소식지 발간이 좀 늦어지더라도 비표준적 근무시간대에 일하지 않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도 그렇게 생각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