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전태일, 전태일이 세상을 떠난 지, 아니 세상으로 온지 40년이 되었다…고 한다.

몇 주 전부터 사무실도 전태일 40주기를 맞아 의외로 – 전태일 40주기를 직접 준비하는 단체가 아니라는 의미에서 – 분주하였다.

일간지에서는 전태일 40주기를 맞아 오늘의 전태일을 찾겠다고 한다. 20대 초반의, 가난하고, 대학을 나오지 않았으며, 제조업(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운동에 관심이 있는 이를 찾아야 한다, 면서 기자가 전화를 했다. 얼마 전까지 공장에서 일했고, 노조의 열성 조합원이었던 청년이 떠올랐지만, 그는 올해 여름 대학생의 자리로 돌아갔다.  

기자는 하소연을 했다. “20대 초반 나이에 공장 다니는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노동건강연대 사무실이 있는 성수동만 보더라도 40대 남성노동자들이 젊은 축에 속하니 그럴 만도 하다.

그 신문사가 2010년의 청년 전태일을 찾았는지, 공장이 아닌 다른 현장에서 찾는 것으로 기획을 바꾸었지는 모르겠다. 생물학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공통점이 많은 이를 찾고 싶은 마음은 알 것 같지만, 40년의 시간차를 무시하는 것은 무모한 것 아닐까?

‘2010년의 전태일’들은 어디에 있을까? 아르바이트로 서비스 산업의 밑바닥을 떠받치고 있는 10대, 20대 노동자들이 가장 가깝지 않을까? 노동운동에 관심을 가질만한 기회나 정보가 그들에게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전자우편함에는 전태일 40주기를 맞아 노동단체 활동가들에게 묻는다며 설문지가 한 통 도착해있다. 

  

10월의 마지막 주 토요일에는 와 문화제가, 11월의 첫주 일요일에는 가, ‘전태일 40주기’ 수식어를 달고 시청광장에서 열렸다.

비정규노동자대회가 열린 늦가을의 저녁, 자리를 잡고 보니, 비슷한 파마머리에 같은 조끼를 입은 수십 명의 ‘아줌마’ 노동자들과 한데 앉아있다.

“뭐라고 하는 거야? 길어서 따라할 수가 없네.”

“진짜 사장이 고용해라 비정규직 철폐 투쟁 라고 하는데요.” 

“응 맞어 맞어 진짜 사장이 해야지, 중간에서 남 일한 거 빼먹는 것들, 아주 불쌍한 것들이야”  “어디서 일하세요?”

“청소, 지하철. 새벽 5시에 나와서 일하고, 여기 또 나왔더니 힘들어. 더는 못 앉아 있겠네.”

계속되는 집회발언과 사회원로 소개에 지쳐가던 아주머니는 엉덩이를 털며 일어선다. 내일이면 다시 ‘남 일한 거 빼먹는 불쌍한 것들’에게 잘리지 않기 위해 쓰레기통을 비우러 가시겠구나.

노동자대회에 앉아있다고 다 같은 노동자가 아니가 보다. 주먹을 치켜든다고 다 같은 조합원이 아닌가 보다. 구호가 길어서 따라하지 못하는 참가자가 유난히 많았던 집회가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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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7일 전국노동자대회 모습 – 깃발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경찰이 있다 (출처: 참세상)

   

 

일주일 후 다시 같은 자리에 와 있다. 깃발과 깃발 사이마다 같은 점퍼, 같은 머리띠를 두른 조합원들로 광장에는 이미 빈자리가 없었다. 깃발이 없고, 소속이 없으니 앉을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앉다. 지난 주 비정규직대회 때보다 뻘쭘하다. 헤매다가 빈틈을 찾아 무대가 보이는 곳에 앉았다. 어깨가 닿은 옆자리 여성노동자가 자꾸만 바라본다.

“관심 있어서 보려고 왔는데 앉을 데가 없네요.”

“예, 우리 조합원인가 해서…”  웃는다.

주최 측은 전태일의 이야기를 짧은 뮤지컬로 만들어 공연을 올렸다. 전태일이 남긴 일기 한 구절 한 구절은 그대로 노랫말이 되어도 너무 아름다웠다. 그가 품은 세상이 얼마나 넓었는지, 그의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 다는 알 수가 없다.

그런데 공연은 70년대 평화시장의 어린 시다들과, 결단을 앞둔 전태일을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며칠 후면 시작될 부자나라들의 이벤트, G20 을 공격하려는 이날 집회의 목적이 잊혀지는 건 아닐까 걱정이 들었다.

뮤지컬에 이어진 동희오토 노동자의 절규는, 전태일을 찬양하는 일은 쉽지만 비정한 현실의 착취를 직시하고 몸을 던져 깨뜨리는 일은, 여전히 고통스러운 결단을 요구한다는 감상적 후기를 남기고야 말았다.

두 주 연속 꽤나 긴 집회를 쫓아 다니면서 몸도 피곤하지만 마음도 피곤했다. 전태일 버튼을 가방에 달고, 노동자들의 투쟁을 담은 사진집을 2만 5천원이나 주고 샀지만, 그 마음을 다는 모르기 때문이다. 6년을 싸워서 비정규직 이름을 털어버린 기륭노동자들의 그 서러움을 다는 모르고, 용역들에게 듣는 욕이 끔찍하게 싫지만 회사 앞 노숙농성을 포기할 수 없는 재능교육 조합원들의 분노를 다는 모르기 때문이다.    

전태일의 이름 뒤에 숨어서 연대를 말하는 것은 깃털만큼 가벼운 일인데, 얼마를 나누어야 연대라고 할 수 있을까? 가진 것 가운데 무엇을 버릴 수 있어야 연대라고 할 수 있을까?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