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사고의 개요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일본열도 동북부 태평양 쪽에서 발생한 대지진은 큰 해일을 동반하면서 500 Km에 이른 해안부에 엄청난 타격을 가했다. 그 결과, 바닷가에 위치한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에서 가동 중이던 1호기부터 3호기, 그리고 정기 점검 중이라 운전이 중지 상태였던 4호기까지, 수소폭발에 의한 건물 파괴 내지 격납용기 파괴로 방사능을 핵발전소 밖으로 방출했다. 지진과 해일에 의해 원자로가 안정적으로 냉각되지 않으며 방사성물질을 외부로 유출한 이 사고는 두 달이 지난 지금도 호전되지 않고 있다.
도쿄전력이 운영하는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1호기가 가동을 시작한 것은 1970년 3월 26일이다. 후쿠시마 지역에서 ‘탈 핵발전소 운동’을 해 온 사람들은 올해 3월 26일을 기점으로 40년이 되는 1호기를 “폐로 (閉爐)” 하기 위해 “폐로 액션”이라는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본 정부가 올해 2월 7일 노후된 1호기를 검사한 후 운전 연장을 허가했기 때문이다. 폐로 캠페인을 전개하려 한 시점에 마침 지진에 의한 사고가 일어나, 운동을 준비한 사람들은 한 때 허탈 상태였다고 한다.
§ 핵발전소 사고 수습에 나선 사람들은 누구인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체르노빌 사고 규모와 같은 ‘레벨 7’로 규정되었다. 수소폭발이 잇따라 방사성물질을 방출한 후, 핵연료가 있는 압력용기와 사용 후 연료가 들어있는 풀(pool)을 냉각하기 위한 작업은 뉴스에도 자주 보도 되었다. 항공자위대 헬기에 의한 공중 살수나 육상자위대 특수차량에 의한 방수작업, 도쿄 소방청 소방차량에 의한 물 주입 등 ‘결사적인’ 작업이 강조되기도 했다.
또 지진 발생 시점부터 제동이 안 되는 원자로와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사고 후 두 달이 지난 5월 시점에서, 도쿄전력 사원 약 1천 명, 하청/플랜트 관계자 약 4천 명 등 총 5천여 명이 사고 수습에 노력하고 있다.
도쿄전력이 직접 출자하거나 지분 비중이 수위를 차지하는 기업들 중에는 전기설비, 전력기기, 변압기, 보수유지 관련 회사들이 포함된다. 전기설비 최대 업체인 ‘관전공’이라는 기업은 도쿄전력이 46.15% 주식을 보유한 최대 주주이다. 사고 현장에서 복구 작업 중 방사능 오염수에 피폭된 2명이 이 회사 직원이며, 1명은 이 회사 하청노동자였다 (최고 180 mSv 피폭).
또한 ‘원자로’를 만드는 업체가 있는데, 이들은 한국에도 잘 알려진 도시바, 히다치, 미쓰비시 등이다. 여기에 토건공사를 하는 종합건설회사, 플랜트 공사 업체, 원자로, 터빈, 펌프, 연료, 소재, 다양한 관련 부품 업체가 관여하고 있다. 이번 사고 처리에는 이들 관련 업체는 물론 거래가 있는 기업까지 동원되고 있다. 또 일용직 노동자들은 본인이 모르는 노동계약에 따라 처리 작업에 동원되기도 했다. 오사카 지역에서 ‘동북 지방 운전사’, ‘화력발전소’라는 구인공고를 보고 나섰다가 후쿠시마 제1발전소에서 일하게 된 노동자도 있다.
§ 핵발전소 노동자들의 안전보건 실태
일본에서 연간 방사선 피폭의 법적 한도는 50 mSv이며, 방사선 관리는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① 관리구역 설정
외부 방사선량률, 오염가능성에 따라 관리구역을 설정하고, 관리구역 내에는 허가된 사람 이외에 진입을 금지한다. 출입자는 개인 선량계 장비를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하며, 방사성물질의 경구 섭취를 방지하기 위해 오염 위험이 있는 장소에서 음식과 흡연이 금지되어 있다.
② 구역 관리
관리구역의 선량률, 오염 밀도에 따라 구역을 다시 구분하고, 노동자 진입에 합리적인 관리를 꾀하고 있다. 구역 구분은 관리구역에 진입하는 작업자가 보기 쉬운 장소에 게시하고 알려야 한다.
③ 작업 관리
선원 제거, 차단, 시간 단축, 거리를 두는 피폭 저감의 원칙에 따라 핵발전소 노동자 피폭이 저감되도록 작업을 관리한다.
④ 개인 선량 모니터링
개인 선량계에 의해 외부 피폭선량을 평가/기록해야 한다. 관리구역 진입 때마다 선량을 확인할 수 있는 경보기능이 장착된 개인 선량계를 사용해야 하며, 정기적으로 혹은 필요시 whole body counter (체내에 흡수된 핵종/량을 체외에서 직접 측정하는 장치) 측정을 시행하여 내부 피폭선량을 평가/기록해야 한다.
이처럼 관리구역을 정하고 구역별 오염 수준에 따라 피폭을 방호하면서 작업을 해야 하는데, 후쿠시마 사고 현장에서는 방사선량 측정도 없이 작업자를 투입하여 피폭된 사례가 있다. 방사능 오염수 피폭도 그 중 한 사례이다. 또 개인 선량계가 모자라 그룹에 한 개씩만 지급하고 작업을 하도록 했는데, 이러한 방식은 3월 31일까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었다. 내부 피폭을 측정하는 whole body counter의 경우, 제1발전소에 두 대가 있지만 주변 방사선량이 높아 실제로는 사용을 못 하고 있다.
표 1은 일본 전국 18개 핵발전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피폭선량을 요약한 것이다. 정규직은 각 전력회사의 정규직이고 기타는 관련 업체 노동자를 지칭한다. 전력회사 사원에 비해 관련 업체 노동자들의 피폭선량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후쿠시마 현장은 연간 20 mSv가 넘는 누적 선량으로 ‘피난 지역’으로 규정되었다. 2009년에 핵발전소 노동자 가운데 이 정도의 수준에 피폭된 사람은 없었다.
§ 핵발전소 노동자들의 산재 인정 실태
후생노동성은 올해 4월 27일 처음으로 핵발전소 노동자들 중 산재가 인정된 사례 수를 발표했다. 1976년 방사선에 의한 직업병 인정기준이 마련된 후 35년 동안 10명이 산재를 인정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 이전에는 백혈병과 급성 방사선증만 산재로 인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백혈병도 모두인정된 것은 아니었으며, 피부염, 재생불량성빈혈 같은 질환도 인정되지 않았다. 2004년에 다발성골수종과 악성림프종이 인정된 후, 2010년 후생노동성은 다발성골수종과 호지킨 림프종을 방사선에 의한 질환으로 열거했다.
표 2의 사례3, 시마하시 씨 사례를 살펴보자. 그는 중부전력(주)의 2차 하청회사에 취직하여 계측기기 교환작업에 종사했다. 그의 방사선 관리수첩을 보면 핵발전소 정기검사 시기에 선량 상승이 있었고, 입사 5년째부터 5 mSv를 초과 상승하여 87년에 최대 9.8 mSv를 기록했다.
방사선 종사자의 백혈병 산재 인정기준을 보면, ① 상당량의 피폭 (5 mSv×종사 연수), ② 피폭 시작 후 적어도 1년 넘는 기간에 거쳐 발병, ③ 골수성 백혈병 또는 림프성 백혈병으로 되어 있다. 시마하시 씨의 경우 인정기준 ①에 해당하는 누적피폭선량 5 mSv × 8년 10개월= 44 mSv을 넘어서는 50.63 mSv에 피폭되었다. 시마하시 씨는 1991년 11월, 29세 1개월의 삶을 마무리했다. 그해 연말, 시마하시 씨의 부모는 회사와 각서를 맺었다. 산재보상에 해당하는 금액(3천만 엔)을 받고, 일체의 이의 제기와 산재청구를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부모는 아들이 죽은 원인을 밝히기 위해 산재 신청을 했다.
시마하시 씨 사례가 산재로 인정된 것에 대해 중부전력은 “법정 연간 피폭한도 50 mSv 이하이며, (산재) 인정이 피폭과 질병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견해를 밝혔다. 하지만 시마하시 씨 어머니는 “아들과 같은 일로 병이 걸린 사람을 위해 전력회사는 노동조건을 개선해야 하는데 어떻게 질병과 일은 무관하다고 할 수 있냐?” 며 지금도 탈핵운동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
표 3은 90년대 후반 핵시설에 종사한 노동자 24만 4천명 가운데 생사가 확인된 피폭노동자 17만 5,939명의 누적선량 분포를 나타낸다. 5년 동안 50 mSv에 피폭된다면 산재 인정기준에 해당하는 것인데, 이 수준에 폭로된 노동자 수가 1만 1,551명에 이른다.
§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피폭된 노동자들
지난 3월의 사고에 따라 ‘원자력긴급사태선언’이 발표되었고, 정부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피폭선량 허용한도를 완화했다.
‘전리방사선 장해방지규칙’ 제7조에는 “긴급 작업에 종사하는 동안에 노동자가 받는 방사선량은 실효 선량 100 mSv를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이 규정을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 1990년 권고를 인용하며 바꾼 것이다. ICRP는 “중대 사고 시 사고 제어와 긴급 구조 작업에서 피폭은 500 mSv를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후생노동성은 이에 근거하여 허용가능 피폭선량을 250 mSv까지 높이는 방안을 ‘방사선심의회’에 제출했고, 타당하다는 답신을 받아 3월 14일부터 적용했다.
그러나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피폭의 수준 자체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고 후 2주가 지난 3월 24일에서야 노동자들이 개인 선량계도 없이 작업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 3월 22일까지 사고 발전소 내 시설 (면진중요동 免震重要棟)에서 작업한 노동자들에게 장비 지원 업무를 담당했던 여성노동자에서도 대량 피폭이 확인되었다. 이 50대 여성은 1월 1일부터 3월 22일까지 누적 피폭선량이 17.55 mSv를 기록했다. 개인 선량계 선량 (외부 피폭) 2.06 mSv, 면진중요동 외부 피폭 1.89 mSv, 내부 피폭 13.6 mSv가 그 내역이다. ‘전리방사선 장해방지규칙’은 여성의 피폭 한도를 3개월 5 mSv 이내로 규정하고 있다.
사고 대응 노동자의 피폭은 4월 27일 시점에서 200 mSv 이상이 2명, 100 mSv 이상 200 mSv 미만이 28명으로 확인되었다. 반면 내부 피폭에 대한 검사는 작업 종사자의 10% 정도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사고 수속까지 앞으로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현재 전국에서 작업자를 모집 중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투입해야 개인별 피폭량을 줄일 수 있는데, 과연 그렇게 많은 작업자를 모집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노동자 피폭을 감시하고 향후 건강관리를 지속적으로 하는 체제가 시급하게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