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3월,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는 제3차 산업재해예방 5개년 계획 (이하 ‘산재예방계획’)을 수립했다. 이 계획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노동부가 추진할 예정인 산재예방 정책의 청사진에 해당한다. 한국의 산업안전보건법 제8조는 노동부 장관으로 하여금 산재예방에 관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노동부는 1991년부터 산재예방계획을 세워왔다. 이 글에서는 그 주요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 제2차 산재예방계획 성과에 대한 노동부의 자체 평가

 

지난 2005~2009년 2차 산재예방계획을 돌아보며, 노동부는 사망재해 다발업종?영세사업장 등 산재취약부문에 행정 역량을 집중하여 산재예방체계구축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밝혔다. 주요 성과로 울산, 여수, 천안, 안산 등 대규모 공업단지가 위치한 지역에 ‘중대산업사고예방센터’를 설치?운영함으로써 중대산업사고 발생이 감소했으며, 50인 미만 영세 소규모 사업장에 대해 작업환경개선을 위한 재정 및 기술지원 (클린사업)을 통해 재해 감소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또한 사업장 무재해운동, 안전점검의 날, 강조주간행사 등의 안전문화 활동 추진도 성과로 제시했다.

이와 더불어 한계점도 지적했는데, 첫째, 산업안전보건 정책수립 및 의사결정과정에 정부 이외 산업계, 지역, 민간의 참여기회가 부족하였던 점을 들었다. 둘째,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제도 등 자율적 예방 활동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제도운영이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기업 내 안전보건 관리자의 위상 강화 추진이 미흡했으며, 셋째, 재정?기술지원, 교육 지도?점검 등 산재예방 사업이 체계적으로 연계되지 못해 사업효율성이 저하된 점을 지적했다.

또한 산재예방계획에서는 정책적, 법?제도적, 재정적 측면에 대한 노동부의 상황 인식이 드러나 있다. 정책적 측면에서, 산업구조와 고용형태 변화 등에 따라 재해원인 및 유형은 다양해지고 있으나 체계적인 대응은 미흡하다고 밝혔다. 전체 재해의 80%를 차지하는 50인 미만 영세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투자가 미흡하고, 제조?건설업 중심의 시설개선 위주의 기술지원만으로는 증가하는 서비스 산업 재해예방에 한계가 있다는 점, 특히 고령자?여성?외국인 근로자 등 취약계층근로자의 재해가 매년 증가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투자가 미미하다는 점을 밝혔다. 

법?제도적 측면에서는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범위, 책임주체, 규제방식 등에서 문제를 지적했다. 이를테면, 현 제도는 정규직 근로자 보호에 중점을 두고 있어 비정규직,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 취약취업계층에 대한 보호에 한계가 있으며, 다단계 도급 등 생산방식의 다양화로 대기업은 소규모 사업장에 산재위험을 전가하고 있으며, 형벌?과태료의 양형체계가 현실적으로 법 준수 강제장치로서의 기능이 미약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재정적 측면에서는 현재의 예산규모 및 재정지원 중심의 사업수행 방식으로는 정체된 재해율을 감소시키는 데 한계에 도달한 것으로 보고 있다. 1998년 이후 최근 10년간 산재예방 사업대상은 사업장 수를 기준으로 6.1배 늘어났으나, 근로자 1인당 산재예방비용으로 환산할 때 사업 예산은 오히려 0.7배 감소했고, 예방인력은 같은 기간 1.2배 증가에 그쳤다고 밝혔다.

 

 

§ 제3차 산재예방계획 기본방향 및 추진전략 소개

 

노동부는 앞서 언급한 정책적, 법?제도적 측면, 재정적 측면에서의 상황 인식에 근거하여, 산재예방계획의 기본방향을 정책목표, 지원대상, 전달체계의 세 부분으로 구분하여 제시했다.  정책목표 부분에서는 법?제도의 개선, 보완 등 기술적 접근방식 위주에서 사업주와 근로자의 인식을 전환하는 문화적 관점으로 확대하여 사업주와 근로자의 참여에 바탕을 둔 자율적 예방시스템 구축에 주력하겠다고 했다. 지원대상의 경우, 산재예방사업의 성과가 대기업, 정규직, 특정업종 등에 편중되지 않도록 50인 미만 영세소규모 사업장 등 산재취약분야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기존의 중앙정부, 공공기관에 의한 하향식 정책 전달체계에서 탈피하여 지역?산업의 현장수요를 반영하기 위해 분권화?다양화시키고, 수요자 중심의 사업수행체계 구축을 통해 민간의 참여를 촉진할 수 있도록 전달체계를 개선하며, 정부의 역할도 직접공급과 규제 위주에서 전략수립, 정보제공, 인프라 구축 등 전략적 촉진자로 전환하겠다고 하였다.
이러한 방향에서 총 여섯 가지의 중점추진과제를 수립했는데, 그 첫째는 법?제도 기반 구축을 통한 자율적 산재예방활동 정착 과제이다. 여기에서는 위험성 평가 제도 정착을 위한 기반 구축, 위험성평가로의 전환을 위한 법체계 개편과 법집행의 실효성을 제고하는 방안이 들어있다. 위험성 평가 제도는 사업주에게 포괄적인 안전보건관리 책임을 부여하고 자율관리 성과를 중심으로 관리?감독하는 자율예방관리시스템 구축을 목표로 하며, 이의 도입을 위해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단일 법령체계를 모든 업종?위험요인에 공통으로 적용하는 기본 법령과 특정 업종?위험요인에만 적용하는 개별 법령 체계로의 전환을 검토 중이다. 또한, 법집행의 실효성 제고를 위해 이행강제금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시 형량을 고의?과실 여부에 따라 차등화하고, 반복적으로 법을 위반한 사업주에 대해서는 즉시 행정?사법처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두 번째 중점추진과제는 참여와 협력을 통한 서비스전달체계 다원화이다. 과거에는 노동부, 안전공단 등 공급자 중심 운영으로 시장수요가 제한적이었고, 민간의 전문성과 역량도 취약하다는 현실 인식 하에, 노동부와 안전공단 이외에 재해방지전문기관, NGO 등 시민단체, 학교와 지방자치단체가 참여하는 지역별 ‘지역안전보건지원 네트워크’를 구축?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이 협의체는 지역에 위치한 안전?보건 관련자들이 참여하는 참여형 안전 보건운동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외에 지역별로 특성에 맞는 산재예방사업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하도록 할 예정이며, 노사 공동 산업안전보건 협력체계 구축을 위해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수를 직장의 규모에 맞게 조정하도록 개선하고, 위험성평가제도의 도입과 정착을 위해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 대한 지원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세 번째 중점추진과제인 ‘특성화된 예방대책 추진을 통한 사업 실효성 제고’ 과제에서는 건설업, 제조업, 서비스업, 화학업 등 업종 특성에 맞게 재해예방에 대한 기술지원방식을 특성화하는 것과, 건설일용직?외국인?고령?여성 근로자 등 산재취약인력에 대한 지원을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 지원방안으로, 건설일용직 근로자는 채용 전 안전교육을 이수하도록 하고, 외국인 근로자는 특수 검진시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모국어로 된 특수검진결과와 기술자료를 배부할 계획이다. 고령 근로자는 신체적 특성을 감안한 작업공정 개선기법과 안전보건기준을 개발 및 보급하고, 여성 근로자에 대해서는 주요취업 작업의 안전보건 매뉴얼, 고객 상대 서비스업 종사자들에 대한 건강증진?관리 프로그램을 개발, 보급하는 방안이 포함되어 있다.

넷째, 선제적 질병예방 관리시스템 구축 분야에서는 발암물질 취급사업장을 노출수준, 취급근로자수, 직업병 발생현황 등에 따라 차등 관리하고,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 대해 특수건강검진, 작업환경측정 비용 지원을 확대하며, 자율 보건관리 체계 구축을 위해 보건관리자 자격기준을 강화하고, 보건관리자 선임대상 업종을 운수?도소매?건설 업종까지로 확대하겠다고 했다. 또한 석면 해체?제거 작업에 대한 관리와 지도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다섯 번째 중점 추진과제는 안전보건문화 확산을 통한 안전보건의식의 내재화?생활화이다. 여기에는 NGO, 노사 단체, 언론사, 업종별 직능 단체 등 관련 단체와 합동으로 캠페인을 수행하는 등 안전보건문화의 전국적 확산을 유도하고, 노사 공동으로 사업장별 안전보건문화 수준을 자체 평가할 수 있도록 ‘산업안전보건문화인증제’를 운영하며, 인증 사업장에는 시설개선을 위한 클린사업 우선지원 등 인센티브를 부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산업안전보건 행정역량 강화와 관련해서는 산업안전감독관의 전문화를 추진하고, 업무분장을 지역담당제에서 기능담당제로 전환하여 업무의 효율성을 높일 것이라고 했다. 산재통계의 경우, 산재 규모 파악 방법을 표본조사 방식으로 전환할 예정이라고 밝혔으며, 근로복지공단, 한국산업안전공단, 민간안전검사기관, 노동부 등에 분산되어 있는 사업장 안전 관련 정보를 통합정보관리 시스템을 통해 일원화시키고 이를 예방정책 수립의 기초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제3차 산재예방계획에 대한 비판적 검토

 

제3차 산업재해예방계획의 전반부에 언급되어 있는 정책적, 법 ? 제도적, 재정적 측면에 대한 노동부의 현실인식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그동안 제기된 직업안전보건정책의 한계점들에 대한 지적을 대부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영세 소규모 사업장의 문제, 고령자?여성?외국인 근로자 등 취약계층 노동자 문제, 정규직 노동자 보호에 중점을 둔 산업안전보건법의 문제, 다단계 도급 방식으로 대기업이 소규모 사업장에 산재위험을 전가하는 현실, 형벌?과태료의 양형체계가 법준수 강제장치로서의 기능이 미약하고, 안전보건 분야의 예산규모와 관련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 등,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는 현실 인식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점들에 대해 우리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야심차게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위험성 평가제도의 경우, 노사의 ‘자율’에 강조점이 찍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문제라 할 수 있다. 위험성 평가제도는 사업주에게 포괄적인 안전보건관리 책임을 부여하고, 자율예방관리시스템 구축을 목표로 하지만, 단지 위험성을 ‘평가’만 하고, 그에 대한 대책과 개선이 지속되지 않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를 강제할 수 있는 강력한 규제와 행정지도가 필수적이이다. 사업주가 ‘자율적’으로 위험성 평가제도를 시행하지는 않을 것임은 자명하다. 물론, 노동부는 사업주에게 안전보건정책을 강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행강제금 제도’와 ‘반복적으로 법을 위반하는 사업주에 대한 즉시 행정?사법 처리 방안’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행정처벌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그동안 여러 차례 문제제기가 되었으며, 그에 따라 산업안전보건법의 벌칙 조항 일부 개정 등의 대책이 뒤따랐다. 하지만 실제 처벌 수준이 미약하다는 문제 제기는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위험성 평가제도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서는 실제 위험한 작업이 벌어지고 있는 곳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참여가 필수적인데, 우리 사회에서는 이 또한 매우 취약하다. 유사한 성격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는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제도’와 각 직장마다 설치하도록 되어 있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위험성평가제도의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산재예방계획에 ‘명예산업안전감독관’과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의 권한 강화와 활성화를 위한 대책이 명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노동부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제를 인식하는 것과 현실적 대책을 수립하여 집행하는 것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위험성 평가제도가 연착륙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에 대한 노력을 집중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2010년 노동부 국정감사에서 강성천 의원은 사업주가 사업장의 위험요인을 자율적으로 찾아 개선하는 노동부 시범사업인 ‘위험요인 자기관리 시범사업’에 참여 중인 기업들이 그렇지 않은 기업들에 비해 산업재해자가 더 많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만일 위험성 평가제도가 사업주의 ‘자율’에만 집중하는 경우, 똑같은 상황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또 한 가지 지적해야 할 점은 안전보건문화운동의 모호함이다. 노동부의 계획서에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가 제시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안전보건문화’란 사업주가 기업 내 안전보건체계를 법 준수를 위한 수단으로 인식하는 것에서 벗어나, 효율적인 경영활동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는 적극적 인식을 갖고, 이에 따라 노동자도 안전수칙을 철저히 준수하려는 마음 자세와 안전보건체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기업에 안전보건문화가 효율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위험성 평가제도처럼 노동자의 적극적 참여를 보장할 수 있는 사업장내 체계와 이에 대한 사업주와 경영진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노동부의 산재예방계획에 제시된 안전보건문화운동과 인증제가 실질적인 대책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한 법률적?행정적 구속력을 갖출지는 미지수이다.

이외에도 지역별 산업안전보건 네트워크의 실효성과 관련된 문제가 있다. 이 네트워크에는 재해방지전문기관, NGO 등 시민단체, 학교와 지방자치단체까지 참여하며, 이 협의체를 통해 지역 내 참여형 안전 보건운동을 추진할 예정이다. 하지만 현재의 계획으로는 노동자 대표들의 참여 여부가 불분명하고, 협의체의 권한이 불분명하여 실효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또한, 취약근로자 대책의 세부사항을 보면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통역서비스 제공, 안전보건매뉴얼 제공, 안전보건교육 강화 등이 제시되고 있는데,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보다는 지원책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통역서비스의 경우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기본 자원의 부족이 분명하게 예상된다.

또한 여러 산업안전보건관련 기관들의 자료를 통합하여 관리할 예정인 통합정보관리제공 시스템의 경우, 본래의 목적과는 별도로 산재노동자들의 개인정보 누출과 이로 인한 피해의 우려를 자아낸다. 비윤리적이거나 불필요한 정보의 사용을 막기 위한 윤리위원회 등의 안전장치 확보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노동부의 제3차 산재예방계획의 주요 정책들을 소개하고, 한계와 우려되는 부분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돌이켜보건데, 노동부는 1991년부터 산재예방계획을 수립하여 그 동안 여러 가지 정책을 도입하고 추진해왔지만, 산업재해율은 1999년부터 현재까지 0.7%대에서 정체해 있다. 사고성 재해도 2003년 이후 연간 8만 명 수준에서 더 이상 줄어들지 않고 있다. 또한, 제3차 산재예방계획에도 언급되었듯, 국제 산재사망률을 비교해보면 한국은 10만명 당 21명으로, 멕시코 (10.0), 태국 (10.1), 러시아 (12.4)에 비해서도 높다. 현재의 상황은 그 동안의 산재예방계획들이 과연 실효성이 있었는지 의심케 만든다. 제3차 산재예방계획이 원래의 목적과 의도에 적합하도록 충실하게 진행되어, 계획 종료 시점인 2014년까지는 산재가 제발 큰 폭으로 감소하기를 바란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