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업주들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인한 처벌을 우습게 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사업주들이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예방 조치를 성실히 이행하기보다는 위반 적발 시 벌금으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 현실에서 그게 훨씬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2008년 사망 등 중대 재해로 처벌받은 사업주 2,358명 중, 구속된 사람은 단 1명뿐이다. 모두 벌금형을 받거나 기소유예 또는 무혐의 처분됐다. 이런 상황에서 사업주가 산재 예방에 나서는 것을 바라기는 힘들다.

 

법이 사고에 대한 예방 능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법을 준수하는 것이 법을 어겨 처벌 받는 것보다 이득이 된다는 생각을 사업주가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위반 시에도 처벌 수준을 높이는 데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법적 억지력을 갖기가 어렵다는 문제가 존재한다. 물론 한국의 산업안전보건법 최고 형량은 낮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예방법으로 취급되어, 실제 법정에서는 형량이 낮게 구형되고 선고되는 경향이 존재한다. 특히 사고로 인한 사망 등 중대재해의 경우에는 사업주에게 과실치사죄를 적용할 수도 있지만, 규모가 큰 사업장의 사업주나 법인에게 이 죄를 적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망 등 중대재해의 발생은 안전보건의 중대한 위협이기 때문에, 서구 여러 나라에서도 이러한 법 체계상의 문제를 개혁하고자 보완을 시도하고 있다. 

 

한편, 사업주의 직업안전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법 위반 행위에 대한 높은 벌금, 고위 임원에 대한 구금형 같은 벌칙도 효과가 있지만, 법 위반으로 인한 기업 이미지 실추 유도도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들이 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경향을 반영하여 산재다발사업장 공포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나, 효과는 미흡한 실정이다. 따라서 사업주가 자발적으로 안전보건에 대한 예방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인센티브 강화와 더불어 사망 같은 중대재해나 반복적인 재해 등에 대해 현재보다 훨씬 강화된 처벌이 필요하며, 처벌의 형식도 다양화하여 안전보건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가칭) ‘기업살인법’ 형태의 특별법 제정

 

‘환경범죄의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의 입법례를 참조하여, 심각한 직업안전 사고에 대해서는 형사 처벌을 통해 법적 사고 예방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한다. 처벌 대상이 되는 재해는 미필적 고의로 분류될 수 있는 사망재해, 죄질이 나쁜 사망 재해, 반복적 사망 재해 등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미필적 고의로 분류될 수 있는 사망 재해는 다음과 같은 경우들이 해당할 것이다. 행정당국으로부터 시정조치를 받고도 시정조치를 취하지 않은 위험으로부터 노동자가 사망한 경우, 노동조합이나 노동자가 사업주에게 중대재해의 위험을 알리고 적절한 조치를 요구했으나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작업을 강행하다가 노동자가 사망한 경우, 사업주가 노동자에게 사전에 유해물질 정보와 위험성을 알려주지 않아 직업병에 이환되어 사망에 이른 경우 등이다. 죄질이 나쁜 사망 재해의 경우로는 사업주가 사전에 위험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아 재해가 발생한 경우, 사업주가 적절한 예방조치를 취하지 않아 재해가 발생한 경우, 위험을 인지하고도 적절한 예방조치를 취하지 않아 재해가 발생한 경우, 사업주가 위험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에게 알려주지 않아 재해가 발생한 경우 등이 포함될 수 있다. 반복적 사망 재해는 해당하는 유사한 부주의로 유사한 재해가 반복적으로 발생한 경우들을 포함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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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1. 영국의 기업살인법 도입에 관한 BBC 뉴스 기사 화면 (2006.7.21)

 

특별법은 양벌 규정을 통해 사업주와 행위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특별법에 의한 처벌은 산업안전보건법 같은 예방법에 의한 처벌이 아니라 ‘살인죄’에 버금하는 죄의 결과에 대한 처벌이므로 징벌적 성격을 띠도록 무겁게 처벌해야 한다. 심한 경우 고위 임원을 금고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하고, 벌금형의 경우에도 기업 규모에 따라 벌금액의 규모를 다르게 판시할 수 있도록 하여 실질적인 징벌이 되도록 한다.

 

 

직업안전 관련 법 위반 행위에 대한 처벌 방식의 다양화

 

직업안전보건법 및 관련 법률을 위반한 경우 자격박탈, 기업해산, 사회봉사 등 다양한 처벌 방식을 통하여 규제의 실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금고형으로 인한 자격박탈은 중범죄와 흉악범에 대해 선고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의 형벌이다. 금고형은 다른 보호 관리 형벌이 적절하지 않은 경우에 한해서만 선고된다. 자격박탈의 목적 중 하나는 개인에게서 자유를 박탈하여 범죄자가 적어도 감옥에 갇혀 있는 기간만큼은 범죄를 다시 저지르지 않도록 예방하는 목적도 있다. 기업을 금고형에 처할 수는 없기 때문에 자격상실이나 기업해산을 포함하는 대안적 형벌들이 제안되고 있다.
자격박탈은 기업으로 하여금 특정한 행위를 수행하는 것을 금지하거나 특정한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다. 간략히 말하면 자격박탈은 사업의 제약을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기업해산과 비교했을 때는 낮은 형벌이다. 몇 가지 종류의 자격박탈 유형이 있는데, 특정 기간 동안 거래를 못하게 하는 방법, 특정 지역에서 거래를 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 특정한 면허를 취소하는 방법, 정부기관과의 계약 같은 특정한 계약의 신청 권리를 박탈하는 것 등이다.

자격박탈은 법률위반기업이 특정한 거래를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법률을 잘 준수하는 기업에 비해 경쟁력을 낮춘다는 장점이 있다. 어떤 연구자는 자연인이 일으키는 범죄에서 자격박탈의 형벌이 존재한다면, 기업도 유사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자격박탈의 형벌을 선고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극단적인 경우, 자격박탈을 통해 거래를 하지 못함으로써 결국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지기 때문에 기업해산을 유발할 수 있다. 또 다른 비판은 자격박탈이 형벌의 목적 중 제지에만 초점을 두기 때문에 복권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며, 그 결과 근로자나 주주들에게 처벌의 넘침 (spillover)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격발탁과 달리 등록취소는 기업해산을 가리키는 또 다른 용어라 할 수 있다. 이는 사회의 규칙을 심각하게 위반한 기업을 사회로부터 제거하는데 쓰이는 형벌로써, 자격박탈보다 처벌의 정도가 심한 형벌이다. 기업해산은 실제로 기업을 해산시킴으로써 달성할 수도 있고, 기업의 모든 자산을 매각해야 될 정도로 많은 벌금형을 선고함으로써 간접적으로 해산시킬 수도 있다. 기업을 해산할 때는 벌칙의 넘침 현상이 상당한 수준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위반의 정도가 매우 심한 경우에만 적용해야 한다.

기업해산의 문제점은 해산된 기업의 소유자가 이름만 바꾸는 ‘불사조’ 기업을 다시 세울 수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자격상실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호주에서 기업이 과실치사혐의로 기소되어 유죄를 선고받은 유일한 사건인 덴보 회사 판례의 경우를 보자. 회사는 기소 시점에 이미 청산 절차에 들어가 있었고 채권자들로부터 2백만 달러의 부채를 안고 있었다. 유죄선고에 따라 벌금형을 받기 6개월 전 이미 회사는 파산상태였기 때문에 12만 달러의 벌금도 내지 않았다. 그렇지만 선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 이름만 바꾼 채 같은 위치에서 비슷한 업무를 수행하는 불사조 기업을 세운 사례가 있다.

기업해산은 대기업보다는 소규모기업에 더 적합한 형벌이라는 주장이 있다. 소규모기업은 기업해산으로 인해 기업구성원, 주주, 근로자 등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기업의 경우, 기업해산으로 인한 넘침 현상의 정도가 매우 크기 때문에 범죄에 적절한 형벌이 아닐 수 있다. 회사의 청산은 회사 자산을 팔아 부채를 정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채권자 등 제3자를 보호할 수 있다. 또한 청산한 회사를 모기업이나 또는 관심 있는 외부기업이 사들임으로써 제3자를 보호할 수도 있다. 물론 이 경우 형벌의 목적 중 일부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한 회사 청산에 대한 위협은 경영진들에게는 경영권방어의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효과적인 측면이 있다.

 

사회봉사명령은 범죄자가 관찰자나 감독자의 지시 하에 자발적으로 지역사회의 프로젝트에 참가할 것을 지시하는 것으로, 대개의 경우 범죄자의 전문분야에 적합한 분야에서 참가가 이루어진다. 범죄자의 전문분야와 관련된 사회봉사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면 기업을 처벌하는 형벌로는 효과가 매우 좋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명령을 받은 기업은 자신의 전문가들 또는 노동력을 지역사회 프로젝트에 공급해야하며, 그러한 과정에서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속죄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이러한 형벌의 효과는 전통적인 자격박탈이나 벌금형 등의 형벌에서는 이루기 어려운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사회봉사명령은 저지른 범죄에 대해 속죄한다는 의미가 있다. 사회봉사명령의 또 다른 긍정적인 특징은 형벌에 대한 비용이 적게 들고 원치 않는 넘침 현상의 발생 가능성을 줄여주며, 복구, 보상, 중재 효과를 거두는 데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검찰청과 법원 내 노동안전보건 범죄를 다루는 부서 설치

 

현재 기업주들이 저지르고 있는 노동자 살인 행위를 멈추게 하기 위해서는, 살인 기업주를 형사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법률의 제정,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행위에 대한 창조적이고 효과적인 벌칙 부과 등과 더불어 검찰 및 법원의 개혁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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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2. 독일의 연방 노동법원 누리집 (http://www.bundesarbeitsgericht.de/index.htm)

 

 

산재를 일으켜 노동자를 죽인 기업주 혹은 기업의 고위 임원이 자신들의 범죄로 인해 징역형을 선고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사실은 이미 지적했다. 현재의 법 체계 안에서도 형법 상 업무상 과실치사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로 이들을 얼마든지 감옥에 보낼 수 있는 여지는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들이 감옥에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에 대해 검찰과 법원은 법 체계 상의 구조적 문제점들을 거론하며 자신들의 탓이 아니라고 한다.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는 기업주나 기업 임원이 처벌의 대상이 되기 어려우며,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는 중형을 선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가 있기에 우리는 ‘(가칭) 기업살인법’ 같은 새로운 법률의 제정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검찰과 법원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검찰과 법원이 기업의 범죄에 대해 ‘솜방망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기업이 범하는 환경 범죄, 식품안전 범죄 등은 말할 것도 없고, 부패와 관련된 경제 범죄까지도 검찰과 법원은 중죄로 다루지 않고 ‘경범죄’로 다룬다. 기업 범죄를 수사할 때 기업주나 고위 임원을 구속 수사하는 경우는 드물고, 유죄 판결을 내더라도 집행 유예를 하기 일쑤다. 노동 관련 문제에 대한 판결에 비하면 그나마 이러한 경우들은 나은 편이다. 검찰과 법원은 기업의 노동 관련 범죄에 대해서는 아예 눈을 감아버린다. 사업주의 부당 노동 행위에 대해 구속 수사를 하는 경우는 아예 없고, 산재사망 사고에 대해 구속 수사를 한 경우는 2008년 한 해 동안 단 1건에 불과했다.

 

이들의 친(親)기업적 의식을 보여주는 예는 너무나 많다. 그 중 하나만 살펴보자. 2001년에 노동부는 한 사업장에서 세 번 연속해서 산재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검찰에 사업주 구속을 요청하는 소위 ‘삼진아웃제’를 도입했다. 그리고 바로 그 해 대우조선에서 6월까지 벌써 6명의 노동자들이 산재로 사망했고, 노동부는 검찰에 대우조선의 지원본부장을 구속 수사해달라고 요청하였다. 하지만 이는 기각되었다. 검찰은 이렇게 이유를 설명했다. “최근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 조선업이 활기를 찾고 있고, 대우조선이 지역 및 국가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적지 않은 점을 감안하여 구속 수사를 하지 않았다.” 검찰이 언제부터 이렇게 경제를 걱정했는지 모를 일이다. 경제 운운하며 기업의 범죄 행위를 눈감아주는 것은 행정부나 사법부가 결코 다르지 않다.

 

검찰과 법원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태생적으로 이들은 이 사회 지배계급의 이익을 대변한다. 검찰이 권력의 시녀로, 법원이 우리 사회 보수층 최후의 보루로 기능해 온 것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들에게 과도한 기대를 하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따라서 이들이 산재사망을 일으킨 기업의 범죄 행위를 중죄로 다루도록 강제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대오각성을 촉구하기보다는 기업살인법 제정 같은 구조적 변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그러한 구조적 변화의 일부로써, 현재 검찰 공안부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범죄를 담당하는 구조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본다. 검찰 내에서도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공안부가 이러한 사건을 담당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더구나 환경 범죄, 산업안전보건 범죄 등은 수사에서 특별한 지식이 필요한 만큼, 이러한 범죄를 전담하는 검찰청 내 독립적인 부서의 설립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법원의 경우, 노동법원을 별도로 설립하여 이러한 사건들에 대한 심리가 이루어지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