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희의 인권이야기] 도시의 염소들
하지만 한국의 도시에는 종이를 먹고 사는 염소들이 살고 있다.
약간 늦은 출근시간, 나는 지하철에서 그들을 만난다. 그들은 3~7호선 고속터미널 환승로 비좁은 에스컬레이터에 신문지와 폐지로 기우뚱거리는 작은 손수레를 재주 좋게 싣는다. 마르고 구부정한 등에는 또 그만한 배낭이 매달려 있다. 객차가 멈춰서면 그들은 바람을 일으키며 폐지 더미를 옮긴다. 차량 안에서는 빼곡하게 들어찬 승객들을 거센 몸놀림으로 헤쳐 나가며 선반 위의 신문지를 낚아챈다. 가끔씩은 같은 칸에서 동업자와 달갑지 않은 조우를 하기도 하고, 선반 위 마지막 한 부의 ‘메트로’를 두고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어쩌면, 진짜 염소보다 야성이 강해져야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다.
일을 하는 사무실에서도 이들을 만날 수 있다. 마대자루를 짊어진 할아버지 한 분이 사무실 문을 민다. “폐지 있어요?” 택배를 받았거나 누군가 책상정리라도 한 날이면 운이 좋다. 먹잇감이 풍족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기 마련이다. 엘리베이터도 없이 3층까지 오르내리는 발걸음은, 수확이 있건 없건 무겁다. 그리고 이것도 경쟁이다. 어떤 날은 하루에도 여러 명이 문을 두드린다. “아까 다른 할아버지가 모두 가져가셨는데…….” 우리도 안타깝지만, 실망해서 돌아서는 그 발걸음만이야 하랴.
어쩌다 동방예의지국의 ‘어르신’들은 종이 먹는 염소가 되었을까?
작년 5월 조승수 의원실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OECD 평균 13.3%의 3.4배에 달하는 45.1%에 달한다. 한편으로 2010년 노인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9.4%로, OECD 국가 중 아이슬란드에 이어 두 번째다. 한국의 노인들은 웬만큼 산다는 나라들의 노인들 중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고, 또 가난하다. 그리고 노인들은 더 일하고 싶어 한다. 2008년 전국노인실태조사(이미진, 노인의 경제활동 실태와 정책과제)에 의하면 미취업노인의 32.2%가 일을 하고 싶어 했는데, 생계비 마련 (45.3%)과 용돈 필요(22.9%) 가 그 주된 이유였다.
노인들을 보호해줄 사회적 보호 장치는 너무 ‘후지다’. 60세 이상 인구 중 국민연금을 받는 이들은 세 명 중 한 명에 불과하고, 그나마 급여 수준은 매우 낮다. 노인의 70%에게 지급된다는 기초노령연금은 최고액이 겨우 월 9만원 남짓이다. 가난한 집의 자식이 갑자기 부자가 될 리도 만무하니, 자식들의 경제적 지원도 여의치 않다. 그나마 자식이 있다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격이나 빼앗기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리고 가난하고 나이든 이들이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어쩌면, 지하철에서, 도심의 빌딩가와 주택가를 누비며 폐지를 모으는 일은 도시생태계가 그들에게 마련해 준 ‘최적의’ 일자리일지도 모른다.
드라마에 나오는 노인들은 매일 대궐 같은 저택이나 그룹 회장실에 앉아 다 큰 자식들 혼사나 가로막고, 광고에 등장하는 노인들은 햇빛이 쏟아지는 거실 소파에 앉아 스마트 TV로 손주와 동영상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내가 일상에서 만나는 노인들은 그렇지가 않다. 마을버스 요금이 부담스러워 굳이 30분을 걸어가 지하철을 타는 우리 엄마만 봐도 그렇다. 노인들의 무임승차가 불가능한 버스 경로석은 항상 비어 있지만, 지하철은 노인들로 초만원이다.
기암괴석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르내리는 진짜 염소들은 종이를 먹지 않는다. 종이를 먹는 건 한국사회라는 위태로운 절벽의 노인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진짜 염소처럼 날렵하지 못하다. 또한 그들을 노리는 것은 늑대보다 사나운 자본주의라는 맹수다. 자연계의 누구도 염소를 천덕꾸러기로 생각하지 않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구매력 없는 노인은 복지재정만 축내는 그저 잉여일 뿐이다.
생각해본다. 노인들이 종이를 뜯어먹는 염소가 되고, 고철을 뜯어먹는 불가사리가 되는 사회를 과연 ‘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