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8일 대전에서 전국의 노동조합과 노동자 건강권단체들이 모여 산재보험개혁 전략에 대한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노동건강연대는 산재보험을 진정한 의미의 사회보장제도로 바꾸기 위해 새 틀을 짜야 한다고 제안했다. 노동운동이 산재보험의 한계를 명확히 보고 노동자계급 전체와 통할 수 있는 사회보험제도로서 산재보험의 개혁안을 제시하자는 것이다. 토론회에 참석한 30여명의 활동가들은 공감을 표했고, 노동건강연대의 제안을 실천적으로 검토하기로 하였다. 발표내용을 정리하였다. |
기존의 산재보험 개혁투쟁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사회적 쟁점으로 형성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산재보험 개혁의 핵심이었던) ‘선보장 후평가’는 다치거나 아픈 노동자가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것인데, 비정규 소규모사업장 노동자를 포함하도록 산재보험 전면 확대를 위해 싸웠는데 현실 속에서 대중적 동력을 얻지 못했습니다.
노동운동 내에서도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되지 못했습니다. 노동조합이 자기과제로 가져갔는지에 대해서도 부정적이고요. 근본적으로는 산재보험이 전체 노동자의 이해나 전체 국민들의 사회보장 틀 속에서 접근된 것이 아니라 산재보험에 들어온 사람들의 판정과 재활문제에 초점을 두다보니 산재에 잡히지 않는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다친 노동자들인데도 백만 명이 건강보험으로 치료받았고 심지어 질병은 더 심할 것입니다.
기존 방식으로 산재보험 운동을 하기보다 범위를 넓혀 보편적 복지에 대한 사회보장 확대 투쟁이라는 정세적 측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의 건강보험개혁, 무상의료 투쟁에 이를 결합시켜 나가자는 것입니다.
몇 가지 문제의식을 말씀드리자면,
첫째, 현재 5대 사회보험 보장성 강화 이슈 속에서 노동자의 관점이 빠져 있습니다. 현재의 사회보장 체계 안에 빠져 있는 노동자들에게 힘을 쏟지 못했습니다.
둘째 기존 산재보험 개혁투쟁에 대한 평가입니다. 산재보험 투쟁과 안전보건 운동의 두 축으로 전개되어 왔는데 2005년 ‘선보장 후평가’를 슬로건으로 투쟁을 전개했고 제도권 내에도 이러한 문제의식이 어느 정도 전달되었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습니다. 산재보험을 제대로 된 사회보장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는 사용자책임 배상보험의 성격이 강합니다. 구조화된 산재은폐를 해결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중요한 초점인데 기존 대공장, 정규직 중심 운동으로는 아예 적용되지 않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문제가 부각되지 못하고 현재의 보장성을 강화하는 것에만 관심을 둔 측면이 있습니다.
기존의 사회보장 운동이 상당히 개량주의 혹은 전문가주의로 폄훼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로 인해 전체 운동, 특히 노동운동 내에서 (복지 담론이) 자리를 잡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산재보험을 노동조합의 현장투쟁으로 활용하는데 상당한 강점이 있으나 이 역시 한계가 있습니다. 현장을 넘어서 전체 노동자의 문제로 전화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요. 이러한 투쟁들이 산재보험 개혁투쟁과는 다소 거리가 있게 됩니다.
산재보험 틀을 놔둔 채 개혁해보자는 일부 흐름도 있습니다. 대개 전문가들의 주장인데 일부의 개선에 불과하고 노동부에 포섭되는 경향으로 나타납니다. 사회보장 강화 투쟁으로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산재보험 개혁을 대중적 투쟁동력으로 만들지 못했던 이유는, 산재 문제의 핵심 집단은 비정규,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인데 문제의 초점이 여기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안은 무엇일까요?
첫째, 보편적 사회보장으로 나아가다보면 산재보험 자체가 해체될 수도 있습니다. 일단 노동자가 다치거나 아프면 무상으로 치료와 재활, 복귀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제는 건강보험 보장성이 너무 취약해서 오히려 산재보험의 보장성을 약화시키는 문제가 있고, 휴업/상병 급여 문제가 대두됩니다. 기존의 노동자 복지를 더욱 약화시킬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그동안 쉽게 이런 이야기를 하지 못했으나, 현재 상황이 좀 달라진 것 아닌가 합니다. 과거 일부 진보세력들이 제기하던 무상의료 전략이 훨씬 대중화되어 심지어 민주당에서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정세가 그것입니다.
이러한 동력을 활용하여 무상의료를 패키지화하여 제기하는 전략 속에서 산재보험 개혁의 동력으로 전화시키자는 것입니다. 물론, 그래도 상병급여와 유족급여 등은 유지되어야 하며, ‘선보장 후평가’ 전술은 여전히 필요하지만 대중적 파급력이 약하기 때문에 무상의료 운동과 함께 갈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이야기하면 보험료 부담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데, 기업부담을 확대하는 전략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러한 논의 속에서 노동자 몰가치적인 현재의 복지 담론을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둘째, 현재 산재보험의 질병판정위원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조직 노동자들의 투쟁전략에 대해서입니다. 이 싸움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첫 번째 전략 속에서 배치되어야 합니다.
셋째, 산재보험 적용대상 확대 투쟁도 역시 첫 번째 맥락 속에 자리를 잡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직업병, 산재인지를 무슨 근거를 가지고 판단할 수 있나요? 과학적 잣대를 가지고 근로복지공단이 노동자들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가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요양급여는 산재와 건강보험을 통합하고 휴업급여와 상병수당을 산재보험에서 담당하는 식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한 판단을 의료기관이 해야 합니다. 건강보험에 청구할지 산재에 청구할지 판단해서 신청하도록 하면 됩니다. 기인성이 아닌 수행성으로, 관련되었다고 알려진 직업에 종사하기만 하면 그쪽에 신청하면 되는 거 아닐까요.
질병이 다요인설이기 때문에 하나의 원인으로 판단하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노동부에서는 이를 ‘후정산’이라고 했는데, 그게 아니라 근로복지공단의 영향력을 근원적으로 차단할 수 있도록 의료기관이 판단하도록 하는 게 핵심입니다.
노동자들이 신청하는 게 아니라 의료기관에서 이를 신청하게 되면 산재 신청했다고 노동자들이 불이익 당하는 문제도 없어집니다. 이러한 투쟁이 건강보험의 보장성도 강화시키고 요양과 휴업급여를 확대하는 데로 나아가고, 근로복지공단은 재활과 일자리 복귀를 강화하는 데에 집중해야 합니다.
민주당은 대중적 흐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겠지만, 총자본에 대한 이해를 받아들이기 때문에 상병급여를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건강보험 하나로’ 같은 운동은 총자본이라기보다 민간보험 문제를 건드린 것으로 보면 됩니다. 민간보험을 건드리지 않으면 건강보험 보장성, 사회보험 보장성 강화를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총자본에 대한 투쟁이 가려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이 각각 입장이 다른데, 그 속에서 총자본의 부담을 늘려가는 것은 중요합니다. 오히려 그 속에서 차별성도 부각시키며 총자본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필요해요.
당면 문제뿐 아니라, 산재보험의 질병판정위원회 해체투쟁을 넘어선 그 다음에 대한 논의를 함께 가져야 합니다. 대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전 국민의 이슈로 만들기 위한 도발적 의제차원에서 제기하는 것입니다. 과거 실패한 경험이 있고 중앙 리더십이 없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어떻게 하면 전국적, 사회적 의제로 만들 것이냐 장기적 대안을 고민해봅시다.
산재보험의 중장기 전망에서는 진입장벽을 제거하고 대상을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구조적 투쟁이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운동의 주체문제에서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가 전면에 나설 수 있는, 시민사회영역 제 정당 과 연대의 문제, 외연을 확대하자는 데도 공감대가 있습니다.
중장기를 보고, 총선, 대선 시기 계획을 세우기 위한 정책기획팀을 구성하여 논의를 깊이 있게 합시다. 지역과 소통하는 작업을 하고, 어느 시기에 전국적 모임에서 장기 계획을 풀어가 봅시다.
참조링크 : 2014년 산재보험 50년, 스웨덴처럼 바꾸고 빡 끝!
산재보험 개혁 방향과 정책 방안 http://laborhealth.or.kr/389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