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일, 햇수로는 5년 3개월이 조금 넘는다. 나는 직접고용을 쟁취한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이야기로 이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기륭전자는 서울디지털산업단지(옛 구로?가리봉공단)에서 GPS와 위성라디오를 생산하는 제조업체다. 2005년 당시 생산직 300여명 가운데 정규직은 고작 10여명에 불과했다. 250여명이 파견직이었고, 40여 명은 계약직이었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파견법’)에 의하면 제조업은 근로자파견이 금지된 업종이다. 기륭전자는 다른 제조업체들과 마찬가지로 250여명을 ‘불법’ 파견으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에 겨우 미치는 열악한 임금수준을 높이고자 노조를 만들었고, 회사는 해고로 응답했다. 노동부가 불법파견 판정을 내놓았지만 회사는 해고를 멈추지 않았다. 노조는 파업에 들어갔고, 회사는 직장폐쇄로 맞섰다. 이것이 기륭전자 아줌마 조합원들의 기나긴 투쟁의 시작이었다. 철야, 단식, 고공농성, 언론사 점거농성 등 안 해본 투쟁이 없었다. 그렇게 5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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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1. 지난 10월 15일, 기륭 단식농성장에 난입한 포크레인을 저지하는 김소연 분회장

                                                                                (출처: 참세상 2010/10/15자 기사)

 

 

§ 새로운 노무관리 방안으로 부상한 간접고용

 

1997년 IMF 구제금융 위기를 겪고 나서 한국의 기업들은 급속한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경영효율화라는 미명하에 인건비 부담을 대폭 축소하기 위한 해고가 대유행했다. 그렇게 줄인 인원은 아웃소싱, 외주화, 파견 등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간접고용이란 직접고용과 달리, 기업이 노동자를 직접 채용하지 않고 근로자공급, 파견, 위장도급 등의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간접고용은 사용자인 기업에게는 근로기준법상의 사용자 의무에서 자유롭게 해주며, 그 비용 역시 직접고용보다 저렴하다. 덤으로 노동조합 조직이 어렵다는 장점까지 있으니 두 마리, 아니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셈이고, 이는 노무관리의 새로운 대안으로 비춰졌다.
간접고용의 유형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근로자파견’과 ‘위장도급’이다.

‘근로자파견’이란 파견사업주가 근로자를 고용한 후 그 고용관계를 유지하면서, 근로자파견계약의 내용에 따라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을 받아 사용사업주를 위한 근로에 종사하게 하는 것으로 파견법에 의해 규율된다. ‘위장도급’이란 도급계약을 체결하여 수급인이 도급받은 업무의 수행을 위하여 자기가 고용하는 근로자를 도급인의 사업장에 투입하는 형식을 취하나, 실제로는 도급인이 해당 근로자를 직접 지휘ㆍ명령하면서 사용하여 직접고용 또는 근로자파견 또는 근로자공급에 해당하는 경우를 말한다.
급속하게 늘어나던 간접고용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한 것은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에서는 비정규직 노조가 만들어졌고, KTX 승무원들은 한국도시철도공사를 상대로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투쟁했으며, 기륭전자 여성 노동자들의 끈질긴 투쟁 등이 있었던 것이다.

 

 

§ 법원의 판단

 

간접고용은 계약의 명칭과 관계없이 그 실질이 직접고용관계 또는 근로자 파견관계로 판단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 간접고용에 대한 법원의 판결들을 잠깐 살펴보자.

 

? 현대미포조선 – 묵시적근로관계 인정 (대법원 2008. 7. 10. 선고 2005나75088 판결)
“원고용주에게 고용되어 제3자의 사업장에서 제3자의 업무에 종사하는 자를 제3자의 근로자라고 할 수 있으려면, 원고용주는 사업주로서의 독자성이 없거나 독립성을 결하여 제3자의 노무대행기관과 동일시 할 수 있는 등 그 존재가 형식적, 명목적인 것에 지나지 아니하고, 사실상 당해 피고용인은 제3자와 종속적인 관계에 있으며, 실질적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자도 제3자이고, 또 근로제공의 상대방도 제3자이어서 당해 피고용인과 제3자 간에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되어 있다고 평가될 수 있어야 한다.”

 

? 예스코 – 불법파견도 직접고용의무 적용 (대법원 2008. 9. 18. 선고 2007두22320 판결)
“불법파견, 적법파견이든 불문하고 파견근로자보호법 제6조 제3항의 직접고용간주 규정이 적용된다

 

? 현대자동차 – 사내하청 불법파견 인정 (대법원 2010. 7. 22. 선고 2008두4367 판결)
법원은 원청과 사내하청 사용자 중 누가 실질적 사용자인지 여부를 먼저 판단하였고,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의 경우 하청사용자를 사용자로 보되, 도급이 아닌 불법파견으로 판정하였다.
법원은 사내하청의 불법파견 여부에 대해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자동흐름방식의 생산라인에 투입되어 일하고 정규직 노동자들과 혼재하여 배치된 점, △원청회사의 생산시설 등을 사용하여 원청이 일괄하여 작성한 각종 작업지시서(작업표준 자료)에 의한 단순반복 업무를 하였고, 사내협력업체의 고유기술 자본 투입 없는 점, △현대자동차가 사내협력업체 근로자에 대한 일반적인 작업배치권과 변경결정권 가지고 작업량, 작업방법, 작업순서를 결정하였고, △노동시간, 휴게시간, 교대제, 작업속도 결정, 정규직 결원 시 사내협력업체로 대체하였고,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에 대한 근태상황, 인원현황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하였다.

 

이러한 판례의 법리는 파견법 제정 후 10여년이 지난 지금에야 하나씩 정리가 되고 있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원청 노동자들과 같은 라인에서 같은 일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더 낮은 급여와 불안정한 고용에 시달려 왔다. 자신들이 왜 차별받는지 명쾌히 알지도 못한 채 좌절과 체념, 이직을 반복했고, 마침내 노조를 만들어 투쟁하자 해고되었던 것이다.  

 

 

§ 법과 제도의 그늘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난지 석 달이 훌쩍 지났다. 불법파견이라도 2년이 경과한 노동자에 대해서는 현대자동차의 직접고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아직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직접고용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그 대신 지난 11월 2일, 기륭노동자들의 직접고용이 합의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5년 4개월을 투쟁한 결과 쟁취한 직접고용이다. 단기파견의 경우에는 고용의무조항도 무의미했던 법과 제도의 그늘을 기륭노동자들이 양지로 만든 것이다.
올해는 전태일 열사 40주기가 되는 해이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열사의 외침이 여전히 유효한 이 시대, 투쟁의 이유는 여전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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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2007년 6월, 현대차 불법파견 판정을 보도한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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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2010년 11월 12일, 고법의 불법파견 판정을 보도한 기사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