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없는 사람에게 ‘침대’ 주면 어디다 쓰라고?

[레이버투데이 2006-10-26 20:11]

“25일 발표된 정부의 특수고용직 대책안은 ‘독이 든 빵’이다.” 박대규 민주노총 특수고용대책위원장은 <매일노동뉴스>를 만나자마자 대뜸 이렇게 말했다. “당장 배고픈 사람이 밥이 뜸 들을 때까지 어떻게 기다리나? 빵 안에 독이 든 줄도 모르고 덥석 받아먹는 사람이 태반이고, 독이 든 줄 아는 사람들도 고민에 빠질 것이다.”

그는 “정부는 밥이 끓으려면 시간이 걸리니 ‘이거’라도 먹고 요기를 하라지만, 독빵 먹고 죽고 나면 다 된 밥이 무슨 소용인가?”라고 되물었다.

정부대책안은 ‘독 든 빵’

‘노사정대표자회의 특수고용직 실무회의’에 민주노총(노동계) 대표로 참석했던 박 위원장이 ‘독빵’이라는 극단적 비유까지 써가며 정부 대책안을 성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 위원장은 노동계 내에서도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가 공존하는 ‘산재보험 적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책안에는 사업주와 종사가자 산재보험료를 반분하게끔 돼 있다. 다만 정부가 봤을 때, 상대적으로 사용종속성이 강한 골프장 경기보조원의 경우 사업주가 보험료를 전액 부담토록 했다. 이전에 비해 개선된 게 맞다. 그러나….”

그동안 특수고용직들은 ‘근로자인지 사업자인지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산재보험 적용에서 제외돼 왔다.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가입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는 “사용종속성이 약한 특수고용직에 산재보험을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대해 박 위원장은 “근로자인지 사업자인지 구분하기 힘들다던 정부가, 종사자와 사업주로 명확히 구분해 놓고도, 근기법 상의 근로자개념 확대가 아닌 특례적용 방식을 택했다”며 “이런 것이 기만이 아니면 뭐가 기만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험모집인 “잔여수당 지급…노동자 요구사항 반영 안돼”

박 위원장의 이같은 성토에 대해 특수고용직 노조들 역시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수고용직노조 관계자들은 26일 오전 기자들과의 만남에서<사진> “25일 나온 정부안은 실효성을 기대하기 힘든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며 “집이 필요한 사람에게 침대부터 내준 꼴”이라고 주장했다.

고성진 전국보험모집인노조 위원장은 “우리들이 정부에 요구했던 노동3권은 ‘집’이요, 정부가 내놓은 경제법적 보호방안은 ‘침대’”라며 “공터에 침대만 놔준다고 잠이 오냐?”고 되물었다.

보험모집인들은 그동안 ‘해촉 시 잔여수당 지급’을 강하게 요구해 왔다. 보험모집인이 보험 하나를 소개해 10만원의 수수료가 떨어지면, 그 금액이 해당 월에 바로 입금되는 것이 아니라, 5천원씩 20개월로 나뉘어 지급된다. 따라서, 수당을 10개월치만 받은 상태에서 일을 그만두게 되면, 나머지 10개월치는 받을 수 없다.

“잔여수당이라고 표현하지만, 엄연히 노동의 댓가다. 노동자성이 인정되지 않으니 ‘실적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쉽게 해고되고, 돈도 못 받게 된다. 우리들은 죽어나지만, 보험회사는 손해 볼 일이 없다.”

학습지교사 “산재보험료 부담 피하기, 사측 편법 판칠 것”

‘위탁계약 시 사측에 200만원 상당 관리예치금 예탁’, ‘대납 강요’ 등에 반발해 지난 99년 설립된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당시 재능교육교사노조)의 이현숙 지부장은 “99년 노조를 만들면서 각종 불공정행위에 대한 시정조치와 학습지 표준약관 제정을 요구했고, 이때부터 공정거래법과 약관법의 적용을 받아왔다”며 “문제는, 이미 만들어진 제도가 전혀 작동하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산재보험 적용에서 나타날 수 있는 허점들을 지적하기도 했다. “99년 노조가 만들어진 후 ‘관리예치금 문제’를 제기하자, 사측은 ‘교사들의 선택’에 따르겠다며 편법을 동원했다. 예치금을 예탁한 교사에게는 수수료율을 1% 높여주고, 예탁하지 않은 교사의 수수료율은 1% 내렸다. 이번에 나온 산재보헙 적용 방안도 마찬가지다. ‘종사자가 제외를 신청할 경우 예외를 인정한다’고 돼 있기 때문에, 사측은 회사 운영비용에 손해가 나지 않는 방향으로 편법을 모색할 것이다.”

이 위원장은 또 학습지교사 대부분이 가임 여성인 점을 강조하며 “지난 5월 한명숙 국무총리 명의로 발표된 대책안에는 특수고용직 여성노동자들의 모성보호와, 성희롱 예방대책이 모함됐는데, 이번 안에는 그마저도 삭제됐다”고 비판했다.

골프장 “투쟁사업장 즉각 타결”…화물 “시행중인 내용 왜 섞어 넣나?”

‘상대적으로 사용종속성이 높아 산재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골프장 경기보조원들은 이번 대책안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골프장 경기보조원 출신인 이영화 서비스연맹 조직2국장은 “‘노동자’의 ‘노’자도 꺼내지 말라는 것”이라며 “당장 투쟁 중인 경기 보조원들에게 타격이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노동3권이 가로막힌 상태에 경기보조원 개인이 불공정 약관을 문제 삼을 수 있겠나?”라며 “부당한 문제를 제기한 후 해고 되더라도, 정부안에는 구제책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당장 노동자성 여부를 두고 1년 넘게 파업 중인 익산상떼힐CC 경기보조원 조합원들에게 피해가 갈 것”이라며 “정부가 끝내 노동자로 인정하지 못하겠다는데, 어느 사용자가 ‘노조’를 인정하고, ‘단협’을 체결하겠는가?”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런가 하면, “이미 시행중인 제도들을 넣어놓고 대책안이라고 발표를 하다니, 지금 누굴 바보로 아는 거냐?”며 황당해 하는 노동자들도 있다. 바로 화물운송노동자들이다. 실제 이번 대책안에는 지난 2003년 화물연대 파업에 따른 합의 사항인 ‘전용휴게소 확충’, 화물차 과잉공급을 억제하기 위해 2004년부터 시행 중인 ‘신규허가 금지’, 지난달부터 시행 중인 ‘명예과적단속원제도’ 등이 포함됐다.

이에 대해 화물연대는 “정부 발표는 화물노동자를 기만하고 무시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파업을 포함한 하반기 총력투쟁으로 맞설 것”이라고 밝혔다.

“특수고용 노동권 논의 6년, 후퇴 거듭”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6년 넘게 ‘노동3권 보장’을 외치는 동안, 정부는 ‘후퇴에 후퇴를 거듭한 안들을 만들어 왔다”는 비판도 나왔다. 권두섭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정부는 2000년 10월 ‘비정형근로자 대책방안’을 발표하며, ‘노조법 적용, 근기법 적용 검토’의 입장을 밝혔으나, 6년이 지난 현재 사용자들의 요구와 흡사한 경제법 적용안을 들고 나왔다”며 “노동부는 11월 공청회를 거쳐 노동권 문제를 논의한다지만, 경제법이 적용되는 순간 ‘노동자성’은 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박대규 특수고용대책위원장은 “이번 대책안 발표를 계기로, ‘경제법 적용 받는 자들은 노동자가 아닌 사용자’라는 법원 판결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그간 노조법 적용을 받아 활동해온 노조들에 엄청난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구은회 press79@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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