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을 수 있었던 죽음, 도시철도 고(故) 이재민 기관사를 애도하며
지난 3월 12일 오전 도시철도 고 이재민 기관사가 달리는 5호선 지하철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 직전까지, 1시간 가량 차량운행을 했던 그가 교대근무를 마치고 자살을 했다는 소식은 가족과 동료들을 충격과 비통에 빠트렸다.
공황장애로 병가를 내어 치료를 받았으나 온전치 않은 몸으로 복귀한 고인이 차량 운행에 나선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벌어진 일이기에 아픔은 더욱 크다. 결국 아프다고 말할 수 없었던 고통, 아프다는 사실이 낙오자라는 낙인이 되고, 죄인 취급을 받는 부당한 현실, 아픔에 대해 공감하기는 커녕 고통을 감추라고 강요하는 도시철도 공사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실적 위주의 노무관리가 빚어낸 결과다.
평소 고인은 스스로 공황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헬스장에 다니고 산악회에 가입하는 한편, 독거 노인과 저소득층 가정의 도배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하는 등 병을 이기고자 부단히 애써왔다. 작년 공황장애 진단 후에는 휴가를 신청해 병원 치료를 받으면서 공황장애를 극복하려 노력해왔다. 그러나 완쾌되지 않는 상태로 복귀할 수 밖에 없었다.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병을 극복하지 못한 좌절과 아픔, 이를 헤아려주지 않는 도시철도공사의 태도. 고통으로 인해 더 이상 기관사 일을 할 수 없겠다고, 어렵게 제출한 전직 신청이 회사에 의해 거부 당했을 때, 그가 겪었을 심적 고통을 과연 누가 다 헤아릴 수 있을까!
다시 재현된 죽음, 이제 끝내야 한다.
도시철도 기관사들이 앓고 있는 공황장애와 우울증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2003년8월에도 두 명의 젊은 기관사가 공황장애로 세상을 떠났고 이는 대법원에서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 2007년 가톨릭대 조사에서는 기관사들이 일반인에 비해 2배에 가까운 우울증, 4배에 달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7배나 높은 공황장애로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기관사들을 죽음으로 내몬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악화됐다. 기관사들의 정신건강문제는 특별한 몇 명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도시철도공사가 철저히 당사자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방치해왔기 때문이다.
국토해양부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기관사들의 업무스트레스를 가중시키며 계속되고 있는 ‘수동운전’, 1명의 기관사에게 지하철 운전과 출입문 관리, 안내방송, 객실 민원 등을 모두 떠맡기고 있는 ‘1인승무제’, 아픈 노동자가 사용한 병가를 경영평가의 지표로 삼아 제대로 된 휴식과 치료를 보장하지 않는 노동현실 등 기관사들의 노동조건은 헤아릴 수 없이 악화되어왔다.
“시민과 함께 행복한 5678 서울도시철도”라는 허울 좋은 캐치프레이즈 뒤에 감춰진 도시철도 노동자들의 아픔과 고통. 고인의 죽음을 통해 다시 한 번 드러난 노동현실을 바꾸어야 한다. 그것이 산 자들이 고인의 죽음 앞에 다짐해야 할 몫일 것이다.
2012. 03. 14
건강한노동세상, 노동건강연대, 대구산업보건연구회,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산재노동자협의회,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인천산재노협, 일과건강,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